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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는 강하나 정책에는 약한…

요쉬카 피셔 입국 비자 남발로 위기 봉착 … 기사·자민당 “외무장관직 사퇴하라”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hanmail.net

정치에는 강하나 정책에는 약한…

정치에는 강하나 정책에는 약한…

요쉬카 피셔 외무장관.

독일 외무장관 요쉬카 피셔가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한국에도 자신의 저서 ‘나는 달린다’를 통해 잘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각종 정치인 순위 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던 인기 정치인 피셔가 요즘 사방에서 공격을 받으며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해외공관의 비자 발급 문제였다. 피셔가 외무장관으로 재직해온 지난 몇 년간 해외공관들이 독일 입국 비자를 허술하게 남발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 이 같은 사실은 각각의 해외공관을 추궁하는 것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비자 남발의 중심에 피셔 장관이 있기 때문이다.

피셔는 강한 개성의 소유자다. 1960년대 독일에서 학생들의 정치 참여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그는 거리를 주름잡았다. 이후 택시기사를 했고, 곧장 기성 정당으로 들어가는 대신 녹색당을 창당했다. 정치실험으로 여겨졌던 녹색당은 뜻밖의 성공을 거둬 창당 20년 만에 집권여당의 한 축을 이루는 데까지 성장했다. 그리고 녹색당의 실권자인 피셔는 외무장관이라는‘제2인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동구권 주민 대거 입국 사회문제

피셔 장관은 관할 분야에서 자신의 소신을 펼치려 했다. 그것은 독일 국가 이미지의 개선이었다. 그는 독일이 세계인들에게 ‘불친절한 나라’ ‘나치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 민족만 아는 극우의 후예’로 비치는 것이 싫었다. 그는 독일이 얼마나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으며 세계에 대해 열려 있는지를 자기 임기 안에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독일에 들어오는 문턱을 낮추려 했던 것이다. 그 결과 동구권 주민 수백만명이 거침없이 독일로 몰려 들어와 불법 노동에 종사하게 됐다. 범죄단체 또한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나들며 활개칠 수 있게 됐다.



비자 발급 남발의 예로는 95년 도입한 ‘여행자 보호증’ 제도를 들 수 있다. 공인된 여행사의 보증만 있으면 독일 입국 비자를 받기 위한 번거로운 서류 제출을 완화해주는 제도다. 이는 기민당 헬무트 콜 정부 때 도입됐지만, 당시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98년 정권이 바뀐 뒤 피셔 장관이 이끄는 독일 외무부는 입국 여건을 더욱 완화했다. 여행자 보호증을 제시한 외국인의 단기 체류의 경우 여행 목적, 재정 보증, 귀환 서약 등을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훈령을 각 공관에 내렸다.

독일 입국자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실태를 목도하면서 이 사안의 문제성을 느낀 우크라이나 주재 독일 대사관은 99년 12월 본국에 비자 발급 요건 강화를 건의했다.

그러나 외무부는 이를 무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00년 3월3일 외무부 차관 루트거 폴머는 이후 비자 발급의 원칙이 되는 다음의 훈령을 내렸다.

‘In dubito pro libertate(의혹이 있을 경우에는 여행의 자유를 우선 고려하라)’.

미심쩍은 점이 발견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히 검토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행자의 편의를 생각해주라는 본국 정부의 공식적인 방침이 나온 것이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비자 발급으로 시달리던 현지 영사들에게 일 처리를 대충해도 된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이 훈령 반포 직후 비자 발급은 두 배로 늘어났다. 주(駐)우크라이나 대사관 한 군데에서만 한 해 동안 30만 건의 비자가 발급되었다. 신청자의 신분 확인, 재정 보증, 초대장 등의 서류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사라진 관행이 되었다. 학자·예술가의 독일 여행은 우대한다는 소문이 돌자, 키에프 시의 비자 신청자 중 14만명이 본인 직업을 학자 또는 예술가라고 기재했다.

정치에는 강하나 정책에는 약한…

재야단체 지도자 시절이던 197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위를 벌이다 진압경찰과 맞서고 있는 피셔 장관(작은사진 가운데 헬멧 쓴 사람).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독일의 외국인 노동자들.

일명 ‘폴머 훈령’으로 일컬어지는 완화된 비자 발급 방침이 내려지자마자,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내무장관 토마스 쇼이블레와 바이에른 주 정부의 내무장관 귄터 벡슈타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보수적인 기민당과 기사당 소속이고, 또 각 주의 치안을 담당하기에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연방 내각의 동료이자 과거 녹색당 시절부터 함께 일해온 오토 쉴리 연방 내무부 장관도 피셔 장관에게 세 차례나 비자 남용 가능성에 대한 경고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피셔 장관은 “연방정부의 목표는 세계를 향해 열린 독일,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문화통합에 우호적인 독일을 만드는 것”이라고 거듭 밝히면서 외국인들의 독일 입국이 지금보다 더 용이해져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완화된 비자 발급이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은 러시아, 백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지역 국가들이었다. 자국에서는 땀 흘려 일해도 매달 50유로(약 7만원)를 벌기 어렵지만, 독일에서라면 최저 400유로(약 60만원)가 보장된다. 때문에 모스크바, 키예프, 민스크 등에 있는 독일 대사관 앞은 항상 독일 비자를 얻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독일 비자를 얻어내는 일을 전담하는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유령 여행사를 차려놓고 여행자 보호증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여행 목적을 단순 관광으로 속이고 허위로 숙박 예정지를 기록해 비자를 발급받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독일 연방범죄수사국은 독일 쾰른에 사는 아나톨리 바르크가 자신이 초청하는 형식으로 7000명의 우크라이나인을 입국시키는 사업을 벌였음을 적발했다. 이런 식으로 독일에 들어온 대부분의 외국인이 불법 노동 현장으로 흡수됐음은 물론이다. 또한 수많은 동구권 여성들이 인신매매되거나 매춘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또한 수사 결과 밝혀졌다.

독일 언론들은 왜 피셔 장관과 외무부가 이 문제를 안이하게 보았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국 대사관과 독일 수사당국이 현 비자제도의 남용 가능성을 지적한 보고서는 수도 없이 올라왔다. 그러나 피셔 장관은 들춰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지난 연말 국회는 이 문제를 놓고 조사특위를 구성했는데, 증인으로 불려온 각국 주재 대사들은 피셔 장관의 직무유기에 관한 증언을 쏟아놓았다. 심지어 ‘폴머 훈령’의 주인공 루트거 폴머 차관마저 “피셔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한 발 뺐다. 결국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의 활시위가 피셔 한 사람을 향하게 된 것이다.

야당인 기민당의 안젤라 메르켈 당수는 슈뢰더 총리 또한 국회 조사특위에 출석해 증언해야 한다고 공세를 높였다. 에드문트 쉬토이버 기사당 당수와 귀도 베스터벨레 자민당 당수는 피셔 장관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여론 또한 피셔를 ‘인신매매범의 비호자’라 부르며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피셔 본인은 “이 모든 일들에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사퇴할 일은 아니라고 버티고 있다. 녹색당과 사민당은 연립정권이 흔들릴 위험성 때문에 피셔를 비호하다가 최근 점점 등을 돌리는 모습이다. 여론을 거슬려가면서 피셔를 보호하다가는 5월에 있을 중요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를 놓치게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거리의 청년 전사. 소탈한 택시기사. 급진적인 이상을 내세우며 세계 최초로 녹색당을 만들고, 국가 최고위직에까지 오른 요쉬카 피셔. 그를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이상적인 정치철학이 급기야 자신을 위기로 모는 부메랑이 됐다.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세계 평화를 위해 세계를 누비고 다닌 그였지만, 정작 자국의 국경을 유린하는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정치에는 강했지만, 정책에 약한 한 지도자의 말로를 우리는 피셔를 통해 보고 있다.



주간동아 2005.04.26 482호 (p56~57)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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