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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오른쪽)가 클레오파트라를, 그와 세기의 커플이 된 리처드 버턴이 안토니우스를 연기했다.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로맨스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화면 캡처]
우주의 신비를 감추고 있는 돌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클레오파트라를 휘감은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 그 가운데 하나가 녹색 보석이었다. 역사 속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좋아한 보석이 에메랄드였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역사가는 클레오파트라의 유명한 에메랄드 컬렉션이 실제로는 에메랄드가 아니라 페리도트였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화면 캡처]
녹색 계열 보석인 에메랄드와 페리도트는 중세시대까지 보석 애호가조차 혼동했을 만큼 쉽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다만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보석이 페리도트였다고 볼 만한 역사적 근거는 있다. 바로 페리도트의 주요 산출지가 고대 이집트였다는 점이다.
페리도트는 용암을 구성하는 광물 가운데 하나로, 지구 깊은 곳에서 고온·고압에 눌려 만들어진다.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에서 가끔 페리도트가 발견되기도 한다. 우주의 신비를 감추고 있는 돌인 셈이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1500년 전부터 고대 이집트에선 최고통치자 파라오의 명령으로 노예들이 ‘토파즈’로 불리는 섬에서 녹색 보석(페리도트)을 채굴했다고 한다. 토파즈는 현재 세인트존스섬 또는 자바르가드섬으로 알려진 곳이다. 녹색 돌이 가득 묻혀 있는 자바르가드섬의 주변 지역은 늘 짙은 안개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뱃사람들이 이 섬을 ‘토파즈’(Topazios·그리스어로 ‘탐색하다’라는 의미)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 녹색 돌의 이름도 처음에는 페리도트가 아닌 토파즈였다. 당시에는 허락된 광부를 제외하고 페리도트 광산에 무단출입한 사람은 사형에 처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허가된 사람이라도 밝은 낮에 채굴하면 실명한다고 해 야간에만 채굴하게 했다고 한다.
파라오의 숭배물 ‘태양의 보석’
고대 이집트를 현실에 옮겨놓은 것 같은 클레오파트라의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 그리고 그의 몸을 치장한 장신구들. 영화 ‘클레오파트라’는 1964년 3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 ‘미술상’ ‘시각효과상’ ‘촬영상’ 수상으로 4관왕에 올랐다(왼쪽). 클레오파트라의 몸치장을 돕는 시녀들의 장신구에서도 녹색 계열 보석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화면 캡처]
페리도트가 에메랄드로 오인된 사례는 또 있다. 고딕양식 교회 건축물로는 세계 세 번째 규모이자, 1248년부터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된 독일 쾰른대성당에는 ‘세 명의 신성한 왕’(Shrine of the Three Holy Kings)이라는 성유물함(聖遺物函)이 있다. 동방박사 세 명의 유해를 보존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성유물함은 서양 최대 규모이자 중세 황금 세공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것을 치장한 보석은 1000개가 넘는데 그 가운데 수세기 동안 200캐럿의 에메랄드라고 여겼던 커다란 원석 하나가 최근 페리도트인 것으로 확인됐다. 에메랄드로 오인돼 정체성(?)을 찾지 못한 보석. 세인의 뇌리에는 크게 각인되지 않은 보석. 페리도트의 비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겉모습만으로는 에메랄드와 페리도트가 서로 강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둘의 색상은 구분된다. 에메랄드가 짙은 녹색 계열의 청록색이라고 표현된다면, 페리도트는 부드럽고 밝은 연두색에 가깝다. 무색투명한 다이아몬드와 달리 유색 보석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색상 자체에 있다. 페리도트에 갈색이나 노란색이 많이 보일수록 보석으로서 가치는 낮다. 에메랄드그린에 가까운 색상을 보이는 페리도트가 가장 상질의 제품이다.
페리도트가 대중화하기 시작한 건 십자군에 의해서였다. 십자군전쟁 와중에 유럽에 소개되기 시작한 페리도트는 장신구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18세기 파리다트(faridat·아랍어로 ‘보석’이라는 의미)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페리도트가 됐다.
부부의 행복, 친구와의 화합 상징
현대에 들어와 페리도트는 주로 자연 속 식물을 형상화한 주얼리 제품에 애용된다. 신비롭고 영롱한 녹색이 곧 자연의 색이기 때문이다. 8월의 탄생석으로서 페리도트는 ‘부부의 행복’ ‘친구와의 화합’을 상징하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밤의 악령을 쫓아내는 보석이라는 믿음이 오랫동안 후세로 전해지면서, 그것을 착용하는 사람에게 행복과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승화한 결과다.하지만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처럼 널리 알려진 보석은 아니어서 이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에 구입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선 최고 보석이었으나, 중세에 대중화하면서 현대에 들어와 가치가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기회를 얻었다. 페리도트의 역사적 진화인 셈이다.
페리도트가 세팅된 명품 주얼리 컬렉션들
페리도트가 세팅된 주얼리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브랜드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프랑스의 ‘디올 파인 주얼리’와 ‘쇼메’다.크리스챤 디올이 1947년 창립한 럭셔리 패션 하우스인 디올. 1998년 디올에 입성한 아트 디렉터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Victoire De Castellane)은 보수적인 기존 브랜드들에선 볼 수 없던 독창적인 스타일의 주얼리로 디올 파인 주얼리의 명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는 창립자인 무슈 디올이 사랑한 정원, 드레스, 건축물 등에서 영감을 받아 디올 주얼리들을 디자인했다. 빅투아르는 평소 “나는 컬러 스톤을 사랑한다. 그것들은 달콤한 사탕과 같다. 맛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면서 유색 보석을 과감하게 매칭한 디자인을 창조했다. 빅투아르는 페리도트를 세팅해 반지와 브로치를 만들었다.
[디올 파인 주얼리]
나뭇가지와 잎으로 가을을 형상화한 제품으로 동양풍 정원의 꽃과 가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원뿔형의 ‘카보숑 커팅’된 50캐럿의 페리도트가 센터 스톤으로 세팅돼 고귀함을 극대화한다. 래커(칠)를 한 번 입혀, 때로는 매트(불투명하고 광택이 없는)하고 때로는 투명한 느낌으로 동양풍 정원의 우아함을 상징하는 컬렉션이다. 반지에는 페리도트 외에 다이아몬드, 파라이바, 투르말린이 세팅돼 있다.
[디올 파인 주얼리]
페리도트, 사파이어, 에메랄드, 핑크 투르말린 등 다채로운 유색 보석으로 베르사유궁의 정원을 그려낸 브로치. 베르사유궁 정원에서 금방 꺾은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보는 듯 화려하고 생동감이 있다. 페리도트로는 싱그러운 잎사귀와 줄기를 재현하고 있다. 과연 페리도트가 없었다면 이만큼 풍요로운 정원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쇼메는 1780년 창립된 역사적 주얼리 브랜드다. 조세핀 황후와 나폴레옹 황제의 공식 주얼러로 임명했을 정도로 프랑스 역사와도 그 운명을 함께했다. 파리 방돔광장 중심에서 시작해 239년 동안 축적한 주얼리 노하우와 장인정신으로 파리지앵의 매력이 깃든 주얼리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다음은 쇼메의 대표적 페리도트 제품이다.
[쇼메]
자르뎅(Jardins) 컬렉션은 쇼메의 정원을 뜻한다. 골드 소재의 꿀벌이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아름다운 벌집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정원의 아름다움을 담은 이 목걸이를 통해 꿀벌과 위험천만한 줄을 치는 거미가 벌이는 숨바꼭질 놀이를 선보인다. 5.73캐럿의 페어형 페리도트 1개가 세팅돼 있으며, 브로치로 변형해 착용할 수 있다. 페리도트 외에도 다이아몬드, 옐로 사파이어, 만다린 가넷, 차보라이트 가넷, 4.56캐럿의 페어형 만다린 가넷 1개가 세팅돼 있다.
[쇼메]
조세핀 황후로부터 영감을 받은 조세핀 컬렉션. 쇼메 고유의 섬세함과 우아함이 깃든 작품이다. 수려하게 흐르는 라인과 반짝이는 젬스톤이 조화를 이루는 컬렉션으로 0.80캐럿의 페리도트가 센터 스톤으로 세팅돼 있다. 센터 스톤을 다이아몬드가 감싸고 있어 페리도트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