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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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4세대 김정운이 권력세습?

北 김정일 후계구도 여전히 안개 속, 온갖 說 난무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입력2009-02-05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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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 4세대 김정운이 권력세습?

    김정남(좌), 김정철(우)

    한국 언론매체의 북한 담당 기자들이 ‘대북 소식통’의 전언을 이용해 북한 내부 소식을 전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우선 정보를 입수하기가 쉽지 않다. 정보를 얻어도 다른 사람들과의 크로스체크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의 가족, 측근들에 관한 사항은 북한 엘리트와 주민들에게도 비밀에 부쳐지는 내용이라 더욱 그렇다.

    최근 관심을 모은 김 위원장의 3남 정운에 대한 보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한국 국가정보원이 “김 위원장이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뒤 회복 중”이라고 발표하자, 몇몇 국내 언론은 일본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쓰러진 것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정운이 운동을 하다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다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필자가 지난해 9월25일 서울에서 인터뷰한 이영화 일본 간사이대 교수(경제학)도 “김 위원장은 정운이 지난달 ‘내장계통의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1월15일 연합뉴스는 정운이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최종 낙점됐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사는 ‘한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1월8일경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하달했다고 전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서는 ‘알려졌다’는 표현을 썼지만, 해설기사에서는 ‘낙점했다’는 단정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지난해 중병설 때와 같이 이번 후계자 지명설에 대해서도 국가정보원과 통일부 등은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사실 여부가 최종 확인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러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 내부에 뭔가 움직임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1월 중 북한 내부에 ‘샛별장군’이 후계자가 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1월1일 ‘노동신문’ 등



    3개 기관지에 낸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후계 관련 언급이 포함됐다고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했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김정일 동지를 당과 혁명의 진두에 높이 모신 격정과 환희에 넘쳐 모든 분야에서 일대 양양을 일으키던 1970년대처럼 당 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고 한 대목을 지목하면서 김 위원장이 아버지의 후계자로 인정받던 시기를 언급한 것은

    3대 후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어쨌거나 정운의 후계자 지명설은 장남 정남과 차남 정철에 비해 덜 알려진 그에 대한 외부의 관심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됐다. 따라서 그가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그의 집권 이후 시나리오를 상상해보는 것은 유의미하다.

    혁명 4세대 김정운이 권력세습?
    정운, 남성적이고 리더십이 강한 성격

    세종연구소 정성장 남북관계연구실장은 최근 NK지식인연대 기관지인 ‘북한사회’에 ‘김정일의 3남 김정운은 누구인가?’라는 글을 실어 비교적 상세한 정보를 전했다. 정 실장은 1988년부터 2001년까지 김정일의 요리사로 그의 가족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 겐지는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자서전을 통해 김정일의 아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약점에도 리더십과 권력욕이 있는 정운이 차기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단언해왔다.

    정 실장에 따르면 정운은 1983년 1월8일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부인이자 무용수 출신인 고영희(2004년 사망)에게서 정철에 이어 두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현재까지 알려진 경력은 1990년대에 형과 함께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 국제학교를 다녔다는 것과 2002년부터 2007년 4월까지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종합대학 특설반에서 ‘주체의 영군술’을 비롯한 군사학을 극비리에 공부했다는 것이다. 형 정철이 당 조직지도부에서 일했다는 추정이 나오는 데 비해 정운의 공직활동 내용에 대해서는 설조차도 알려진 게 없다.

    겐지는 몇 가지 일화를 통해 정철의 여성적이고 조용한 성격과 정운의 남성적이고 리더십이 강한 성격을 대비해 설명한다. 예를 들면 정철팀과 정운팀이 농구경기를 한 뒤 정철은 팀원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데 반해, 정운은 오랜 시간 반성회를 하며 “네가 왜 그쪽으로 패스했느냐, 더 연습하라”고 지시하는 등 지도력과 강한 승부욕을 보였다는 것. 겐지는 정운이 아버지의 성격은 물론 얼굴을 빼닮고 체형까지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출생 70년,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출생 100년이 되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겠다고 공언했다. 필자는 김 위원장이 이 해에 후계 문제를 확정짓기 위해 2005년 이후 미국과의 핵 협상이나 대남관계를 조율해가고 있다는 하나의 가설을 갖고 있다. 후계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려면 대외여건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가 알을 낳기 전 안전한 곳에 둥지를 틀고 안팎을 청소하는 것처럼.

    그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지금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추론은 그의 경력과 그의 세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대체로 긍정적인 전망이 가능하다.

    정운은 스위스에서 공부했고 서방에 대한 깊은 문화적 이해를 가졌을 것이므로 집권하면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혁명 4세대인 그는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혁명 1세대), 아버지 김 위원장(2세대), 맏형 정남(3세대)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을 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비록 ‘왕자’로서 여느 북한 아이들과는 다른 융성한 환경에서 자랐을 터이지만 가장 민감한 10대 청소년 시절을 고난의 행군이라는 초유의 경제위기 속에서 보낸 혁명 4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개혁과 개방에 더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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