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0

2010.08.16

신이 빚은 72개 봉우리 구름바다를 품었다

중국 안휘성의 황산(黃山)

  • 글·사진=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hanmail.net

    입력2010-08-16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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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빚은 72개 봉우리 구름바다를 품었다

    손님을 영접하는 모습의 영객송(迎客松). 황산에는 천년 세월 동안 바위를 뚫고 벼랑에 기대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의 노송이 많다.

    황산(黃山)은 예부터 웅장함과 수려함으로 많은 시인, 화가,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당대의 시인 이백은 황산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했고, 명나라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였던 서하객(徐霞客)은 30년에 걸쳐 중국의 산하를 두루 여행한 뒤 “오악(五岳), 즉 태산, 화산, 항산, 아미산, 형산을 보고 온 사람은 중국의 평범한 산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황산을 보고 온 사람은 오악도 눈에 차지 않는다”라며 황산을 격찬했다. 현지 사람들은 황산을 가리켜 “태산의 위용과 화산의 험준함에 형산의 안개구름을 더하고 여산의 나는 듯한 폭포와 안탕의 절묘한 바위, 여기에 아미산의 청량함까지 곁들였다”고 자랑한다.

    바위와 소나무가 만들어낸 산수화

    황산은 안휘성(安徽省) 남쪽 절강성(浙江省)과의 경계지역에 자리한 산으로 해발 1874m다. 산이 많지 않은 남방에 우뚝 솟아 있으며 불교 성지이기도 하다. 72개의 기기묘묘한 봉우리와 34곳의 동굴, 24줄기 계곡에 16개의 온천을 품고 있다. 199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세계문화유산으로 동시에 등재됐다. 중국의 등소평(鄧小平)이 이곳에 올랐다가 절경에 감탄해 개발을 지시한 이후 케이블카가 설치되고 많은 사람이 찾게 됐다고 한다. 현재 황산은 중국에서 10대 명승지 중 한 곳으로 꼽히며 자금성이나 만리장성과 어깨를 견줄 만한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상해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황산으로 향했다. 이튿날 아침 케이블카로 정상에 올랐다. 길이 2803m로 아시아에서 가장 길다고 알려진 케이블카를 타니 8분 만에 백아령(白鵝岺)에 도착했다. 산은 걸어서 오르는 것이 좋지만 많은 곳을 다닐 요량으로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백아령에서 조금 걸어가니 황산의 72개 봉우리 중 가장 유명한 시신봉(始信峰)이 나타났다. 해발 1668m의 시신봉은 높긴 했지만 숨이 차거나 고산병 증세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시신봉 앞 쇠줄에는 수많은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중국의 연인들은 노란색 자물쇠를 가지고 와서 쇠줄에 잠그고 열쇠는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협곡으로 던진다. 열쇠를 던지면서 변치 않는 사랑을 기원하는 것이다. 시신봉 부근에는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의 흑호송(黑虎松)과 한 나무에서 두 개의 가지가 뻗어 자란 연리송(連理松)인 부부송(夫婦松), 용의 발 모습을 닮은 용족송(龍足松), 거대한 용 형상의 와룡송(臥龍松) 등 기묘한 형태를 한 소나무가 많다.

    시신봉에는 한강자(寒江子)의 비석도 있다. 한강자는 명나라가 망한 후 새 왕조인 청나라에 반대해 벼슬을 그만두고 황산에 입산, 스님이 됐는데 나중에 도통해 여러 가지 신기를 부렸다고 한다.



    황산은 운해로 덮인 날이 많은 까닭에 동서남북 구역을 바다(海)에 빗대 표현하는데 남해(南海)는 남성적이며 장엄하고, 북해(北海)는 산세가 여성적이며 수려하다. 남해에 자리 잡은 옥병루(1680m)에는 황산에서 가장 높은 연화봉, 세 번째 높은 천도봉, 두 개의 붓 모습을 한 쌍필봉 등이 있다. 반산사에서 약 2.5km 올라가면 천도봉(1810m) 입구에 이른다. 천도봉을 오르는 계단은 경사가 76도까지 되는 가파른 곳이 많아 아슬아슬하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동자가 관음보살에게 합장하는 모습의 ‘동자배관음(童子拜觀音)’ 바위와 다람쥐가 천도를 뛰어내리는 형상의 ‘송서도천도(松鼠跳天都)’ 바위가 보인다. 이어 한 사람이 가까스로 지나갈 수 있는 아슬아슬한 붕어바위를 지나면 마침내 천도봉에 다다른다. 사방이 툭 트인 천도봉 전망은 절경이다. 천도봉에서 내려와 돌계단을 한동안 올라가면 옥병루에 도착한다.

    신이 빚은 72개 봉우리 구름바다를 품었다

    1 지게에 앉아 정상으로 향하는 관광객. 2 황산은 연간 200여 일 운해로 덮여 동서남북 구역을 바다(海)에 빗대 표현한다. 3 기암괴석은 소나무와 어우러져 황산의 정취를 더한다.

    연화봉(1894m)은 짙은 운해 속에서 하늘을 뚫고 핀 연꽃의 형상이다. 이곳으로 가는 등산로는 험난해 천 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면서 오르는 기분이 든다.

    황산 꼭대기에 오르니 실물로 보는 산수화 그 자체였다. 특히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의 숲과 소나무, 온갖 형상의 바위와 구름바다가 인상적이었다.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듯한 바위는 불균형 구도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며, 잔잔한 구름바다 위로 점점이 떠 있는 산봉우리 섬은 문득 바다에 서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했다.

    황산의 날씨는 수시로 변한다. 산자락 아래에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가 싶으면 곧바로 비를 뿌리고, 금세 청명한 하늘로 얼굴을 바꾼다. 황산은 사계절의 변화 역시 변화무쌍해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폭포가 굉음을 울리며, 가을에는 빨갛게 타는 단풍이 산을 물들이고 겨울에는 소복단장을 한 빙설세계가 나타난다.

    황산은 그동안 수많은 시인 묵객이 글과 그림으로 경치를 노래했다. 청나라 때는 ‘황산화파’라는 유파도 생겨났다. 매청, 석도, 홍인이 대표 작가다. 석도는 황산의 혼령을 얻었고, 매청은 그림자를 터득했으며, 홍인은 질을 얻었다고 평가받는다. 승려화가인 홍인은 말년에 황산의 모든 봉우리와 사찰을 다니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요즘도 황산에는 많은 화가가 찾아와 소나무 아래, 바위 등걸에 화첩 등을 펼쳐놓고 황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는다.

    황산에는 네 가지 명물이 있다. 정교한 돌 조각품 같은 기암괴석, 사계절 녹색의 청정함을 잃지 않는 낙락장송, 자욱한 운해, 양질의 온천이 그것이다.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72개 봉우리에 운해가 낄 때는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연 200여 일 강수 … 5~9월이 관광 적기

    연간 200여 일 안개가 자욱한 까닭에 황산을 ‘운해의 땅’이라고도 부른다. 중국의 산수화를 보면 현실세계와 동떨어졌다 느껴지는 것이 많은데, 운해가 낀 황산의 기암괴석을 보면 산수화가 상상만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황산의 소나무는 대개 바위에 붙어사는데 크기는 작지만 이곳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노송이 천년 세월 동안 바위를 뚫고 벼랑에 기대 살아가는 모습은 기묘하다. 소나무 중에는 모습이 독특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도 있다. 손님을 영접한다는 영객송, 환송한다는 송객송, 가지가 단합된 단합송, 용이 승천한 모습의 비룡송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람은 소식해야 오래 산다는 학설이 있는데, 이곳 소나무들도 바위에 붙어사는 탓에 먹을 것이 적지만 대신 수명이 길다.

    황산의 기상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쾌청함이 이어지는 날이 적다. 정상 부근은 7, 8월에도 평균기온이 18℃에 이르지 못한다. 연간 강우일수가 평균 200일이나 돼 비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황산의 자랑인 운해를 볼 수 있는 기간은 7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며, 5월에서 9월이 관광 적기다. 황산 곳곳에 돌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어 산을 오르는 데 한결 수월하다. 정상에는 호텔이 있어 이곳에서 숙박하면 일출이나 일몰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산꼭대기까지 까마득하게 꼬불꼬불 난 계단에는 가마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노약자들은 이를 이용하면 아주 편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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