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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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EO 연봉 날개 달렸나

100대 기업 지난해 평균 25% 오른 1400만 달러 … 실적 낮아도 인상된 기업 많아 ‘눈총’

  • 뉴욕=홍권희 동아일보 특파원 konihong@donga.com

    입력2005-04-15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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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CEO 연봉 날개 달렸나

    미국 뉴욕시 월가의 전경.

    미국에서 ‘기업 임원 보수의 광기(狂氣)’라는 제목의 기사가 ‘포춘’지에 실린 것은 흥미롭게도 1982년이었다.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광란의 보수 경쟁은 90년대에 기승을 부렸다. 그 뒤 경기 침체, 증시 부진 등의 분위기 때문에 한동안 잠잠해졌다가 지난해에 다시 바람이 불었다.

    2004년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상당한 보수 인상률에 즐거움을 만끽했다. 최근까지 재무제표를 제출한 대기업 가운데 CEO가 바뀌지 않아 비교가 가능한 179개 기업 CEO의 평균 연봉은 984만 달러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100억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다. 2003년에 비해 12% 오른 수준이다. 해마다 대기업 CEO들의 보수를 조사, 발표하는 ‘USA 투데이’에 따르면 경기가 부진하던 최근 3년간은 미미한 인상률로 지내더니 지난해엔 90년대 이후 최대 폭으로 보수를 인상했다.

    적자 내고 3900만 달러 챙기기도

    100대 기업의 경우 지난해 평균 연봉이 1400만 달러로 2003년에 비해 25% 올랐다. 평균치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핸드백 브랜드 코치의 CEO 류 프랭크포트는 스톡옵션(자기 회사 주식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해 8400만 달러를 챙겼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1억3000만 달러 이상의 새로운 보상 체계에 서명했다. 제약회사 포레스트 러버러토리스의 하워드 솔로몬도 스톡옵션으로 9050만 달러를 챙겼다.

    이처럼 천문학적인 CEO의 보수 항목에는 기본급, 일반 보너스, 리텐션 보너스(핵심인력에게 주는 유지 보너스), 퇴직보조급여 외에도 회사 비행기를 사용하거나 세금을 대신 내주는 등 별의별 것이 다 있다.



    ‘탐욕’이라고 비난하면, 이들은 “그만큼 성과를 냈다”고 항변할 것이다. 과연 그 정도로 화끈하게 일을 했을까. 필름회사 이스트먼 코닥을 회생시킨 CEO 대니얼 카프의 경우라면 큰소리칠 만하다. 그는 지난해 실적을 토대로 217만2988달러의 보너스를 포함해 총 440만 달러를 손에 넣었지만, “너무 많다”는 비난을 듣지 않는다.

    나머지 대부분 CEO들은 “실적만큼 보수를 받았다”고 주장하기엔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심지어 지난해에 12억5000만 달러의 적자를 낸 비디오렌털 체인 블록버스터의 CEO 존 안티오코가 회사로부터 700만 달러의 봉급과 보너스, 500만 달러의 스톡옵션, 약 27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주식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물론 미국 대기업들은 지난해에 많은 이익을 냈고, 주가도 많이 올랐다. 그러나 이는 경영성과가 아니라 경기회복에 따른 실적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도 CEO들은 이 ‘실적’을 바탕으로 인센티브를 챙기고 있다.

    실적이 없어도 제 몫을 잘 챙기는 CEO도 흔하게 보인다. 지난해 제약회사 엘리 릴리의 순익은 29% 하락했고 주주 총수익(주가상승 차익과 배당금을 합한 것)도 17% 줄었지만, 이 회사 CEO 시드니 토럴이 받은 돈은 2003년보다 41% 오른 1250만 달러. 또 산미나 SCI라는 전자업체는 최근 3년간 적자였고 주주 총수익도 지난해 중 27% 하락했지만, CEO 주어 솔라의 보수는 2003년 120만 달러에서 지난해엔 1500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기록으로는 감소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상된 경우도 있다. 제약회사 머크의 순익은 지난해 15% 줄었고 주주 총수익도 28% 감소했다. 이 회사 재무제표엔 CEO 레이먼드 질마틴의 보수가 2003년 960만 달러에서 590만 달러로 39% 줄어든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질마틴은 지난해에 깎인 액수를 쉽사리 만회할 수 있게 해놓았다. 내년에 매출 목표만 달성하면 270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출을 일정 수준에 올리면 이 보상은 두 배가 된다.

    이와 약간 다른 사례도 있다. 컴퓨터 제조업체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지난해에 1달러만 받았다. 그렇다고 회사 수익을 축내지 않는 CEO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는 2003년에 7500만 달러의 보수를 챙겼기 때문이다.

    미국 CEO 연봉 날개 달렸나

    머크의 CEO 레이먼드 질마틴.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2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기업의 파티 모습.(왼쪽부터)

    이처럼 성과와 보수의 괴리가 심한 데 대해 주주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들은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기업들은 주주들의 요구에 못 이겨 성과와 보수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긴 하지만 성공한 모델은 거의 없는 셈.

    80년대 기업들은 CEO의 현금보너스를 기업 매출이나 순익과 연계했다. 그러자 CEO들은 단기실적에만 신경을 쏟았다. 눈앞의 실적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재앙을 불러올 경영결정까지 내리는 경우도 생겼다. 90년대엔 스톡옵션이 인기였다. CEO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연결하는 것이 최선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CEO가 자신의 스톡옵션을 행사할 때 주가를 올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게다가 보안장비업체 타이코와 에너지회사 엔론 사태에서 보듯, 회계부정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등 부작용이 잇따랐다.

    투자연구소인 코퍼레이트 라이브러리의 수석연구원 폴 핫선은 CEO들이 술수를 쓰기 어려운 경영목표를 정해주라고 권고한다. 그는 “CEO에게 주가 조작은 쉬운 일이며, 매출 조작은 더 쉽다”면서 “투하자본 이익 같은 수치에 기초해 CEO 보수를 지급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실적에 연계한 보수’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기업은 실적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 실제로 실적이 나빠져 보수가 깎인 CEO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인력파견업체 애러마크는 지난해 순익이 13% 감소하자, 회장 겸 CEO 조셉 노이바우어의 총 보수는 20% 줄고 보너스는 47% 감소했다. 컴퓨터 제조업체 유니시스도 순익 감소가 85%에 이르자, 로런스 와인바흐 당시 CEO는 ‘노 보너스’에 총 보수가 17% 줄었다.

    주주들 ‘토해내기’ 제도 도입 등 견제 촉구

    스톡옵션의 확산은 이미 한풀 꺾였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주가 침체로 스톡옵션이 거의 무용지물이 된 데 이어 당국의 규제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스톡옵션은 현재 총 보수의 60%까지 받을 수 있는데 앞으로 30%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주주들은 ‘토해내기’ 제도를 도입할 것을 회사에 촉구하고 있다. 실적 보너스를 듬뿍 지급했는데 나중에 회계에서 문제가 터져 다시 계산해본 결과 실적이 줄어들었다면 더 가져간 만큼 보너스를 토해내는 것이다.

    또 경영진이 단기실적에만 집착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해두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임원들에게 보수의 5배만큼 자기 회사 주식을 사놓게 해 ‘지속되지 못할 단기적 이익’을 토대로 CEO가 큰돈을 챙기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업실적이 좋아진다고 해서 한꺼번에 주식을 팔아 현금화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유통업체 카디널 헬스는 CEO는 보수의 5배, 임원은 4배의 주식을 사도록 한다. 호텔그룹 센던트는 CEO가 보유해야 하는 주식을 자기 보수의 5배에서 6배로 올렸다.

    한동안 전 세계에 화제가 됐던 타이코 인터내셔널의 전 CEO 데니스 코즈로프스키의 사례를 통해 기업들은 한 수 배우게 됐다. 코즈로프스키는 해고되면 즉시 1억3500만 달러를 지급받는다는 계약을 해놓았던 것. 게다가 그는 생전에 매년 340만 달러의 변호사 비용을 받게 해놓았다. 이런 실수가 만천하에 알려진 뒤 타이코는 새 보상 지침을 마련했다. 그것은 CEO의 퇴직시 보상한도를 기본급여와 보너스를 합한 금액의 2배 이내로 정한 것이었다. 합병 등에 따라 떠나는 CEO의 경우 총 보상한도는 2.99배로 약간 많아진다. 스톡옵션도 발행주가 이상의 가격에 제공하는 조건도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 윌리엄 도널드슨 위원장은 최근 한 연설에서 “CEO의 실적을 평가하는 짐은 기업 이사진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기업 CEO 및 임원 보수 관련 컨설턴트들이 어떤 소리를 하더라도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나갈 사람은 기업 이사들이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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