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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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커 프로젝트

당신이 못 본 서울의 비경 속으로 자맥질하게 할 ‘다이빙대’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9-08-09 16: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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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하늘에선 여전히 8월의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고 있었다. 해질 무렵 풍광이 좋다 하여 일부러 오후 6시를 T타임으로 삼았음에도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흘렀다. 게다가 가는 길이 엄청 가팔랐다. 서울지방경찰청 24기동대 건물과 종로구 쓰레기처리장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시커먼 바위산의 정상 부근이 목표 지점이었다. 


    [사진 제공 · 조진만건축사사무소]

    [사진 제공 · 조진만건축사사무소]

    서울지하철 6호선 창신역 인근에서 경사로로 진입할 때까지만 해도 뚜렷이 보이던 목표 지점이 경사로에 들어선 순간 사라져버렸다. 진입로부터 목표 지점까지 고도는 121m. 수직으로 떨어지는 절벽을 우회하는 길임에도 워낙 급경사라 좁은 시야밖에 확보되지 않아서다. 차를 타고 올라갔기에 망정이지 걸어 올라갔으면 아무리 초저녁이라도 땀범벅이 됐을 게 뻔했다. 


    1972년 겨울에 촬영된 창신·숭인 채석장의 풍경. 현재 전망대와 낙산배수지가 있는 정상 부위까지 산동네 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사진 제공 · The Nick Dewolf Foundation ]

    1972년 겨울에 촬영된 창신·숭인 채석장의 풍경. 현재 전망대와 낙산배수지가 있는 정상 부위까지 산동네 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사진 제공 · The Nick Dewolf Foundation ]

    이리저리 헤매며 차로 10분쯤 올라가자 목표 지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 돌산 정상에 조성된 낙산배수지와 서울 종로구에서 작은 근린공원으로 조성한 ‘통일동산’ 사이에 십자가 형태의 전망대가 설치돼 있었다.

    산동네와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엘리베이터 통로로 쓰이는 노출콘크리트를 기둥 삼아 강화유리와 강판으로 지은 전망대가 매달려 있는 캔틸레버 구조다. [지호영 기자]

    엘리베이터 통로로 쓰이는 노출콘크리트를 기둥 삼아 강화유리와 강판으로 지은 전망대가 매달려 있는 캔틸레버 구조다. [지호영 기자]

    십자가의 수직 기둥은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16m 높이의 이 콘크리트 축이 유일한 기둥이었다. 거기에 그보다 훨씬 긴 30m 길이의 전망대가 매달려 있는 캔틸레버(외팔보) 구조였다. 

    전망대는 피막을 산화 처리한 아노다이징 강판과 접합강화 유리로 만들어졌다. 캔틸레버 구조를 경량화하면서 동시에 콘크리트의 묵직한 질감과 대비를 이루는 경쾌함 질감을 빚어냈다. 그러고 보니 세로축보다 가로축이 더 긴 십자가라는 점에서 ‘옆으로 눕힌 십자가’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초입에 서 있는 전망대 간판. [지호영 기자]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초입에 서 있는 전망대 간판. [지호영 기자]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서울의 기이한 풍경. 한양도성을 기점으로 그 아래로는 산동네 주택, 위로는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이 대조적으로 펼쳐진다. [지호영 기자]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서울의 기이한 풍경. 한양도성을 기점으로 그 아래로는 산동네 주택, 위로는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이 대조적으로 펼쳐진다. [지호영 기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전망대 옥상으로 먼저 올라갔다. 놀라운 풍광이 펼쳐졌다. 한양도성 낙산구간을 경계로 그 아래는 오래된 산동네 주택이, 그 위로는 현기증 나는 스카이라인이 극명하게 나눠지는 비현실적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N서울타워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서울의 속살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목조 데크가 깔린 전망대 옥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 제공 · 조진만건축사사무소]

    목조 데크가 깔린 전망대 옥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 제공 · 조진만건축사사무소]

    그 오른편으로 낙산, 북악산, 인왕산, 안산이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왼편으론 동망봉 채석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망대가 위치한 창신·숭인 채석장과 더불어 서울역, 서울시청, 옛 조선총독부, 한국은행 같은 근대 건축물의 화강암 석재를 공급했다. 화강암을 깎아내고 남은 수직의 절개 면은 묘하게도 동양화에나 어울릴 법한 기암절벽의 느낌을 부여했다. 서울 도심에 아직 이런 비경이 남아 있을 줄이야. 역시 그 너머로 아차산과 한강 건너 제2롯데월드가 어렴풋이 보였다. 전망대 뒤편으로는 수락산이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 도심 속 저지대의 우뚝 솟은 곳에서 사방팔방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을 조망하니 서울이 분지라는 점을 절감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전망대가 감춰진 비경 속으로 깊이 자맥질하게 도와줄 다이빙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지키는 관문

    30m 길이의 전망대 북쪽 벽면으로는 작품 전시가 가능해 갤러리로 활용할 수도 있다(왼쪽). 여름철이라 짙은 녹음을 함께 만끽할 수 있다.

    30m 길이의 전망대 북쪽 벽면으로는 작품 전시가 가능해 갤러리로 활용할 수도 있다(왼쪽). 여름철이라 짙은 녹음을 함께 만끽할 수 있다.

    2층 전망대로 내려가 봤다. 조망이 가능한 3개 면에는 접합강화 유리창을 둘러놓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3층 옥상에서 본 풍경을 쾌적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맨 뒤편에 커피 제조가 가능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어 창가 주변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경치를 관람하기에 좋았다. 설계를 맡은 조진만건축사사무소의 조진만 소장은 최대 25명까지 수용 가능하다고 했다. 

    콘크리트 기둥과 이어진 1개 벽면과 천장, 바닥은 목재와 방수성 수지를 합성한 OSB합판을 둘러 아늑한 느낌을 줬다. 벽면을 따라 그림이나 사진 전시가 가능한 갤러리 공간을 겸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훼손되기 쉬운 바닥 표면에만 에폭시(합성수지의 일종) 코팅을 했다. 


    1 전망대 뒤편으로 설치된 나선형 계단으로도 내려올 수 있다. 2 뒤편에서 본 전망대. 십자가를 옆으로 눕힌 형상이다. 3 하늘과 구름 빛깔 따라 분위기가 바뀐다. 4 전망대의 야경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떠올리게 한다. [지호영 기자, 사진 제공 · 조진만건축사사무소]

    1 전망대 뒤편으로 설치된 나선형 계단으로도 내려올 수 있다. 2 뒤편에서 본 전망대. 십자가를 옆으로 눕힌 형상이다. 3 하늘과 구름 빛깔 따라 분위기가 바뀐다. 4 전망대의 야경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떠올리게 한다. [지호영 기자, 사진 제공 · 조진만건축사사무소]

    이 전망대는 그냥 관광용으로 설치된 게 아니다. 채석장 절개 면을 활용한 야외공연장과 쓰레기처리장, 기동대 건물이 들어선 일대까지 서울시 랜드마크가 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의 첨병으로 세워진 것이다. 어렵사리 이곳까지 올라와 서울의 비경을 보면 이 버려진 채석장 일대의 진가를 깨닫는 이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홍보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전망대 바로 뒤는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낙산배수지입니다. 오래전 지은 배수지라 지하화하지 않고 지상에 노출돼 있어 보안 관리가 철저합니다. 보안 문제를 해결해 일부 공원화가 이뤄지면 전망대 역시 좀 더 공간이 확장되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여름 노을에 붉게 물들기 시작한 전망대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조 소장이 말했다. 그보다 시급한 문제는 접근성으로 보였다. 차를 타고 올라오기도 힘들었지만, 반대쪽으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버스정류장까지 버스를 타고 오는 것도 쉬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최대 25명밖에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라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힘겹게 발품 팔아 올라오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경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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