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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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세계화 굿바이 뉴욕?

금융회사들 하나둘 월스트리트에서 이전 인터넷 발달로 ‘인재와 시스템 메카’ 매력 감소

  • 전원경 작가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07-11-07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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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의 세계화 굿바이 뉴욕?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뉴욕의 가을’이라는 영화가 있을 정도로 뉴욕의 10월은 아름답다. 그런데 뉴욕 중심부인 월 스트리트(Wall Street)에 요즘 계절과는 또 다른 가을 느낌이 완연하다. 한때 세계 자본의 중심지였던 뉴욕, 그중에서도 월 스트리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뉴욕은 1900년대 초반부터 한 세기 이상 세계 자본흐름의 심장이었다. 90년대 초반까지 런던을 제외하면 ‘경제수도’로서 뉴욕에 견줄 만한 도시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런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9·11테러를 시발점으로 뉴욕의 자본과 금융회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월 스트리트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 최신호 보도에 따르면, 2000년 당시 미국 외(外) 기업들이 해외에서 공모주를 발행하는 경우 반수 이상이 뉴욕증권거래소를 택했다. 그러나 2005년 이 비율은 5%로 하락했다고 한다. 증시 매매 현황도 마찬가지다. 2001년 뉴욕 증시는 전 세계 주식 매매의 50%를 차지했으나 현재 37%로 떨어졌다. 거대 기업들은 이제 뉴욕증권거래소 대신 상하이와 두바이 런던 싱가포르 도쿄 등으로 향한다.

    높은 생활비와 집세 부담 … 상하이·두바이·런던으로

    ‘전 세계 자본의 지리적인, 그리고 상징적인 센터’로 불리는 월 스트리트를 떠나는 금융회사들도 속출하고 있다. 리만 브러더스, 모건 스탠리 같은 대규모 투자은행들은 월 스트리트에 지사만 남겨두고 뉴욕 근교 스탬퍼드, 저지시티 등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해 있던 많은 금융회사들도 뉴욕을 떠났다. 이런 일련의 사태들을 대변하듯 뉴욕증권거래소는 11월 4개의 트레이딩룸 중 두 곳을 폐쇄할 예정이다. 코네티컷 주의 스탬퍼드, 펜실베이니아 주의 밸리포지 등은 뉴욕을 대신한 새로운 금융타운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자본이 뉴욕을 떠나는 것은 단순히 월 스트리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좀 과장해 말하면 이는 뉴욕이라는 도시 전체를 흔들 수도 있는 문제다. 뉴욕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도시가 아니다. 뉴욕의 금융시장은 마치 코카콜라처럼(코카콜라의 70% 이상은 미국 외의 국가들에서 팔린다) 절대다수가 해외자본을 고객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뉴욕의 자본시장이 약화된다면 뉴욕은 관광과 패션만을 기반으로 삼도록 전략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도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빅 애플’ 뉴욕을 먹여 살리는 소비자층은 뭐니뭐니 해도 금융업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수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패션 외식 쇼핑 럭셔리 산업 등 뉴욕의 각종 트렌드를 이끄는 주요 소비층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월 스트리트의 증권 관련 직종은 뉴욕 전체 직업군 중 4.7%로 17만5000명 정도가 금융업 종사자다. 그러나 임금 비율로 보면 뉴욕의 모든 근로자가 받는 임금의 20.7%를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35만 달러로 3억원이 넘는다. 매킨지의 보고서 내용도 이와 유사하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뉴욕시가 거둬들인 소득세의 3분의 1 이상을 전 근로자의 6.6%에 불과한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납부했다고 한다.

    수많은 패션과 명품 브랜드들, 그리고 공연과 아트마켓 등의 예술산업이 뉴욕을 본거지로 삼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고소득 전문가층이 뉴욕에서 돈을 벌고 역시 뉴욕에서 그 돈을 쓰기 때문이다. 맨해튼 5번가 주변은 명품거리일 뿐 아니라, JP모건을 비롯한 뉴욕의 상징 같은 금융회사들이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왜 해외자본은 뉴욕을 떠나는 것일까? 9·11테러 이후 부쩍 늘어난 테러 위협 때문일까? 아마도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지나치게 오른 뉴욕 물가와 생활비, 집세일 듯싶다. 뉴욕을 본거지로 삼고 있던 무역업체 ‘BATS’는 최근 본사를 뉴욕에서 캔자스시티로 옮기면서 뉴욕에는 두 명의 영업담당자만 남겨두었다.

    물론 뉴욕은 최고 인재와 시스템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도시임이 분명하다. 뉴욕은 금융 전문가와 은행 말고도 컴퓨터 전문가나 변호사, 사무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의사와 교사, 심지어 숙달된 심리상담사까지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인재 풀이다. “비즈니스에서는 빈번한 미팅과 사람 대(對) 사람 간의 정보 교환이 필요하고, 최고 두뇌들이 함께 모여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뉴욕의 사업환경은 세계 최고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찰스 존스 교수의 분석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인 21세기의 상황은 다르다. 인터넷과 초고속 통신망, 페덱스로 대표되는 택배시스템 덕분에 이제는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나 마음만 먹으면 금융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인재와 시스템의 메카’인 뉴욕의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장점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시대가 온 것이다.

    사업환경 세계 최고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은 뉴욕보다 상하이 등 자국의 금융시장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세계화에 편승한 젊은 금융 전문가들은 이제 아시아와 유럽에서 근무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최근 매킨지가 내놓은 보고서는 ‘객관적으로 볼 때 뉴욕이 더는 주식시장이나 금융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의 경쟁자가 과거에는 런던뿐이었지만 지금은 두바이 홍콩 카타르 도쿄 등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시티그룹 로버트 루빈 회장은 “뉴욕은 세계 최대 자본시장이다. 그러나 런던은 안전과 건전성 면에서 뉴욕을 능가하며, 홍콩과 싱가포르는 급격하게 발전하는 도시다. 그리고 중국 자본은 모두 상하이로 몰리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뉴욕이 그동안의 명성을 잃고 단순한 대도시로 추락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뉴욕은 남북전쟁을 겪은 미국이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변화하던 19세기 후반에도, 대공황을 거쳐 산업국가로 변모한 20세기에도 꾸준히 세계의 경제수도로서 명성을 지켜왔다. 뉴욕은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 도시였고, 록펠러 등 세계적 자산가들이 활동한 도시였다. 그리고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자유무역이 보편화된 1990년대에 새로운 금융 중심 도시들이 세계 곳곳에 나타나도록 조종한 장본인은 바로 뉴욕의 큰손들이었다.

    시대와 패러다임이 변한다 해도 뉴욕은 특유의 활기로 이 과도기를 헤쳐나갈 것이다. 지난 4월 뉴욕 증시는 유럽의 유로넥스트와 합병하며 매출 규모를 54% 이상 끌어올렸다. 최근에는 월 스트리트 증권거래소 근처의 최고급 빌라가 익명의 스페인 부호에게 사상 최고가로 팔렸다는 소식이 신문 가십난을 장식했다. 뉴욕의 자본들은 글로벌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인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뉴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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