주간동아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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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따로 없는 생명공학의 메카

60여개 바이오벤처 입주 ‘대덕밸리’ 명성…신제품 연구·개발에 하루하루 숨가쁜 나날

  • 입력2006-01-31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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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낮 따로 없는 생명공학의 메카
    대전시 대덕구 대덕연구단지 대덕 바이오 커뮤니티에 입주해 있는 생명공학(바이오)벤처 업체 ㈜엔비텍 황규한사장. 그는 이곳에 입주해 있는 9개의 바이오벤처 대표들 가운데 조금은 특이한 존재다. 다른 바이오벤처 대표들이 대부분 박사학위를 소지한 연구원 출신인 데 비해 그는 고려대 경영대학원 석사 출신이다. 그는 또 작년 10월 포항공대 교수들과 함께 엔비텍을 창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견기업 계열사 사장을 역임한 경력이 있다.

    “말이 바이오벤처 대표지 차라리 월급쟁이 사장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때는 골프라도 쳤는데, 지금은 당구 한 게임 할 여유도 없습니다. 요즘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사장은 엔비텍 창업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집에 월급을 가져다 준 적이 없다. 게다가 경기도 일산에 살고 있는 가족과는 두세 달에 한번 정도 ‘상봉’하고 있다. 특별히 일찍 퇴근해 봐야 혼자 사는 숙소에는 반겨줄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밤 11시 넘어 퇴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고객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출장 가는 일을 빼고는 숙소와 회사를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주위에서 “좋은 기술을 가졌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황사장이 유일하게 보람을 느낄 때다. 직원 12명 가운데 9명이 연구원인 데다 3명의 박사학위 소지자도 있을 정도니 황사장이 기술력을 자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산업용 폐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엔비텍은 최근 제품 개발을 끝내고 판매를 앞둔 상태. 올해 12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대다수 바이오벤처 직원들 역시 황사장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바이오벤처는 속성상 연구인력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들의 생활이란 집과 회사 연구실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곁에서 보면 단조롭기 그지없는 일상의 연속이다. 생명공학연구소 연구원 출신의 인바이오넷 구본탁사장은 “생활 자체가 사업”이라고 말할 정도로 주말도 없이 하루 24시간을 회사 일에만 정열을 쏟아 붓고 있다.



    대덕바이오커뮤니티에 입주해 있는 제노텍의 한 연구원도 “평일에는 보통 아침 9시 무렵에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실험실에 있고, 일요일도 집에서 잠이나 자거나 회사에 나와 연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사람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라고 털어놓았다. 신혼 6개월인 그는 다만 오랜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한 부인이 잘 이해해주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바쁘게 살다보니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취미생활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제노텍의 또다른 연구원은 “자기 연구는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완수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청나다”며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취미생활을 하려해도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대덕바이오커뮤니티 내에 있는 농구장에서 저녁식사 후 간단히 몸을 푸는 것 정도가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라고 했다.

    각자가 연구에 바쁘기 때문에 퇴근 후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는 기회도 그만큼 적다. 많은 바이오벤처들이 정기적으로 직원들을 위한 회식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회식이 2, 3차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바이오벤처 대표들은 서울 테헤란로의 일부 인터넷 벤처 대표들처럼 잦은 룸살롱 출입은 생각할 수도 없다. 한 바이오벤처 사장은 “영업력보다는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바이오벤처의 경우 영업을 위해 ‘술상무’ 역할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사업하는 재미’를 어디에서 느끼고 있을까. 현재 생명공학연구소 연구원을 겸직하고 있는 제노포커스 반재구사장은 “과학자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간다는 데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는 실패해도 회복할 기회가 있지만 경영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렵다고 덧붙였다.

    국내 바이오벤처들은 반재구사장처럼 수년간의 연구 경력과 제품 개발 경험이 있는 연구자가 창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이오 분야는 창업이 늦을 수밖에 없다. 또 대부분 박사학위를 가진 대표이사가 원천 기술을 갖고 있고, 대표이사 외에 2~3명 이상의 박사급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벤처 1호는 92년 생명공학연구소 연구원 출신의 박한오사장이 창업한 바이오니아. 이어 95, 96년 같은 연구소 출신의 정명준사장과 구본탁사장이 각각 쎌바이오텍과 인바이오넷을 창업했다. 현재는 전국에 200여 바이오벤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인구 200만명의 미국 샌디에이고에 700여 바이오벤처가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바이오벤처 태동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오벤처란 생명공학 기술을 보유한 신생기업으로, 사업에 대한 위험성은 높으나 성공할 경우 고수익이 기대되는 모험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독창적 아이디어 하나로 자본을 끌어대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인터넷벤처와 달리 한 분야에서 10~20년 이상의 연구 경력과 산업화 기술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야 사업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

    대전시 대덕구 대덕연구단지는 이런 바이오벤처의 메카. 미국의 첨단 벤처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실리콘밸리에 빗대 대덕밸리로 불릴 정도다. 대전시청 과학기술과 이용원박사는 “현재 전국의 200여 바이오벤처 가운데 60여 업체가 대전에, 그중에서도 대덕밸리에 몰려 있다”면서 “이는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KAIST, 생명공학연구소 등 생명공학 관련 연구소와 충남대 한남대 배재대 등 대학이 각각 실험실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창업보육센터 가운데 단연 각광받고 있는 곳은 생명공학연구소 바이오벤처센터. 6월2일 개관한 이 센터는 대전시와 배재대가 후원하는 관학연 차원의 첫 바이오벤처 인큐베이팅 센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재 이 센터에는 넥스젠 이룸바이오텍 바이오알앤즈 인섹트바이오텍 DMJ-Biotech 백텍 등 17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 센터 조성복실장은 “다른 인큐베이팅 센터와 마찬가지로 기술-경영지원을 해주지만 무엇보다 생명공학연구소의 연구장비를 실비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센터의 장점”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작년 말 입주 업체 선정시 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주로 생명연 연구원 출신이 창업 또는 관여한 바이오벤처들이 많이 선정됐다.

    가령 바이오알앤즈는 이 연구소 윤병대 책임 연구원이 작년 11월 창업한 회사. 또 작년 5월 창업, 현재 이 센터에 200평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는 이룸바이오텍의 경우 이 연구소 이영익박사가 연구담당이사로 재직하는 케이스. 이룸바이오텍 김상철부장은 “이영익박사의 연구 결과를 바로 생산에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바이오벤처센터가 최적의 공장 입지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벤처센터보다 10일 후에 개관한 대덕바이오커뮤니티 역시 바이오벤처의 메카로 각광받고 있는 곳. 인바이오넷이 대덕연구단지 내 옛 한효과학기술원의 건조물 및 연구시설물을 180억원에 인수해 바이오벤처 센터로 만든 이 커뮤니티에는 현재 인바이오넷을 비롯해 제노텍 제노포커스 엔비텍 펩트론 등 10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대덕바이오커뮤니티는 작년 말에서 올해 초에 걸쳐 창업한, 창업 초기 단계의 벤처들이 입주해 있는 바이오벤처센터와는 달리 인큐베이팅 단계를 벗어난 바이오벤처들로 구성돼 있다. 주로 창업 2~5년차, 매출 규모 10억원대의 중견 벤처들이다. 인바이오넷 구본탁사장은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나 대학의 인큐베이팅 센터를 졸업한 바이오벤처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는데, 이들을 위해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대덕밸리의 바이오벤처들은 올해 들어서야 벤처캐피털의 관심권 안에 들어온 상태. 이는 벤처캐피털이 몰려 있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바이오벤처가 일반인에게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입장에서는 바이오벤처들의 실상을 잘 모르므로 투자 결정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6월14일 바이오벤처센터에서 열린 백텍 사업설명회에 참석한 ADL파트너 송영호팀장은 “최종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는 반드시 관계 전문가의 자문을 얻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바이오벤처 입장에서도 벤처캐피털의 투자가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바이오알앤즈 이승문이사는 “바이오 분야의 경우 오랫동안 인내해 줄 자본주가 필요한데 벤처캐피털의 경우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현재 2억원인 자본금을 6월말 6억원으로 증자할 때도 벤처캐피털의 참여는 배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IMF 사태 당시 불 꺼진 연구소가 많아 과학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대덕연구단지. 그러나 이제 대덕연구단지는 바이오벤처의 메카로 되살아나면서 밤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하는 바이오벤처 연구원들이 늘고 있다.

    바이오산업은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 여건에서 21세기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점에서 대덕밸리의 미래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회사 잔고 바닥났을 땐 눈앞이 캄캄했어요”

    역경 딛고 대표적 바이오벤처로 우뚝… 미생물 균주 생산 코스닥 등록도 눈앞


    6월12일 개관한 대덕바이오커뮤니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바이오벤처센터로 평가받고 있다. 인바이오넷이 중심이 돼 결성된 이 커뮤니티는 바이오벤처 기업간에 새로운 협력 모델을 표방하는 공동 연합체. 96년 한일합섬이 생명공학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450억원을 들여 완공했으나, 97년 이 회사의 부도로 활용되지 않고 있던 옛 한효과학기술원이 이 연합체의 ‘둥지’다.

    이 커뮤니티를 개관한 인바이오넷 구본탁사장은 “생명공학 특성상 요소기술이나 단위기술을 가진 바이오벤처는 많으나 개별 기술만으로는 사업화가 어려운 것도 있기 때문에 기술의 패키지를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이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이 목표에 맞는 바이오벤처들을 선발해 입주시켰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적 바이오벤처 가운데 하나인 인바이오넷은 미생물공학과 분자유전학 등을 바탕으로 농업생명공학, 환경생명공학 및 생물의약 분야 등에서 산업용 주요 미생물 균주를 개발-생산하는 업체. 올 5월에는 한누리증권이 주간사가 돼 유럽지역에서 전환가 6만원(액면가 500원)으로 전환사채를 발행, 1600만 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작년 매출액 17억5000만원, 올 예상 매출액은 72억원이다.

    구사장은 “지금은 회사가 안정궤도에 접어들었지만 ‘1만8000원의 교훈’을 잊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년 8월경 직원 월급날이 다가오는데 회사 잔액은 1만8000원밖에 남아 있지 않아 눈앞이 캄캄했을 때 다행히 증자가 무사히 마무리돼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는 것.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는 설명이다.

    인바이오넷은 올해 초 코스닥 등록을 추진했다가 ‘회계 처리 미숙’이란 이유로 무산됐지만 언제든 재심사를 신청하면 통과가 확실시되고 이 경우 바이오벤처 ‘황제주’로 등극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견해. 구본탁사장은 “현재는 코스닥시장이 폭락해 오히려 코스닥 등록 시기 선택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올 하반기 아니면 내년 상반기 중 등록을 추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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