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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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커피전문점이야, 심야 퇴폐업소야

술판에 폭행·진한 스킨십 다반사…밤만 되면 욕망의 배설구로

  • 김다솜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ssomy22@gmail.com

    입력2014-01-20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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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홍대 앞에 있는 대기업 계열 T 커피전문점. 일요일 오전 1시 30분쯤 남녀 커플 한 쌍이 들어왔다. 이들은 혀가 꼬인 채로 싸움을 했다. 언성이 높아졌고 욕설까지 오갔다. 그러나 이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생들은 눈치만 볼 뿐 제지하지 못했다.

    구석에서는 다른 남녀 커플이 진한 스킨십을 나눴다. 갑자기 계단 쪽 통로가 깜빡깜빡거렸다. 20대로 보이는 한 손님이 전등을 껐다 켰다 하며 신나게 웃고 있었다. 화장실은 폭격을 맞은 듯했다. 변기 곳곳에 토사물이 묻어 있었다. 세면대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찌꺼기로 꽉 막혔다. 막장 컬트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여기 완전 모텔이야”

    오전 3시가 됐다. 일행 한 무리가 앉은 테이블 위에 보드카 한 병이 올라왔다.

    “자, 원 샷!”



    술판이 한동안 계속됐다.

    오전 4시. “야, 이 ○○○!” 한 손님이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들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테이블 위엔 커피 대신 숙취해소 음료가 수북이 쌓였다. 이건 약과였다. 몇몇 테이블 위엔 구두, 운동화 따위가 올려져 있었다. 잠자는 손님들이 벗어놓은 것이었다.

    “다른 데 가자. 여기 완전 모텔이야.”

    커피를 받아 든 손님들이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오전 5시, 한 손님이 자면서 몸을 뒤척이다 옆 테이블을 덮치며 쓰러졌다. 옆 테이블 위 음료들이 사방팔방으로 쏟아졌다. 대형 사고였다. 한 여성이 갑자기 테이블 위에서 구역질을 했다. 친구가 “야, 너 빨리 화장실에 가서 토해”라고 외치자, 입을 막은 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게 커피전문점이야, 심야 퇴폐업소야

    자정이 지나면 서울 유흥가 커피전문점은 남녀 취객들이 잠자는 곳으로 바뀐다.

    최근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시내 유흥가를 중심으로 24시간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이 늘고 있다. 밤늦도록, 심지어 먼동이 틀 때까지 귀가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야행성 젊은이가 많은데, 커피전문점은 이들을 대상으로 수익을 올리려 24시간 영업하는 것이다. 심야시간대가 블루오션임을 감지한 커피전문점은 너도나도 영업시간을 늘린다.

    물론 심야 손님 중엔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려는 손님, 문서 작업을 하려는 손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자기 통제력을 잃고 멋대로 구는 젊은이, 공중도덕이나 시민의식을 내팽개친 젊은이가 유흥가 심야 커피전문점을 점령하는 추세다. 최근 홍대 앞, 신촌, 강남역과 신논현역 일대, 건대 앞, 종로, 이태원, 대학로 일대 등 서울시내 유흥가에 위치한 24시간 커피전문점을 방문 취재한 결과, 여러 커피전문점이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대부분 음주가 원인이었다.

    금요일 0시 40분 강남역 S 커피전문점. 한 아주머니가 황급히 매장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여기예요!” 아르바이트생이 한 테이블로 아주머니를 안내했다. 한 20대 여성이 술에 취한 채 뻗어 있었다. 아주머니는 이 여성을 부축하며 민망한 듯 밖으로 나갔다.

    일요일 오전 9시 신논현역 D 커피전문점. 만취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주문도 않고 바로 소파에 누웠다. 청소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남자를 깨웠다. 그러나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아르바이트생이 경찰을 불렀다. 결국 경찰 여러 명이 남자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119구조대가 출동하는 일도 잦다. 이태원 T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생 최모 씨는 “계단 청소를 하는데, 여성 취객이 계단을 올라가려고 했다. 미끄러우니 안 된다고 제지했는데도 막무가내로 올라가다 엎어져 뇌진탕이 왔다. 119구조대가 응급실로 실어갔다”고 말했다.

    음료도 시키지 않고 널브러져 자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신논현역 D 커피전문점의 아르바이트생 조모 씨는 “그런 사람이 상당히 많다. 보통은 테이블에 엎드려 잔다. 간혹 바닥에 큰대(大) 자로 누워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우리 매장에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많은데, 취객에게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 깨우지도 못한다”고 했다. 또한 최씨는 “새벽 2시 이후엔 3층을 마감하는데 취한 손님들이 불 꺼진 3층으로 올라가 몰래 자고 가는 경우가 많다. 깨우면 화를 낸다”고 했다.

    119구조대 출동

    이게 커피전문점이야, 심야 퇴폐업소야

    심야 커피전문점에선 젊은 취객들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한 커피전문점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여성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저기 화장실에…”라며 가보라고 했다. 따라가 보니 화장실 안에 의식을 잃은 20대 여성이 옷을 모두 벗은 채 누워 있었다. “어머 어떡해!” 아르바이트생이 소리치며 여성을 깨웠지만 여성은 꼼짝도 안 했다. 아르바이트생이 힘겹게 옷을 입혔다. 그제야 여성은 정신이 돌아왔다.

    강남역 N 커피전문점의 아르바이트생 이모 씨도 비슷한 취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카페 입구에서 어떤 남자가 하의를 내린 채 자고 있었다. 많이 놀랐다”고 했다. 집에 온 것으로 착각해 탈의한 채 잠을 자는 남녀 손님이 뜻밖에 많다는 이야기다. 특히 여성이 화장실 변기에 앉은 채 잠드는 경우는 부지기수라고 한다.

    “취객이 구토를 많이 해요. 어느 정도여야지, 이건 정말 문제예요.”

    서울 종로3가 H 커피전문점 점장 이모 씨는 “하수구가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구토만 하고 나가는 취객도 있다고 한다. 종로의 다른 지점 점장 안모 씨도 “화장실은 물론이고 계단, 테이블에도 구토를 자주 한다”고 했다. 몇몇 아르바이트생은 “화장실에 구토를 해주면 고마울 지경”이라고 했다. 매장 안에 구토를 하면 당연히 악취가 심하고 보기에도 안 좋아 많은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기 때문이다.

    홍대 앞 G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생 홍모 씨는 “우리 매장에선 한 달에 세 번꼴로 취객이 매장 안에서 구토를 한다”며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다 구토하는 경우도 꽤 있는데, 바닥이 잔디와 돌로 마감돼 있어 정말 청소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홍씨는 도저히 잊지 못할 취객이 있다고 했다.

    “어떤 남자 손님은 테이블 위에 구토한 뒤 그 위에 계속 누워 있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자친구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군인이라는데 술을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프라푸치노 한 잔 줘.” 한 손님이 다른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음료를 찾았다. “손님, 프라푸치노는 여기 없어요. 비슷한 음료가 있는데 그걸로 준비해드릴까요?” 아르바이트생이 친절하게 응대했다. “아니, 프라푸치노 달라고. 달라고 하면 줄 것이지 웬 말이 많아?” 아르바이트생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여러 취객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카페라테 시킨 적 없다고. 나는 아메리카노 시켰어.”

    “뜨거운 음료 시킨 적 없어요. 아이스로 다시 주세요.”

    “커피 맛이 왜 이래요? 원래 먹던 맛이 아닌데?”

    필자가 지켜보는 동안에도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취객이 많았다. 대낮 커피전문점에선 이런 실랑이가 거의 없다. 대학로 G 커피전문점 점장 김모 씨는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다 보니 자기가 주문한 걸 잊어버린다. 싸움이 일어날까 봐 어쩔 수 없이 다시 해주는 일이 많다”고 했다.

    몇몇 손님은 직원에게 “표정이 마음에 안 든다” “생긴 게 왜 그러느냐” 같은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카드 결제 후 서명 패드에 욕설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건대 앞 D 커피전문점 매니저 이모 씨는 “심야엔 주문을 재확인하는데도 문제가 많이 일어난다. 이 음료를 시키지 않았다고 기분 나빠 한다”며 “어린 아르바이트생이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는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최근 한 남성이 “매장 내 베이커리를 전부 다 포장하라”고 주문해 그렇게 해주자 “내가 이걸 왜 사느냐”며 다시 포장을 풀라고 했다고 한다.

    일부 손님은 아르바이트생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강남 C 커피전문점의 아르바이트생 권모 씨는 “한 취객이 ‘표정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여성 아르바이트생 머리채를 끌어 잡은 채 턱을 깨물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출동해서야 소동이 가라앉았는데 술이 깬 뒤 찾아와 사과하더라는 것이다.

    심야엔 손님 간 주먹다짐으로 커피전문점이 그야말로 전쟁터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 같이 온 일행끼리 싸우기도 하고, 옆 테이블 손님과 시비가 붙어 싸우기도 한다. 기물을 파손하는 사례도 잦다. 취재 중에도 그런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저기 조금만 목소리 낮춰주시겠어요.”

    한 남자 손님이 옆 테이블의 다른 남자 손님에게 말했다. 옆 테이블의 남자 손님은 “아니, 내가 떠들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반말로 응수했다. 결국 두 사람 간 말싸움이 났고 서로 치고받는 싸움으로 번졌다. 옆 테이블의 남자 손님은 급기야 커피가 든 머그컵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경찰이 출동하고서야 싸움은 끝났다.

    이게 커피전문점이야, 심야 퇴폐업소야

    오전 2시쯤 서울 홍대 부근 커피전문점에서 고객들이 보드카를 나눠 마시고 있다.

    남녀 커플 흡연실로 가더니…

    강남역 N 커피전문점의 아르바이트생 이모 씨는 “한 손님이 옆 테이블 손님을 향해 들으라는 식으로 험담을 늘어놨다. 그 손님은 ‘상대가 취했으니 참자’라는 생각으로 계속 참았는데 험담이 도를 넘어서자 싸움이 났다. 결국 경찰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한 여성 취객이 다짜고짜 다른 테이블 남성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 남성은 그냥 나가버렸다. 그런데 이 여성 취객이 다른 테이블 남성한테 가서 또 싸움을 걸었다. 이 남성이 참지 못하자 큰 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또 경찰이 왔다”고 말했다.

    종로3가 H 커피전문점 점장 이모 씨는 “매장 안에서 부부가 싸움을 심하게 해 경찰을 불러 내보냈다. 얼마 뒤 이 부부가 다시 찾아와 ‘누가 신고했느냐. 가만두지 않겠다’며 계속 행패를 부렸다. 경찰이 또 와야 했다”고 말했다.

    필자가 취재할 때 한 20대 남녀 커플이 흡연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이들은 가벼운 스킨십을 하다가 갑자기 진한 키스를 시작했다. 주위 손님들이 흘깃흘깃 쳐다봤다. 남자가 여자의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일부 손님이 놀라기도 하고 불쾌해하기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심야 커피전문점에선 이렇게 도를 넘어선 애정행각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홍대 앞 T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생 진모 씨는 “남자가 여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키스하면서 가슴을 만지는 장면을 종종 봤다. 여성 허벅지 쪽에 옷을 덮어놓고 옷 밑으로 손을 집어넣기도 한다. 그 정도까지 가면 가서 말린다”고 말했다. 심야 커피전문점을 자주 찾는다는 손님 정모 씨는 “주로 즉석 만남으로 술을 마신 뒤 커피전문점에 오는 남녀가 심하게 애정행각을 벌이는 편”이라고 말했다.

    토요일 밤이 깊어갈 무렵 커피전문점은 어느덧 술집으로 변했다. 술을 들여와 음주를 즐기는 취객이 많았다. 맥주, 소주, 막걸리, 와인 등 주종도 없는 게 없었다. 커피전문점 측도 음료만 주문하면 음주는 알고도 묵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신 술병을 되가져가는 손님은 양반 축에 든다. 대부분은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 그냥 나간다.

    취재하면서 만난 커피전문점 종업원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금·토요일 밤엔 손님의 70%가 취객이고 새벽 3시 이후엔 80~90%가 취객이다. 골치 아픈 문제는 주로 이때 벌어진다. 새벽 4시가 지나면 조용해진다. 손님이 거의 자기 때문이다. 폭행사건은 일반 유흥업소와 비슷한 빈도로 발생한다.

    커피전문점은 전 세계 젊은이가 즐겨 찾는 보편적 문화다. 그러나 밤만 되면 욕망의 무절제한 배설구로 전락하는 두 얼굴의 커피전문점 문화는 오직 서울에만 있는 듯싶다.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의 수강생인 필자가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홍대 앞, 강남 등 서울 유흥가의 커피전문점을 돌며 취재해 작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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