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1

2003.02.06

“주변 돌아보면 모두가 소중한 이웃”

1000명 사는 마을로 축소해서 본 한국 … 현실 새롭게 인식 의미 있는 일 찾는 계기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01-30 0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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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돌아보면 모두가 소중한  이웃”
    현재 당신의 사회적 위치는 어디쯤일까요.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체인 이 나라에서 당신은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나요. 2003년 1월 현재 4780만명이 살고 있는 이 복잡한 나라에서 그런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살아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만약 이 나라를 1000명이 사는 마을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사실 많은 것들이 사라집니다. 꼭 있어야 할 시인이나 화가, 우체부, 청소부, 병아리감별사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모순을 감안하더라도 숫자를 단순화해보면 우리는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를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고, 이 마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금껏 해온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하기가 더 쉬워질 겁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바로 내 옆집에 사는 이웃이 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게 될 것이고, 오염돼가는 집 앞의 하천을 맑게 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게 될 겁니다.

    실제로 전 세계를 100명의 마을로 가정하고 그 마을의 실태를 보여준 책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케다 가요코 엮음·국일미디어 펴냄)과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푸른숲)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과 주변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 큰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경제활동인구 715명 실업자는 14명

    한국이 10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497명은 여자, 503명은 남자입니다. 14세까지의 아이들은 206명, 15~64세의 일할 수 있는 사람들, 즉 경제활동인구는 715명입니다. 남자 352명, 여자 238명이 일하고 있고, 실업자는 14명입니다. 2000년 이후 일하는 인구도 점차 줄고 있습니다. 1000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들은 79명입니다. 2002년에는 일하는 사람 100명이 노인 11명을 부양했지만 마을이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어 부양 노인 수는 더 많아질 겁니다.



    한 해에 11명이 태어나고 5명이 죽습니다. 출산율이 감소해 14세 이하의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2명은 암으로, 1명은 뇌혈관질환으로 죽고, 또 달리 증상을 분류할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가기도 합니다. 40대 남성의 사망률은 여성에 비해 3배 가까이 높습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가족으로부터 느끼는 소외감 등 정신적인 압박감이 음주와 흡연을 부추겨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간질환과 심장질환이 주요 사망 원인입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선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래 삽니다. 여자는 79.2세, 남자는 71.7세까지 삽니다.

    지난해 이 마을은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 이웃마을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또 12월 대통령선거에서는 평범한 중년남자를 대통령으로 뽑아 세대교체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마을에 스스로 진보성향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39.1%, 보수성향은 35.2%, 엄격한 중도성향은 25.7%가 있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구성원이 4인 이상인 가족은 44.5%에 이르지만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반면 3인 이하인 가족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혼자 사는 1인 가족이 15.5%나 됩니다. 그만큼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지요.

    1000명이 사는 이 마을에서는 한 해에 13명이 결혼하고, 6명이 이혼합니다. 결혼하는 이는 점차 줄어들고 이혼하는 이는 늘어나게 돼 이 수치가 거꾸로 되면 어떻게 될까요. 결혼연령은 남자가 보통 29.6세, 여자가 26.8세입니다. 남자는 40세에, 여자는 36세에 이혼을 많이 합니다.

    1000명 가운데 의회의원 및 고위 관리자는 26명, 전문가는 68명, 사무직 종사자는 118명, 서비스업 종사자는 128명, 판매직 종사자는 137명, 농·임·어업 숙련자는 97명, 단순노무직 종사자는 102명에 이릅니다. 군인 14명, 의사 2명, 경찰관 2명, 공무원 17명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특히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샐러리맨은 남자가 137명, 여자는 161명이며 이 숫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 한국사람만 사는 건 아닙니다. 외국인 노동자도 3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총소득(GNI)은 1인당 1149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4.0% 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소비생활을 짐작케 하는 1인당 소비지출액은 685만원으로 전년보다 7.6% 늘었습니다. 세탁기 냉장고 같은 내구재를 구입하는 비용보다 서비스 쪽 지출이 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축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저축률이 전년보다 2.2% 줄어 17.1%에 불과합니 다. 1000명 가운데 물건을 안 사면 불안한 어른들이 52명이나 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주변 돌아보면 모두가 소중한  이웃”
    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63만원으로 전년보다 10% 늘었습니다. 농가의 월평균 소득은 199만원으로 전년보다 3.6% 늘었습니다. 도시와 농가의 소득격차는 이렇게 커지고 있습니다. 근로자들은 주당 47시간, 월평균 24.3일 일하고 한 달에 평균 175만원 정도 받습니다. 직종별 평균임금은 사무직을 100으로 했을 때 단순노무직이 60.5, 서비스 판매직이 76.8인데 반해 전문가는 140.7, 입법자와 관리자는 189.4입니다.

    근로 여건에 대한 만족도는 직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남자 노동자 352명 가운데 199명은 만족, 168명은 보통, 66명은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여자 노동자는 238명 가운데 65명이 만족, 보통이 119명, 47명은 불만족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래선지 직장인의 60%인 429명은 현 직장에 다니면서 부업으로 창업하는 ‘투잡스(two-jobs)족’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미국 일본 홍콩 등 세계 33개 마을과 일과 직장에 대한 애착도를 비교한 결과 이 마을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높은 마을은 이스라엘 마을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결혼 뒤 주택을 마련하는 데 10.8년이 걸립니다. 결혼 전에 집을 마련하는 이들도 15.8% 정도 됩니다. 그런데 내 집을 장만할 때까지 평균 5회 이사를 다닙니다. 마을 사람들은 단독주택을 선호하는데 542명이 자기 집을 갖고 있고, 282명은 전세, 148명은 월세로 살고 있습니다. 가족 수에 비해 방 개수와 넓이가 부족하거나 전용 부엌, 화장실을 갖추지 못하는 등 최저 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환경에서 사는 주거빈곤 인구는 230명이나 됩니다.

    외환위기를 겪은 뒤 이 마을은 소득격차가 벌어져 빈부차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소득이 높은 상위 100명이 하위 100명보다 9배 가량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숫자가 클수록 소득분배구조가 불평등함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97년 0.283에서 99년 0.320으로 높아진 뒤 2000년 0.317로 조금 줄었지만 2002년 0.319로 다시 높아졌습니다. 미국 마을의 경우 상위 20%가 부의 83%를 점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이 마을의 총 생산량은 세계 12위, 수출규모는 13위를 차지했습니다. 경제성장률은 3%로 선진 24개 마을 가운데 네 번째로 높았고 외환보유액은 세계 5위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가 3년 연속 오름세를 유지하면서 4.1%를 기록, 19위로 다소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지난해 연평균 실업률은 3.7%로 일곱 번째로 낮았습니다. 470명이 사는 북쪽 마을보다 이 마을은 26.8배나 많은 소득을 올렸습니다. 90년의 10.9배보다 배 이상 벌어진 것입니다. 1인당 주민총소득 역시 북쪽보다 12.6배 많습니다.

    1000명이 사는 이 마을에는 270대의 자동차가 있습니다. 3.7명당 1대를 갖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대중교통노선 및 운행 횟수가 적고, 주차시설도 부족하며, 교통체증도 상당합니다.

    마을사람 가운데 480명이 일반전화에 가입해 있고, 614명은 이동전화도 갖고 있습니다. 320명은 개인용 컴퓨터를 갖고 있고, 361명이 PC통신에 가입했으며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170명으로 세계 마을 가운데 1위입니다. 또 인터넷 이용자는 580명이나 됩니다. 1인당 1주일에 14시간 인터넷을 이용하며 인터넷 열기가 유난히 높아 잠자고 씻는 시간 외의 시간 중 20.1%를 인터넷에 할애합니다.

    이 마을 25세 이상 성인들 가운데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이가 181명이나 됩니다. 중졸은 102명, 고졸은 308명, 대졸 이상은 189명입니다. 현재 227명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학교생활에 만족하는 이는 93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마을 교육에 큰 문제가 있다는 징표지요. 학교를 중도 탈락하는 학생수는 중학생이 3명, 고등학생이 6명입니다.

    1000명 가운데 499명이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239명은 불교, 179명은 기독교, 55명은 천주교, 4명은 유교, 3명은 원불교, 1명은 천도교이며 나머지 18명이 다른 종교를 가졌습니다.

    영화를 가장 열심히 보는 층은 19~23세 여자 대학생 및 대학원생입니다. 이들은 한 해 평균 12편의 영화를 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2배나 많이 보는 것입니다. 전국에서 여가생활을 가장 활발히 즐기는 곳은 울산, 오락문화가 가장 침체돼 있는 곳은 충남입니다. 이 마을에서 연간 35종의 책이 발행되지만 아직 도서관은 없습니다.

    이 마을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환경입니다. 142개 이웃 마을과 비교한 결과 이 마을은 환경지속성평가에서 꼴찌나 다름없는 136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마을의 땅 가운데 65.4%는 산이고, 20.5%는 논밭입니다. 숲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20세 이상 주민 가운데 458명은 담배를 안 피웁니다. 그런데 최근 13~19세 청소년들 가운데 30%가 초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고 밝혀 어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마을 어른들은 1인당 1년에 맥주 50.6ℓ, 소주 22.6ℓ를 마십니다.

    마을의 보육아동은 모두 15명이고, 보육시설은 1개 있습니다. 또 이 마을에서는 연간 41건의 범죄가 발생합니다.

    세계 각 마을의 남녀평등지수(GDI)를 비교한 결과 이 마을은 29위를 차지했습니다. 호주가 1위, 벨기에가 2위입니다. 여성이 정치·경제 분야에서 얼마나 권한을 행사하느냐를 나타내는 여성권한척도(GEM)는 이 마을이 61위로 상당히 뒤떨어져 있습니다. 1, 2위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입니다.

    자, 어떠셨나요? 당신은 이제 주변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됐나요? 이제 누군가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그 어디보다도 소중하다고 생각되나요?”라고 물으면 당신은 선뜻 “네, 물론이죠”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자료는 통계청이 발행한 2002 한국의 사회지표, 뉴비즈니스연구소, 나라리서치, 영화진흥위원회,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울대 한상진 교수, 테일러넬슨소프레 등 참조. 인구는 2002년 7월1일 기준 4764만명으로 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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