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1

..

다층적 매력 넘치는 비비의 ‘밤양갱’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4-03-21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장기하가 작사·작곡하고 비비(BIBI)가 부른 ‘밤양갱’은 이별을 달콤·쌉싸름하게 그린 우화 같은 곡이다. 연인은 화자에게 많은 것을 해주려 하고 그것이 화자가 원하는 바라고 믿고 있지만, 화자가 먹고 싶었던 건 밤양갱뿐이었다는 내용이다. 연인의 엇갈리는 마음은 언제나 사랑받아온 고전적 테마이기도 하지만, 독특한 분위기에 아이러니한 소재까지 버무려져 있고 재치 있는 말맛도 훌륭하다. 이런 ‘밤양갱’의 매력은 입소문처럼 퍼져나갔고 대히트를 기록했다. 연일 각종 차트 1위에 오르고, 이 곡을 따라 부르는 ‘챌린지’나 다른 인물이 이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를 가상으로 구현하는 ‘AI 커버’도 대대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심지어 양갱 제품과 맛집까지 덩달아 화제가 되고 있다.

    비비(BIBI)가 싱글 앨범 ‘밤양갱’을 발표했다. [비비 인스타그램 캡처]

    비비(BIBI)가 싱글 앨범 ‘밤양갱’을 발표했다. [비비 인스타그램 캡처]

    [필굿뮤직 인스타그램 캡처]

    [필굿뮤직 인스타그램 캡처]

    곡 자체는 심플한 편이다. 노래 속 이야기는 1절에서 사실상 전부 제시된다. 음악적으로 청자를 가장 사로잡는 대목도 모두 포함돼 있다. 이후는 몇 구절이 반복해 등장하면서 주위를 조금씩 둘러보는 식으로 전개된다. 동화적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전형적이지는 않다. 왈츠 리듬은 사실 보컬 멜로디가 더 충실하게 따르고 있고, 드럼은 마칭 드럼 스타일로 연주된다. 멜로트론 등 빈티지 악기들도 흔히 동화적이라 할 때 떠올리는 시대보다 훨씬 현대에 가까운, 1970년대 복고의 질감을 낸다. 담백하고 가볍게 울리는 피아노나, 능란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부르는 비비의 목소리, 뮤직비디오 속 장기하의 얼굴 등은 흔히 말하는 ‘한국 독립영화 음악’ 같은 느낌도 준다.

    한국 독립영화 느낌의 음악

    거기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 건 살짝 서두르는 듯한 템포다. 곡 전반의 분위기를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만드는 주역이다.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 할 것 같은 동화보다는 대단할 건 없지만 왁자지껄하게 즐길 이야기처럼 흥청거리게 한다. 단언컨대 템포를 조금만 느리게 했어도 이 곡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테다. 또한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역시 이 템포에서 경망스럽고도 차진 느낌을 극대화한다.

    원래 비비는 R&B에 뿌리를 두고 다양하게 활동해왔다. ‘가면무도회’ ‘나쁜 X’ ‘조또’ 등 제목만 봐도 조금은 과격한 곡들도 있다. 비틀린 시선과 생생한 이미지적 표현, 통념적으로 가요 범주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정서나 소재의 과감한 채택 등이 비비를 돋보이게 했다. 그런 면에서 ‘밤양갱’은 비비가 가진 의외의 면모로 보이기도 한다. 분명 ‘밤양갱’은 언뜻 무해한 유머, 귀여운 데가 있는 아이러니, 친근한 세계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곡을 부르고 있는 비비가 더 능청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려운 매혹이다.

    그러나 이 곡은 비비답기도 하다. 동화적이면서 복고적인 소품, 우아하면서도 경망스러운 표현, 멜로드라마와 당혹스러운 유머, 뜨거운 정념과 의외의 진실 같은 것들이 뒤엉킨 곡이기 때문이다. 의문도 남을 법하다. 화자가 원한 것이 글자 그대로 밤양갱인지, 밤양갱으로 상징되는 어떤 것인지, 그렇다면 이 달콤하고 끈적이면서도 조금은 예스러운 과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처럼 다층적 매력과 더불어 언어·정서의 모호한 소용돌이를 유영하는 것은 비비를 지켜본 이들에게는 익숙한 그의 장기다. 밤양갱의 맛, 그 이후 비비에게 더 큰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