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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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표범약국, 그리고 호피 패션

  • 김민경 holden@donga.com

    입력2008-12-01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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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담동 표범약국, 그리고 호피 패션

    랠프 로렌의 2009 컬렉션. 돌체앤가바나는 다양한 호피무늬로 유명하지만, 점잖은 랠프 로렌마저 이번 시즌에 호피를 선보였어요. 아, 정확히는 레오퍼드 무늬죠

    며칠 전 압구정동에서 호피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성을 봤습니다. 표범, 호랑이, 살쾡이 같은 동물의 털가죽을 흉내내서 황금색 바탕에 검은색과 흰색을 얼룩덜룩하게 매치한 그 무늬 말이에요. ‘보디 컨셔스(body conscious)’라고 부르는 몸에 꼭 맞는 미니 드레스를 입고 굵은 웨이브 머리를 늘어뜨린 그녀는 정말 한 마리 암표범처럼 보였고,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을 만큼 매력적이었답니다. 저와 함께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던 남성이 말했습니다.

    “난 호피무늬 입은 여자들 무서워.”

    반면 DJ. DOC의 멤버 이하늘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들었답니다.

    “난 호피무늬 입은 여자만 보면 한눈에 가요.”

    호피무늬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듯하죠? 어느 쪽이냐 하면, 전 호피무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편이에요. 쇼윈도 마네킹의 뒤집힌 코트자락에서 1인치쯤 살짝 드러난 호피 안감에도 발을 구르고, 리어카에 놓인 백만 가지 물건 중에서 가느다란 호피무늬 머리핀을 발견해 사서는 서랍에 넣어두고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빅토리아 시대나 조선시대엔 호피무늬가 아니라 호피를 소유하는 것이 권력의 상징이었겠지만, 보통사람도 영국식 체크무늬와 얼룩덜룩한 모양 사이에서 선택이 가능한 오늘날 호피무늬는 전통적이고 규칙적인 세계, 합리적인 것과 이성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죠. 사람들은 삶을 격자형으로 끼워 맞추는 규칙과 관습 때문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를 호피무늬 옷을 통해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호피무늬가 몸의 움직임을 유달리 잘 전달해서일까요, 아니면 호피무늬 동물들이 빠른 속도로 먹이를 쫓고 피를 흘리며 사냥해서 생존하는 육식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요. 회색 콘크리트와 유리와 철로 이뤄진 완강한 도시의 빌딩들 사이에서, ‘나 쫌 쿨하지’라고 미니멀한 블랙슈트 차림으로 샐러드 바만 찾아다니는 멋쟁이들 사이에서 호피무늬를 입은 사람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말로 유일하게 살아서 숨쉬는 존재처럼 보이거든요.

    호피무늬 마니아에게는 다행스럽게도―한편으론 이 호피 대중화가 아쉽습니다만―몇 년 전부터 호피무늬는 겨울의 ‘잇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표범 스카프나 호랑이무늬 구두가 휘이익 혹은 또각또각 거리를 어슬렁거립니다. 호피무늬 스카프와 함께 제가 열렬히 좋아하는 ‘표범’ 시집도 있습니다. 문혜진 씨의 ‘검은 표범 여인’이라는 시집입니다.

    청담동 표범약국, 그리고 호피 패션

    돌체앤가바나의 호피무늬 가방입니다.

    (전략) 청담동에는 루이비통이 있고/ 구찌, 프라다, 진도모피가 있고/ 표범약국이 있지// 이 겨울 다국적 패션거리에는/ 베링해 섬 출신의 북극여우 털로 만든 자켓이 있고/ 덫에 걸리면 다리를 자르고 도망간다는/ 밍크쥐의 가죽을 수백 개 이어 만든 코트가 있지// 내가 만약 난파선의 선원으로/ 북극여우의 섬에서 겨울을 보내게 된다면/ 내 가죽은 도대체 어디에 쓰일 것인가?

    물어버리기 위해/ 이빨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이빨이 없어서/ 물지 못하는 것이라고/ 청담동 표범약사는/ 밤이면 긴 혀로 유리창을 핥으며/ 우아하게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이 시의 제목은 ‘표범약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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