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1

2008.06.24

다시 돌아온 꼴통형사 흥행 무릎 꿇리나

  • 하재봉 영화평론가

    입력2008-06-16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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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돌아온 꼴통형사 흥행 무릎 꿇리나
    나는 강우석이 싫다. 그의 오만함과 한국영화의 보스로 군림하려는 조폭(조직폭력배) 마인드가 싫다. 자신의 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권력(배급력)을 이용하여 가차없이 상대를 죽여버리는 잔혹함과 비열함도 싫다. 무대인사 때마다 이춘연 전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을 내세워 위세 부리는 것도 싫다. 자신의 패밀리를 무슨 조폭 패밀리처럼 단속하고 키우고 밀어주면서 타 조직원은 배척하는 행태도 싫다. 가부장제 사회의 권위적인 시대가 배태한 단점만 모아놓은 그의 행보가 싫다. 힘 있는 일인자 강우석 앞에서 벌벌 기는 뭇 영화인들도 싫다. 유독 그의 앞에서만 바른 소리 못하고 숨죽이는 영화 언론과 비평가들도 싫다. 그렇게 세도를 떨치며 영화 권력을 장악하려는,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즐기는 그의 태도가 싫다.

    그런데 ‘강철중’은 볼만하다. 감독 강우석보다는 시네마서비스 제작자 강우석 또는 배급자 강우석이 더 어울린다고 여기던 내게 ‘강철중’은 ‘참, 강우석이 감독했지’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투캅스 1’과 ‘공공의 적’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다는 강우석은 “앞으로도 감독을 계속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강철중’을 찍었다”고 무대인사에서 말했다. 그의 말이 단순히 수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비장함이 ‘강철중’에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강우석은 싫지만(모든 사람을 다 좋아할 수는 없다. 그가 만든 ‘강철중’이 좋아도 내가 강우석을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다) ‘강철중’은 좋다. 모름지기 비평의 첫 번째 과제는 냉정하고 엄격해야 한다.

    개성적 인간미 물씬 … 1, 2편보다 강렬한 액션

    ‘강철중’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그려진 것은 강 감독이 자신의 캐릭터를 강철중에 감정이입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삶에서는 세속적이고 속물적이지만 일만큼은 성스럽게 임하는 강철중의 자세는 영화 만들기 앞에서 겸허해지는 감독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한반도’처럼 허장성세로 가득 찬 영화보다는, 강철중의 진솔함 속에서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강철중’이 훨씬 더 가슴에 다가온다.

    ‘강철중’에는 ‘공공의 적 1-1’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공공의 적’ 시리즈는 2001년, 2006년 각각 1편과 2편이 만들어졌다. 1편에서는 펀드매니저라는 직책을 갖고 있지만 더 많은 부를 위해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를 공공의 적으로 등장시켰고, 2편에서는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사학재단의 이사장을 공공의 적으로 등장시킨 데 이어 3편에서는 17살 고등학생들에게 칼을 쥐어 사람을 청부 살해하게 하는 조폭 보스를 등장시킨다. 1, 2편보다 ‘강철중’에 등장하는 공공의 적은 육체적으로 훨씬 센 놈이다. 따라서 1, 2편보다 강렬한 액션이 등장한다.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공공의 적 시리즈 3편 ‘강철중’은 강력반 형사 강철중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승부하는 캐릭터 영화다. 강철중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적당히 속물적이고 타협적이면서도 범죄를 척결하는 형사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철중의 그런 인간미가 시리즈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다. 제목이 ‘강철중’인 것은 1편이나 2편보다 훨씬 더 강철중이라는 인간적 매력에 힘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직 강철중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이 ‘강철중’이다.

    ‘강철중’에서 강철중(설경구 분)은 여전히 강동경찰서 강력반 형사다. 그는 전세금 5000만원을 대출받기 위해 은행에 가지만 형사라는 신분이 불안정하다며 대출을 거절당한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가서 일일교사를 하다 어린아이들이 깡패가 경찰보다 멋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란다. ‘강철중’의 내러티브는 형사 강철중과 조폭 보스지만 기업 회장으로 신분을 은폐하고 각종 폭력사건에 개입하는 이원술(정재영 분)의 대립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원술 역시 강철중 못지않게 매력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는 분명히 악인이지만 그의 일상은 매우 평범하다. 어린 아들과 주말농장에 가서 농작물을 재배하다 강철중을 만나 치고받으면서도 아들 앞에서는 자신이 이겼다고 자랑한다. 해결사 역할로 먹고사는 조폭이기 때문에 고객의 어떤 요구도 거절해서는 안 된다며, 조폭들을 거느리는 기업에 칼 하나만 들고 쳐들어가 회장(문성근 분)과 담판짓고 나온 후, 대기하고 있던 차 안으로 들어가면서 “빨리 가자. 오줌 쌀 뻔했다”라고 내뱉는 장면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공공의 적’ 시리즈에서 감초 역을 맡아 주연급으로 성장한 조연급 캐릭터들도 ‘강철중’에 총출동했다. 조무래기 조폭 출신으로 지금은 노래방과 단란주점 등을 경영하며 월 4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거두는 노래방 주인 이문식, 주특기인 칼질을 살려 정육점을 운영하는 유해진은 ‘강철중’에서도 형사 강철중을 도와주는 보조 캐릭터로 등장해 웃음을 준다. 이제는 손 씻고 선량하게 살지만 여전히 경찰차만 보면 유턴해서 도망가고 경찰만 보면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는 이문식이나, 칼에 찔린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원 이상의 식견으로 부검하면서 원인을 찾아내는 유해진의 캐릭터는 ‘ 강철중’의 냉기에 온기를 부여한다.

    다시 돌아온 꼴통형사 흥행 무릎 꿇리나

    ‘강철중’포스터를 배경으로 한 강우석 감독. ‘강철중’은 ‘공공의 적’ 시리즈 3편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강철중이라는 캐릭터가 전편에 비해 한층 부각된 작품이다.

    주요 캐릭터들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로 ‘강철중’의 내러티브를 부각하지만은 않는다. 이것이 각본을 쓴 장진의 매력이다. ‘웰컴 투 동막골’의 경우처럼 장진 각본은 때로 다른 감독을 만났을 때 훨씬 더 상업적으로 빛난다. 장진이 가진 비주류 속성이 힘 있는 상업감독을 만나 빛을 발하는 것이다. ‘강철중’을 연출하면서 강 감독은 장진의 장점을 최대한 흡수하고, 한 박자 늦거나 엇박자로 진행되는 웃음 코드를 정박으로 바꿔버린다. 그래서 장진의 유머는 살아 있으면서도 상업적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엇박자 진행 웃음의 코드 ‘탁월한 연출’

    “난 깡패 잡을 때 니놈이 세상 마지막 깡패란 생각으로 잡는다! 이러니 내가 널 못 잡아넣겠냐?”라며 이원술을 반드시 잡겠다고 다짐하는 강철중의 대사나 “형이 돈이 없다 그래서 패고! 말 안 듣는다 그래서 패고! 어떤 새끼는 얼굴이 기분 나빠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애들이 사열종대로 앉아 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고등학교 일진들 앞에서 일장 훈시하는 강철중의 명대사는 장진식 유머와 말발의 진수를 드러낸다.

    도축장에서 발견된 중년 남자의 시체, 그리고 그 옆에 살인사건의 흉기로 쓰인 칼이 증거물로 남겨져 있고, 그 칼에 찍힌 지문의 주인공은 며칠 후 고등학교 교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15년차 형사지만 은행에서 전세금 대출도 거절당하자 사직서를 쓴 강철중은 형사반장의 사표수리 거부로 사건현장을 따라다니다가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사건 해결에 나선다. 그는 고등학생들에게 칼을 쥐어 대신 범행을 저지르게 하거나 은폐하는 조직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보스인 이원술을 찾아내 결정적 증거를 찾으려 한다.

    내러티브는 단순하지만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살아 있고, 대주제를 해결하기 위한 내러티브 전개에 풍부한 양념이 등장하지만 잔가지로 힘이 낭비되지 않은 채 기둥을 튼튼하게 만들어가는 연출의 힘은 ‘강철중’을 매력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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