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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고 살아갈 그 아무것도 없다”

군산 윤락가 또 화재참사 15명 死傷 … 최소한 인권 외면 ‘악몽 되풀이’

  • < 군산=정호재 기자 > demian@donga.com

“바라보고 살아갈 그 아무것도 없다”

“바라보고 살아갈 그 아무것도 없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금강 하구의 항구도시 군산을 무대로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丁)주사 일가는 개복동, 둔율동의 콩나물 고개에 살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개복동에는 20여개의 유흥업소가 몰려 있다. 군산의 대표적 윤락가인 이곳은 불법으로 개축되어 여성들을 쪽방에 감금하고 있었고, 화재가 난 곳은 바로 채만식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1935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화재로 인한 희생자 수는 사망 13명과 뇌사자를 포함한 중태 2명. 화재가 일어난 날은 여성부가 생긴 지 정확히 1년 되는 날이며 지난 2000년 대명동 윤락가 화재 참사가 난 지 불과 1년4개월 만이었다.

1월29일 오전 11시50분경. 유흥업소 ‘대가’ 출입문 쪽의 카드체크기에서 전기누전으로 불이 나 옆 업소인 ‘아방궁’과 함께 밀폐된 업소 건물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새벽 영업을 마치고 1층에서 15명의 종업원이 고된 잠을 자고 있던 때였다. 낡은 건물은 환기구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고 유일한 비상구인 2층으로 올라가는 문마저 잠겨 있어 그들은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졌다. 달아난 업주 이모씨(37)는 군산시내 중심가에 7억원짜리 호화 주택을 짓고 2억원짜리 외제차를 굴리며 살아온 것으로 드러났고 군산시를 비롯한 관계 당국은 대명동 참사와는 다른 단순 화재라고 홍보하기에만 열을 올렸다.

“바라보고 살아갈 그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대명동에서 5명의 고귀한 넋이 죽은 대가를 치르고도 이후 시민단체와 여성계가 요구했던 매매춘의 연결고리 색출, 불법개조와 불법영업을 묵인한 공무원 처벌 등의 문제는 단 하나도 진척되지 않은 것이다.

관계당국은 사건 이후 이례적으로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발표문을 통해 ‘화재 현장은 뒤쪽에 비상계단과 비상등이 있었고 창문이 개방되어 있어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는 조건임에도 당사자들이 당황하여 일어난 사고로 추정되어… 대명동 화재사건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곳은 사창가가 아니라 정식 유흥업소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시는 장례위원회를 발족하고 장례식 비용을 시의 예비비에서 전액 부담하는 민첩성을 보였다. 경찰 수사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특히 지난번 대명동 참사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일기나 메모 등의 기록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외견상으로는 대단한 변화였다. 한 공무원은 “시가 이렇게 신속하게 대응한 것이 지난번 참사의 교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의 대응은 민첩하기만 했을 뿐 사건의 정곡을 집어내지 못했고 심지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사건 현장을 돌아본 여성단체들이 “어떻게 불이 나지 않은 2층에서 불이 난 1층으로 도망갈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초기 발표가 뒤집히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경찰 수사는 “장비(배척)를 이용해 2층으로 통하는 잠긴 문을 열었다”는 소방관의 진술을 얻어낸 후 급변했다. 여성들이 감금되어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당국은 감금이 아니라 ‘감시’ 수준일 뿐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곧 이곳에서 윤락행위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특수키를 이용한 감금과 철저한 감시가 이뤄졌다는 관련자의 증언이 나왔다. 당국은 이곳이 사창가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찰의 묵인하에 윤락이 이루어진 꼴이 되고 말았다. 또 사고 현장에서 12년이나 지난 소화기가 발견되는 등 소방점검 미비도 도마에 올랐다. 군산개복동화재참사사건 대책위 김미령 위원은 “지난해 대명동 화재의 값진 희생 이후 바뀐 것은 단지 무거운 쇠창살이 두꺼운 합판으로 바뀐 것뿐”이라고 분개했다.

당국은 “이곳이 정식으로 허가를 받았으며 2층 건물은 주택지역으로 허가가 나 소방점검과 윤락행위를 단속할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즉 2층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국이 초기 발표에서 왜 ‘피해자들이 2층에서 자고 있었다’고 주장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이 개복동 바로 옆에는 버젓이 초·중·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으나 당국은 “학교보다 이 업소들이 먼저 등록되었기 때문에 면허를 취소하기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유흥업소’라는 정식허가를 받은 이곳의 행태는 대명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노예계약’과 ‘감금윤락’이 그것이다. 이들이 업소에 들어올 때 체결하는 ‘취업각서’와 ‘현금보관각서’는 이들이 돈을 받고 팔려 와 노예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라보고 살아갈 그 아무것도 없다”
사건 이후 소룡동 장례식장은 시청 공무원으로 꽉 차 있었다. 찾아오는 고위공직자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한 유족은“누구의 장례식인지 모르겠다”며 “형식적인 위로보다 정확한 사고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먼저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사건을 책임지고 사죄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강근호 군산시장은 장례식장에서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보다는 “시장이 덕이 없어서…” “당신들이 뭔데…”를 연발하다 유족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개복동 일대에는 업소들의 영업이 불가능했지만, 속칭 ‘감뚝’이라 불리는 대명동과 중앙로 윤락가에서는 여전히 불빛을 감춘 채 손님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여성들은 창문을 두드리며 호객행위를 계속했고 심지어 택시 기사까지 행인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윤락여성들을 보호해 온 한 관계자는 “불이 나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결국 영업하지 못한 손해는 업주가 아닌 윤락여성이 볼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관계자는“사회 전체가 공범이 되어 이제는 윤락행위를 범죄로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빠져 있다”며 “반드시 ‘성매매방지법’을 통과시키고 공적자금을 투여해서라도 성자본과 여성들을 분리시켜야 이 같은 비극이 끝날 수 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주간동아 322호 (p56~57)

< 군산=정호재 기자 >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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