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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2003년 가족의 초상

“핏줄은 없다?” … 다시 쓰는 가족史

이혼·재혼·입양 일상사 전통적 가족관계 파괴 … ‘사랑과 행복’ 최우선 변형가족 속출

“핏줄은 없다?” … 다시 쓰는 가족史

“핏줄은 없다?” …  다시 쓰는 가족史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의 집합본능과 고향으로의 회귀본능이 어김없이 되살아나는 명절이 돌아왔다. 올해 설 연휴 동안 고향을 찾는 귀성객 수는 서울에서만 282만명에서 359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차들이 꽉 들어찬 고속도로 위에서 10시간 넘게 서 있기를 각오하면서 수백만명이 한꺼번에 고향으로 ‘대이동’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일. 오래 전부터 ‘핏줄’을 강조해온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 고향집에는 뒤꼍으로 통하는 쪽문 위에 어김없이 오랜 가족사를 보여주는 큼지막한 액자가 걸려 있다. 갓을 쓴 할아버지 초상화부터 아버지 어머니의 결혼사진, 가족들의 학교 졸업사진, 사촌들의 돌사진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형제들에 이르는 대가족을 이루기까지의 역사가 흑백과 컬러로 어우러져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최근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에 대한 기존 인식과 기대가 바뀌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빠, 엄마, 그리고 그들을 빼닮은 자녀들로 이뤄진 형태만이 ‘단란한’ 가족은 아니라는 것. 이들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모한 가족의 그 이후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 폭넓게 자리잡기 시작한 딩크족(DINK·Double Income No Kid의 약자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말함), 한 부모 가족, 재혼가족, 입양가족, 동성애 가족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러한 추세는 이혼율 증가와 출산율 감소에서도 확인된다. 1990년 4만5694건을 기록했던 이혼 건수는 2001년 13만5014건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부모 중 한 사람만이 자녀를 키우는 한 부모 가족이 전체 가구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5년 8.9%에서 2000년 9.4%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반면, 한 부모 가족 중 이혼이 원인으로 작용한 가구는 5.9%에서 21.9%로 급격히 증가했다. 출산율은 2001년 1.3명을 기록해 자녀를 낳지 않고 부부만으로 구성된 가족형태가 늘어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법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동성애자끼리 가족을 이루는 사례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그리고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다소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동성애 가족도 부쩍 … 서구식으로 옮겨가는 과도기

“핏줄은 없다?” …  다시 쓰는 가족史

동성애 관계인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동거를 다룬 영화 ‘철없는 아내…’.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의 모습을 변형시키고, 때로는 스스로를 왜곡시키기도 하는 현상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이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위장이혼을 선택하는 부부나, 보다 나은 수입을 위해 가족들을 지방에 두고 서울로 재취업하러 떠나는 ‘신 기러기 아빠’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엔 자녀 교육비를 해결하기 위해 입양을 선택한 가장도 있었다. 얼마 전 연세대 홈페이지에 대기업에 다니는 한 직장인이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신입생 두 명을 양자로 들이겠다고 공개입양 의사를 밝힌 것. 그가 연초부터 공개입양 광고를 낸 건 정년퇴직이 어느새 6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두 딸이 아직 초등학생이라 회사에서 지원하는 학자금 혜택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학 신입생 두 명을 입양해 학자금을 지원해주는 대신 초등학생인 자신의 두 딸이 대학에 들어가면 학비를 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교육비를 걱정한 가장이 ‘가족’을 이루는 한 방법인 ‘입양’을 경제적으로 활용해보려고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족제도가 다양한 형태를 수용하는 서구식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분석한다.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기존의 대가족이 농경사회에 적합한 가족형태라면 사회변화에 따라 가족의 형태가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가족의 외형만 보고 편견을 가질 게 아니라 각 구성원이 얼마나 행복해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체면 때문에 ‘가족’의 모양은 유지한 채 서로 증오하면서 지내는 것보다 가족의 형태를 변화시키더라도 서로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면 그 편이 낫다는 것.



물론 이혼율 증가나 출산율 감소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변형된 가족의 출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기존의 가족형태와 다른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이혼율과 출산율 문제의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그는 사회적으로 여성이 사회활동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준비가 뒷받침되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법적·제도적 보완만큼이나 자신과는 다른 가족형태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 역시 중요하다. 한국여성개발원 장혜경 연구위원은 “한 부모 가족을 비롯한 변형된 형태의 가족 구성원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자신들을 뭔가 결핍된 집단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라며 “모두가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형태에서 벗어날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핏줄’과 ‘초혼’ 중심의 가족형태를 고집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구성원이 어떤 관계로 맺어졌는가보다 얼마나 친밀하고 만족해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찾아볼 수도 없고, 용납되지도 않았던 여러 가족형태들이 어엿이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 혈연 중심의 가족의 의미는 변화될 필요가 있다.

# 입양가족

”배 아파 낳아야만 자식인가요?”

“핏줄은 없다?” …  다시 쓰는 가족史

김흥순씨와 막내 석규군.

“엄마, 내가 누구야?”

“그야 엄마 아들 석규지.”

“아니 그거 말고, 나는 행복을 만드는 사람!”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류명균(54), 김홍순씨(55) 부부의 막내아들 석규는 올해로 여섯 살이다. 그 위의 막내딸 나이가 스물두 살이니, 늦둥이치고도 심하다 싶다. 석규가 류씨네 막내아들이 되기까지 류씨 부부의 고민이 적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위로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갓난아이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 더욱이 석규가 김씨 가족이 된 건 1999년 1월, 건축설계사로 일하던 남편이 IMF사태 여파로 실직한 뒤라 집안에 변변한 수입원도 없을 때였다. 그때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하루 일당 1만2000원 하는 위탁모 일을 시작해 두 번째로 맡은 아이가 석규였다. 누가 봐도 입양할 형편이 못 됐지만 김씨는 생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몸무게가 2.9kg에 불과했던 석규가 겨우 살이 붙게 되었는데 바다 건너 미국으로까지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김씨는 친구들로부터 입양비를 빌려 석규를 자식으로 품었다.

김씨는 나머지 세 자녀도 나이 마흔이 넘어서 한 번에 얻었다. 마흔이 넘도록 독신을 고집했던 그의 마음을 엄마 없이 자란 류씨네 세 남매가 흔들어놓아 류씨와 결혼하게 된 것. 그때 유독 김씨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는 초등학교 3학년생 막내딸은 어느새 대학생이 됐다. 김씨는 그렇게 남다른 산고를 겪으며 네 자식의 어미가 됐다.

그러고 보면 김씨의 가족은 그야말로 피가 아닌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이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입양을 달갑지 않아했던 자식들도 “우리, 동생 하나 더 만들면 안 될까”라고 얘기할 정도다. 세 남매는 석규 덕분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핏줄은 없다?” …  다시 쓰는 가족史

사랑으로 맺어진 류씨네 가족. 가운데가 이 집 귀염둥이 석규이고, 큰딸이 빠졌다.

“우리 석규는 복덩이에요.”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고 받아들였던 석규는 김씨에게 그보다 몇 배 더 큰 보상을 안겨주었다. 석규를 가슴에 안은 기쁨을 담은 글이 2000년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석규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너무 좋아 잠이 안 올 때 한줄 한줄 써 내려갔는데….” 그때 받은 상금으로 친구한테 빌렸던 입양비를 갚고, 이후에도 밤잠을 못 이룰 때마다 쓴 글을 각종 기관에서 주최하는 수기 공모에 응모해 입상했다. 김씨의 모정이 여러 사람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던 것. 김씨는 석규 덕분에 나이를 잊는다고 말한다. “우리 나이면 이제 애 다 키워놓고 허무감을 느낄 때잖아요. 그런데 저는 요즘도 육아 강의 쫓아다니며 우리 석규를 어떻게 키울까 꿈에 부풀어 살거든요.” 그는 아들 석규의 장래 교육비 마련을 위해 맞벌이 부부의 아기를 봐주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

김씨는 다시 태어나면 좀더 일찍 결혼해 한 10명은 입양해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니, 낳아놓은 애들이 이렇게 많아 남의 나라로 보낼 정도인데 왜 또 애를 낳아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만이 입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답니다.”

”남녀가 만나야만 부부인가요?”

“핏줄은 없다?” …  다시 쓰는 가족史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동성애자 부부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부분이다.

“명함을 어디에 뒀더라….”

동성애자를 위한 계간지 ‘버디’ 편집실에서 만난 한채윤(32), 윤미경씨(32) 부부. 버디 편집장인 한씨는 잘 둔다고 어딘가 넣어뒀을 명함이 눈에 띄지 않아 한참을 둘러보다 찾기를 포기한다. 그때 윤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몇 군데를 살피더니 이내 명함을 찾아낸다. 한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나머지 한 사람이 채워주는 모습은 여느 부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은 1996년 레즈비언을 위한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제가 저 친구한테 첫눈에 반했거든요.” 한씨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 얼굴을 내민 곳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그리고 이듬해 10월 두 사람은 형제들과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6개월 전부터 윤씨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양가 부모님은 여전히 둘 사이를 ‘절친한 친구’ 사이쯤으로 아실 뿐이다. 그래서 한씨는 집안에서 윤씨를 ‘너무 챙기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내 분신과 같은 사람을 부모님께 당당하게 소개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깝죠.” 그래서 명절은 이들에게 결코 반갑지 않다. “명절이 가장 지내기 힘들어요. 다른 가족은 다들 모이는데 저희 부부는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하니까요. 물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하라고 가족들이 성화를 대는 건 더 싫지요.” 엄연히 분신과 같은 배우자가 있음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가 이들에겐 속상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이성애자 부부들처럼 결혼으로 생겨난 많은 친척들과 시댁, 친정 문제로 부딪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는다.

두 사람은 버디 사이트 운영과 책 제작을 함께하고 있어 하루 종일 같은 사무실에서 지낸다. 지금은 정신없이 바쁘고, 경제적 여유도 없지만 이들에게도 꿈이 있다. “저 친구랑 늘 얘기하거든요. 40대가 되면 이 치열한 현장에서 벗어나 시골에 가서 살자고. 대부분의 가장들이 60대 정년에 이르기까지 일하는 것도 다 자녀 뒷바라지 때문이잖아요. 저희는 굳이 그럴 필요 없으니까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남들보다 먼저 찾아 향유하고 싶어요.”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출입문 안쪽 벽에 붙어 있어 사무실을 나설 때야 발견했다. 두 사람의 미소가 사진을 가득 채운 밝은 빛만큼이나 눈부시다. “어느 사진작가가 찍어준 저희 둘 사진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여기 못 걸어두죠.” 신혼부부의 사진첩이라면 빠지지 않을 부부가 입맞춤하는 사진이지만 이들은 선뜻 남들 앞에 내놓지 못한다. 자신들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당혹감’을 느낄까 봐 염려하는 두 사람의 배려란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동성애자 커플’이 아주 낯설지는 않게 됐지만 아직까지 그들을 하나의 가족형태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두 사람이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 NO! 두링서만 잘살면 되죠”

“핏줄은 없다?” …  다시 쓰는 가족史

자식이 없어도 부족할 게 없다는 이남훈 강은옥씨 부부.

자유기고가 이남훈씨(31)와 한국 최초의 여성 철도기관사 강은옥씨(35)는 이제 결혼한 지 만 2년 7개월째 되는 부부다. 오는 4월이면 강씨는 휴직을 하고 인도로 어학연수를 떠날 예정이다. 그리고 1년쯤 뒤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장소는 유럽이다. 2∼3개월간의 기차여행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

“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우리 또래 부부들 보면 다들 애 때문에 전쟁을 치르듯 지내잖아요.”

양가 부모님의 주선으로 만난 두 사람은 맞선 본 날 자정이 넘도록 함께 술을 마시며 결혼을 약속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결혼을 약속한 날 밤 나눈 이야기 중 하나가 ‘자식을 낳지 말자’는 거였다.

강씨가 현재 이틀에 한 번꼴로 집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거니와 이씨는 오래 전부터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생각을 굳혀왔기 때문이다. 대학 때부터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과 같은 생태주의 관련 서적에 심취해 기존의 가족제도와 자본주의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면서 결혼을 해서 자손을 번창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고 .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겪게 될 갖가지 사회적 모순과 난관은 곧 부모인 저의 문제가 되는데 그런 식으로 사회와 맞닥뜨리고 싶지 않아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왕따, 조기교육, 사교육비 등 아이가 줄줄이 달고 나올 부수적인 문제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던 것.

반면 애가 없으니 가장 좋은 건 시간과 경제적 여유다. 언제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미리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내 아들과 딸에게 쏟아부었을 시간과 관심을 나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보다 성숙할 기회를 갖게 되죠.”

이씨가 내년쯤 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경남 함양으로 내려가려고 계획하는 것도 그의 ‘무자녀주의’ 철학의 배경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렇게 되면 당분간은 강씨의 직장 때문에 떨어져 지내야 하겠지만 중년으로 접어들 때면 그곳에서 여유롭게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변에서 이들을 염려하는 건 단 하나다. 자식 없이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공을 들이는 것은 맹목적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한 ‘보험성’이기도 하다. 꼭 금전적인 보상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의지할 곳이 있다는 건 안심되는 일이기 때문. 이에 대해 이씨는 하나의 선택일 뿐이라고 말한다. “젊어서 잘 지낼 수 있다면 노후에 다소 외로운 건 감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애 때문에 산다”는 식의 억지를 부려가며 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들 부부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주간동아 2003.02.06 371호 (p94~98)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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