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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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 세계 질서 재편기, 한국 경제 활로 찾기

24시간 일상 속 일본 제품 관찰기

미처 몰랐던 ‘메이드 인 재팬’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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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19-08-12 08: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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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콧 재팬’이 한창인 가운데 일본 맥주 브랜드가 주된 불매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뉴시스]

    ‘보이콧 재팬’이 한창인 가운데 일본 맥주 브랜드가 주된 불매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뉴시스]

    어린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상당수 시민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자발적으로 나선 요즘, 하루에 일본 제품과 얼마나 접촉하고 있는지 직접 관찰해봤다. 시간은 8월 5일 오전 6시부터, 장소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서울지하철 6호선과 5호선을 거쳐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사무실까지였다.

    ‘NO 아베’로 구호 바뀌었지만 불매 열기 식지 않아

    7월 26일부터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이 서울지하철 1~8호선 전동차 내부에 부착하기 시작한 ‘보이콧 재팬’ 스티커. [김우정 기자]

    7월 26일부터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이 서울지하철 1~8호선 전동차 내부에 부착하기 시작한 ‘보이콧 재팬’ 스티커. [김우정 기자]

    평소 일본 제품을 그다지 많이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오전 6시 잠자리에서 일어나 출근 채비를 할 때부터 일본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욕실에서 평소 자주 쓰는 액상 비누를 유심히 보니 일본어 가타카나가 적혀 있다. 라이온코리아가 판매하는 ‘아이! 깨끗해 향균 폼 핸드솝’이다. 이 업체 홈페이지에 있는 설명을 봤더니 대장균, 황색포도상구균 같은 세균을 제거하는 항균력을 갖췄다고 했다. 아이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폼(foam) 형태라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다. 그런데 지금은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본 제품인 줄 몰랐다’며 대체상품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라이온코리아는 2004년 CJ와 일본 라이온코퍼레이션이 함께 설립한 세제, 비누, 치약, 칫솔 등 생활용품 생산 및 판매사다. 하지만 2017년 라이온코퍼레이션 측이 CJ의 주식 보유분 대부분을 사들였고 이듬해에는 CJ가 상징적으로 유지하던 주식 1%도 추가 매입했다. 이에 따라 사명에 붙던 CJ라는 이름도 사라지게 된다. 

    문득 입대한 동생에게 선물로 건넨 목욕제품도 떠올랐다. 샴푸는 물론, 보디워시와 세안제 기능도 있는 편리한 제품이라 군인에게 제격일 듯싶었다. 한국오츠카제약에서 출시한 ‘우르오스’로, ‘올인원’ 콘셉트를 내세워 남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남자를 아니까’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멘톨 같은 시원한 향과 편리함이 주효했다. 

    한국오츠카제약은 1982년 일본 제약회사 오츠카제약과 한국 제일약품이 세운 합자회사다. 현재 한일 두 기업의 출자 비중은 7 대 3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업체는 홈페이지에 ‘오츠카제약의 한국 현지법인’임을 명시하면서도 ‘한국인의 건강한 삶에 공헌하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만큼 우르오스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타깃이 됐다. 




    서울 서초구의 일본 자동차 전시장. [뉴스1]

    서울 서초구의 일본 자동차 전시장. [뉴스1]

    욕실에서부터 일본 제품을 마주하고 오전 7시 반쯤 출근길에 올랐다. 복잡한 차도 위로 일본산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일본의 대표적인 완성차업체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가 지나갔다. 일본 브랜드 중에서도 국내 소비자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은 일본의 높은 기술력을 적극 홍보하며 꾸준히 인기를 얻어왔다. 하지만 불매운동이 한 달 이상 계속되면서 렉서스 같은 일본산 수입차의 판매량이 30%가량 줄었다고 한다. 

    미끄러지듯 사라진 일본산 자동차를 뒤로하고 몸을 실은 지하철 안에서도 ‘보이콧 재팬’은 계속된다. 지하철 전동차 내부 출입문에 어른 손바닥 2개 정도 크기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한반도 평화방해 아베를 규탄한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규탄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7월 26일부터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이 서울지하철 1~8호선 전동차에 부착하기 시작한 ‘보이콧 재팬’ 스티커다. 사전에 서울교통공사 측과 해당 스티커 부착에 대해 협의한 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산 맞지만  …  업체명이 같아 오해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 문득 손에 쥔 펜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일본산이다. 필통에 있는 펜 3개 가운데 일본산은 2개. 이름처럼 얼룩말 로고로 유명한 지브라사에서 만든 형광펜과 미쓰비시연필사의 수성펜이다. 미쓰비시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이른바 ‘전범기업’으로 지목되는 미쓰비시그룹이다. 

    1870년 창립된 미쓰비시그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전투기와 잠수함 등 각종 전쟁 물자를 납품하며 사세를 키웠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조선인을 강제동원해 착취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 진주한 연합국 최고사령부의 탈군국주의화 과정에서 미쓰비시 등 재벌들이 해체됐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1950년대 종합상사로 부활에 성공해 지금까지 일본 대기업 집단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수성펜을 만든 문구 브랜드 미쓰비시연필은 전범기업 미쓰비시그룹과 관련 없는 회사다. 이 ‘또 다른’ 미쓰비시는 1887년 마사키연필제작소로 문을 연 일본의 대표적인 문구 제조사다. 미쓰비시, 즉 삼릉(三菱)이라는 사명의 한자 표기마저 똑같아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두 기업을 혼동하는 사람이 적잖다. 실제로 미쓰비시연필의 홈페이지 ‘자주 하는 질문’란에는 ‘미쓰비시그룹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관련 없다. 다만 같은 상호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사측의 해명이 게시돼 있다. 이런 오랜 오해를 의식한 듯 최근에는 ‘유니볼’이라는 브랜드명을 병기하고 있다. 

    잠시의 오해를 풀고 점심식사 후 오후 1시쯤 되니 입안이 따끔거린다. 요즘 구내염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칼칼한 순두부찌개가 자극이 된 듯했다. 이럴 때 떠오르는 약이 있다. 입안에 도포하면 강렬한 고통이 찾아오지만 그만큼 효과도 좋은 ‘알보칠’이다. 약을 바르자마자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이내 얼얼함 속에서 통증이 잦아들었다. 그런 와중에 약품 용기에 적힌 다케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일반의약품인 ‘다케다알보칠콘센트레이트액(폴리크레줄렌)’은 일본 제약사 다케다의 스테디셀러다. 다케다는 1781년 약재상으로 시작해 2017년 기준 일본에서만 7조 원 이상 연매출을 올린 일본 제약업계 1위 기업이다. 12조 원대 연매출로 글로벌 10위권에 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한국다케다제약을 설립했다. 당뇨 치료제 같은 전문의약품은 물론, 감기약 ‘화이투벤’ 등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이것도 일본 맥주라니?…”

    7월 15일 유튜버 ‘약쿠르트’로 활동하는 현직 약사가 자신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일본 약품 불매운동 참여 의사를 밝혔다. [유튜브 ‘약쿠르트’ 캡처]

    7월 15일 유튜버 ‘약쿠르트’로 활동하는 현직 약사가 자신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일본 약품 불매운동 참여 의사를 밝혔다. [유튜브 ‘약쿠르트’ 캡처]

    제약업계에도 불매운동이 조금씩 퍼지고 있다. 일부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을 중심으로 일본산 대신 한국 기업이 만든 제품을 권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약사단체인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은 ‘노노재팬드럭’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일본 기업의 제약품 관련 정보는 물론, 대체 약품도 소개하고 있다. 7월에는 유튜버 ‘약쿠르트’로 활동 중인 현직 약사가 자신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일본 약품 불매운동 동참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오후 8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나와 잠시 걸었을 뿐인데 벌써 땀이 제법 많이 난다. 집 앞 편의점 유리문 너머로 눈길이 간다. 이미 6월부터 3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연이어 북상하는 태풍에 공기도 습하다. 냉장고 진열장의 캔맥주들이 유난히 시원해 보인다. 유혹에 못 이겨 장바구니에 캔맥주 4개를 담는다.

    이제 일상처럼 자리 잡은 편의점의 ‘맥주 4캔 1만 원’ 행사. 5캔이나 6캔을 1만 원에 파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계산을 위해 신용카드를 꺼내려던 찰나, 편의점 직원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온다. “손님, 일본 맥주는 4캔 1만 원 행사 대상이 아닌데 괜찮으십니까?” 문제가 된 것은 분명 체코산인 줄 알고 마시던 맥주 2종류. 커피를 연상케 하는 향의 ‘코젤’과 쌉싸래한 맛이 일품인 ‘필스너 우르켈’이다. 캔을 들고 꼼꼼히 살펴도 맥주잔을 든 염소며 멋들어진 알파벳 필기체까지 일본 제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2종류의 맥주 모두 일본 소유주 제품이 맞았다.

    2017년 아사히맥주로 유명한 일본 아사히그룹홀딩스는 벨기에 기업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로부터 코젤과 필스너 우르켈 등의 브랜드를 인수했다.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는 세계 최대 맥주 제조사로, 미국 맥주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버드와이저, 한국 오비맥주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요즘 일부 소비자는 일본 맥주를 피해 유럽 맥주를 대안으로 선택한다고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필스너 우르켈과 코젤이 아사히맥주 소유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적잖게 보인다.

    2005년 아사히맥주는 일본 극우단체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후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같은 회사의 나카조 다카노리(中條 高德) 전 명예고문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정치인은 정치인 자격이 없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2014년 사망한 나카조는 생전에 일본 극우정치의 흑막으로 지목되던 일본회의 대표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중국에서는 아사히맥주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국내에서도 아사히맥주에 ‘극우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고 있다.

    단 하루 동안의 관찰이었지만 눈을 떠 잠들 때까지 생각보다 많은 일본산 제품이 포착됐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철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불매운동도 장기화될 듯하다. 이제는 ‘노 재팬’에서 ‘노 아베’로 선회하고 있는 불매운동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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