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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불붙은 지방선거

‘상향식 공천’ 아름다운 반란

중앙당 간섭 입김 배제 ‘소신 행정’ 첫걸음 … 대의원 선정 투명성 확보가 핵심 관건

  •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상향식 공천’ 아름다운 반란

‘상향식 공천’ 아름다운 반란
1월29일 오전 10시, 정치권의 눈이 서울 서대문구 한성과학고 체육관으로 쏠렸다. 이날 한나라당 서대문갑구와 을구(위원장 갑 이성헌 의원·을 정두언) 지구당은 정당 사상 처음으로 상향식 경선을 통해 구청장 후보를 뽑았다.

지구당원은 물론 한나라당 중앙당, 심지어 민주당 관계자들도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행사장을 찾았고 언론도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행사장에는 처음 실시하는 경선이 몰고 온 긴장감이 감돌았고 투표에 임한 대의원들도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기호 다번 현동훈 후보(603표·54%)가 1위를 기록, 최초의 경선 당선자로서 기쁨을 누릴 때까지 걸린 시간은 5시간30분. 이곳을 찾은 정치권 인사들은 그때까지 대부분 현장을 지키며 상향식 경선이라는 새로운 정치문화가 몰고 올 변화에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후보를 경선으로 뽑는다는 원칙을 마련하면서 정치권에 상향식 경선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시도지사의 경우 이미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했지만 시·군·구 등 기초단체장은 물론 지방의회까지 경선제가 확대된 것은 이번이 처음.

상향식 공천은 몇몇 사람이 밀실에서 친소 관계나 금품 기부액수에 따라 공천을 주던 관행에서 탈피, 당원들이 직접 후보를 뽑는다는 차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열기 등으로 당원을 늘린다는 의미도 무시하기 힘들지만 상향식 공천이 몰고 올 본질적 관심사는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와의 위상 변화로 압축된다.

상향식 공천제가 정착될 경우 중앙당의 입김이 축소될 것은 뻔한 이치. 지구당위원장들의 독단적 공천 등으로 인한 문제점도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충북대 강형기 교수(사회과학대학장·행정학)는 “전국의 단체장들이 정당공천 배제를 요구한 것은 업적 평가보다 정당의 평가를 받는 부분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상향식 경선제가 이 같은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해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천권을 쥔 지구당위원장이나 중앙당이 악성 민원 및 인사청탁 등을 할 경우 공천권을 의식한 자치단체장들이 거절하기 힘들었으나 경선이 제도화할 경우 소신 행정을 펼 수 있다는 것. 이 같은 흐름은 중앙당의 기능과 역할 축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여야 지도부는 상향식 경선이 몰고 올 변화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분석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현역의원의 경우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17대 총선 후보도 상향식 경선제로 선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상향식 경선의 첫 테이프를 끊은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은 “상향식 공천이 가져올 폐해로 예상했던 광범위한 돈 매수 행위와 줄 세우기 현상은 거의 없었다”고 자평하고 “갈수록 경선제가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서대문 경선 현장을 돌며 공정경선을 유도했던 서대문구 선거관리위원회 조훈 지도담당관도 “경선제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 피할 수 없는 대세임을 읽게 해준다. 한발 더 나아가 전당원에 의해 후보를 선출하는 사례도 급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렇지만 상향식 경선은 한국식 정치구조 속에서는 제대로 된 기능과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 한 고위인사는 “제왕적 총재, 대통령은 없어지는 대신 제왕적 지구당위원장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며 상향식 공천제를 폄훼한다.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경선에 참여할 대의원 선정 문제. 지난 1월29일 경선을 실시한 한나라당 서대문지구당의 경우 당비를 낸 사람, 당원 교육에 참석한 사람, 당 행사에 자주 참석한 사람, 유공 당원 등을 대의원 선정 기준으로 적용했다. 이 같은 대의원 선정 원칙은 다른 지구당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준이 대의원 선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해 줄지는 미지수다. 강형기 교수는 “대의원 선정의 투명성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경선의 의미는 퇴색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적 정치풍토에서 당비를 내거나 당 행사 및 교육에 참석할 정도의 열성 당원은 그리 많지 않고, 설사 있더라도 지구당위원장과 직간접적으로 친분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대의원 선정에 지구당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 상향식 공천이라는 민주적 제도 안에 위원장 낙점이란 전근대적 정치행태가 교묘하게 숨어들 공간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셈이다.

대의원 선출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17대 총선의 경선제 적용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3김 시대가 끝나는 17대 총선은 정치권 물갈이에 대한 욕구가 어느 때보다 크겠지만 상향식 경선제를 실시할 경우 물갈이 비율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현역 지구당위원장이 자신과 혈연·지연·학연 등으로 연결된 당원들을 대의원으로 선정, 경선에 들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상향식 경선이 오히려 신진 인사의 정치권 진입을 가로막는 치명적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여기서 나온다.

동원투표를 비롯한 로비전 등 과열현상도 경선제를 가로 막는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2월28일 구청장 경선 실시를 선언한 대구중구 지구당(위원장 한나라당 백승홍 의원)의 경우 출마 후보와 지구당위원장이 경선제 도입을 놓고 경찰 수사를 요구하는 등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발단은 출마를 노리는 일부 후보 진영에서 “지구당위원장이 특정인을 밀기 위해 경선을 도입했다”는 등 갖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기 때문. 출마 후보들 사이에 퍼진 소문은 급기야 인터넷에 올려져 조직적으로 유포됐고 보다못한 백의원은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때문에 상향식 공천제 도입을 생각한 대구·경북 지역 한나라당 여타 지구당위원장들은 “이런 갈등을 겪으며 꼭 경선을 해야 하느냐는 고민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1인 보스체제에 젖어 있는 기득권층이 정치논리와 중앙당 사정에 따라 경선 원칙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 경북지사 후보 경선을 주장하며 지난 1월 출마를 선언한 권오을 의원(안동)은 요즘 당내 대구·경북 의원 중 일부로부터 ‘왕따’당하고 있다. 합의제 추대를 외치는 일부 지역 의원들이 경선 관철을 외치는 그를 따돌리고 몇몇이 모여 후보 조정 작업을 벌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특히 당 지도부 주변은 대선을 의식, “한나라당 텃밭에서 자칫 경선을 잘못해 분열 상황이 연출될 경우 대선에 도움이 안 된다”며 합의 추대를 바라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권오을 의원은 “해보지도 않고 대선에 도움이 안 된다거나, 과열이 우려된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경선을 반대하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하향식 일방 공천에 의지하려는 구시대적 행태가 아직도 민주적 절차에 의한 상향식 후보 선출이라는 명분이나 시대적 조류를 우선하고 있는 모습이다.



주간동아 322호 (p22~23)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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