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큰 파문을 일으켰던 마광수(56)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새 작품을 여럿 들고 독자들 앞에 나섰다. 사제간의 사랑을 그린 ‘사랑의 학교’, 성담론에 대한 문화비평집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새빛), 가벼운 성(性) 수필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철학과현실사)가 그것.
서울 이촌1동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 교수는 장미 담배를 물고 있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에 긴 담배를 끼우고, 끝없이 연기를 내뿜는 그의 어깨 너머로 30년 전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그의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빠져 노년의 슬픔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지만, 그때 그는 나름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그 시절 그는 심리주의 비평을 공부하며 에로티시즘에 눈떴다. 노벨상 수상작가 존 쿳시는 ‘추락’에서 “에로스가 내게로 들어왔다”고 썼는데, 에로스는 마 교수의 마음속으로도 깊이 들어갔다. 이후 그의 삶은 한마디로 ‘야(野)한 삶’이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필두로, 대법원에서 음란물 판결을 받았던 ‘즐거운 사라’ 등 35권의 책은 모두 성을 다루고 있다. 그에게 성 문제는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과 인권의 문제다. 그만큼 절박하게 끌어안고 있는 절대가치다.
야한 신간 썼다가 감옥 끌려갈까 걱정돼 수위 조절
육체는 늙어가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도 팽팽해서 ‘야성’이 들끓고 있다. 부지런히 써댄다. 쿳시가 사제간의 ‘부적절한 사랑’ 이야기를 모티프로 ‘추락’을 썼듯, 마 교수도 이번에 같은 주제의 소설 ‘사랑의 학교’를 탈고했다. 200자 원고지 300장 분량의 이 소설은 홍익대 교수 재직 시의 경험을 토대로 주인공 ‘나’와 여제자 다섯 명과의 사랑을 ‘야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 속의 ‘나’를 실제 저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다 ‘뻥’이에요. 소설 창작은 거짓말하는 즐거움이 있고, 독자들은 또 속아주는 즐거움이 있는 것 아닌가요? 처음에 150장 정도로 정말 야하게 썼다가 또다시 감옥에 끌려가면 안 될 것 같아 톤을 조금 낮췄습니다. 사제간의 연애와 섹스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금기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겁니다. 성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고, 모든 종류의 검열은 철폐돼야 합니다. 성은 억압할수록 왜곡되기 쉽습니다.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도 ‘성을 억압할수록 독재사회는 더 연장되고, 나치즘 파시즘 사회로 간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수필집은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쓴 글 가운데 미발표작들을 가려모은 것이다. 여기서도 그는 대학교수라는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거침없이 내지른다. 집단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치는 사회를 신랄하게 꼬집고, 부부간 스와핑을 권장하고, 섹스에 헤픈 여자가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사랑’이란 성적 합일감을 필연코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속궁합’이 안 맞는다면 사랑은 헛된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해서 섹스하게 되는 게 아니라 섹스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섹스부터 해봐야 한다.’
-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중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될 수 있을 때, 우리나라의 대학은 학문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대학교수는 ‘품위의 꼭두각시’나 ‘정치적 눈치꾼’으로서가 아니라, ‘광적인 공부벌레’나 ‘실험적 가설의 자유로운 배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중에서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가는 자유인이지만 그의 앞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올 초엔 새 시집 ‘야하디 얄라숑’에 예전 제자의 시 1편을 무단으로 실었다가 학교 측의 징계를 받아 1학기를 쉬어야 했다. 또 4월엔 음란물 판정을 받은 ‘즐거운 사라’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벌금 200만원을 물기도 했다.
“400편의 시를 정리하면서 그 시를 빼놓기 아까워 집어넣었습니다. 홍익대 교수 시절 교지 지도교수를 지냈는데, 그때 제자가 쓴 시예요. 남의 장난감을 훔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시를 무단으로 게재한 것은 무조건 잘못한 일이지요. 그런데 ‘즐거운 사라’는 다릅니다. 재판 끝나고 16년이나 지났어요. 세상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요즘 나도는 인터넷의 ‘야설(야한 이야기)’이나 ‘야동(야한 동영상)’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옛날 잣대를 지금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1992년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구속돼 두 달간 수감생활을 한 그는 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돼 해직됐다 98년 복직했지만, 2000년 다시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건강을 이유로 휴직했다가 복직했고, 동료 교수들과 문단의 ‘왕따’로 그의 마음은 크게 위축됐다. 건강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 ‘전과자’이기 때문에 교직연금도 탈 수 없어 정년퇴직 뒤에 뭐 먹고 살까 걱정도 많다.
동료 교수들과 문단의 왕따지만 강의는 인기 여전
“우울증에 걸려 약을 많이 먹었더니 위궤양이 심해졌어요.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했어요. 3년간 휴직 이후 학교로 돌아갔더니 동료 교수들이 전공과목 강좌를 안 줘요. 지금도 직장(대학)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올해 2학기 강의도 ‘연극의 이해’라는 과목만 강의하고 있어요. 학생들은 저를 좋아해서 이번 강의에도 많이 몰렸는데, 400명으로 자르고 반을 두 개로 나눴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학생들, 골수 팬들 덕분에 그는 허청거리는 다리를 다시 뻗대고 선다. 그가 대학에서 궁지에 몰렸을 때 학생들은 ‘마광수를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며 성원해줬다. 그의 팬들이 주로 결집하는 홈페이지(www.makwangsoo.com) 회원 2만여 명 가운데 몇몇은 11월2일 에세이집 출판기념회도 마련해줬다. 한국에선 판매금지된 ‘즐거운 사라’가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돼 이제까지 10만 부 넘게 팔렸다.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올해 88세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도리스 레싱처럼 늙어서도 정력적으로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늙어도 야한 소설 쓰고 싶다는 말입니다. 늙으면 몸 사리고 회고적으로 변하게 마련이지만 저는 그러지 않으려 합니다.”
마 교수는 12월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는 문화비평집을 내고, 내년 초에는 생애 열 번째 단편집도 묶어낼 예정이다. 모 일간지에 ‘섹스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다 중단했던 작품들과 몇 편을 더 보충한 것이다. “작가는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글쓰기를 통한 대리배설 욕구를 시원하게 풀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성실히 실행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에선 외설작가로, 다른 한편에선 앞서가는 예술가로 엇갈리는 마광수 교수의 삶과 문학은 이래저래 흥미롭다.
“아쉬운 것은 외로움이지요. 애인도 없고 아내도 없고….”
서울 이촌1동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 교수는 장미 담배를 물고 있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에 긴 담배를 끼우고, 끝없이 연기를 내뿜는 그의 어깨 너머로 30년 전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그의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빠져 노년의 슬픔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지만, 그때 그는 나름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그 시절 그는 심리주의 비평을 공부하며 에로티시즘에 눈떴다. 노벨상 수상작가 존 쿳시는 ‘추락’에서 “에로스가 내게로 들어왔다”고 썼는데, 에로스는 마 교수의 마음속으로도 깊이 들어갔다. 이후 그의 삶은 한마디로 ‘야(野)한 삶’이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필두로, 대법원에서 음란물 판결을 받았던 ‘즐거운 사라’ 등 35권의 책은 모두 성을 다루고 있다. 그에게 성 문제는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과 인권의 문제다. 그만큼 절박하게 끌어안고 있는 절대가치다.
야한 신간 썼다가 감옥 끌려갈까 걱정돼 수위 조절
육체는 늙어가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도 팽팽해서 ‘야성’이 들끓고 있다. 부지런히 써댄다. 쿳시가 사제간의 ‘부적절한 사랑’ 이야기를 모티프로 ‘추락’을 썼듯, 마 교수도 이번에 같은 주제의 소설 ‘사랑의 학교’를 탈고했다. 200자 원고지 300장 분량의 이 소설은 홍익대 교수 재직 시의 경험을 토대로 주인공 ‘나’와 여제자 다섯 명과의 사랑을 ‘야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 속의 ‘나’를 실제 저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다 ‘뻥’이에요. 소설 창작은 거짓말하는 즐거움이 있고, 독자들은 또 속아주는 즐거움이 있는 것 아닌가요? 처음에 150장 정도로 정말 야하게 썼다가 또다시 감옥에 끌려가면 안 될 것 같아 톤을 조금 낮췄습니다. 사제간의 연애와 섹스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금기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겁니다. 성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고, 모든 종류의 검열은 철폐돼야 합니다. 성은 억압할수록 왜곡되기 쉽습니다.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도 ‘성을 억압할수록 독재사회는 더 연장되고, 나치즘 파시즘 사회로 간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수필집은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쓴 글 가운데 미발표작들을 가려모은 것이다. 여기서도 그는 대학교수라는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거침없이 내지른다. 집단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치는 사회를 신랄하게 꼬집고, 부부간 스와핑을 권장하고, 섹스에 헤픈 여자가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사랑’이란 성적 합일감을 필연코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속궁합’이 안 맞는다면 사랑은 헛된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해서 섹스하게 되는 게 아니라 섹스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섹스부터 해봐야 한다.’
-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중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될 수 있을 때, 우리나라의 대학은 학문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대학교수는 ‘품위의 꼭두각시’나 ‘정치적 눈치꾼’으로서가 아니라, ‘광적인 공부벌레’나 ‘실험적 가설의 자유로운 배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중에서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가는 자유인이지만 그의 앞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올 초엔 새 시집 ‘야하디 얄라숑’에 예전 제자의 시 1편을 무단으로 실었다가 학교 측의 징계를 받아 1학기를 쉬어야 했다. 또 4월엔 음란물 판정을 받은 ‘즐거운 사라’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벌금 200만원을 물기도 했다.
“400편의 시를 정리하면서 그 시를 빼놓기 아까워 집어넣었습니다. 홍익대 교수 시절 교지 지도교수를 지냈는데, 그때 제자가 쓴 시예요. 남의 장난감을 훔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시를 무단으로 게재한 것은 무조건 잘못한 일이지요. 그런데 ‘즐거운 사라’는 다릅니다. 재판 끝나고 16년이나 지났어요. 세상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요즘 나도는 인터넷의 ‘야설(야한 이야기)’이나 ‘야동(야한 동영상)’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옛날 잣대를 지금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1992년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구속돼 두 달간 수감생활을 한 그는 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돼 해직됐다 98년 복직했지만, 2000년 다시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건강을 이유로 휴직했다가 복직했고, 동료 교수들과 문단의 ‘왕따’로 그의 마음은 크게 위축됐다. 건강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 ‘전과자’이기 때문에 교직연금도 탈 수 없어 정년퇴직 뒤에 뭐 먹고 살까 걱정도 많다.
동료 교수들과 문단의 왕따지만 강의는 인기 여전
“우울증에 걸려 약을 많이 먹었더니 위궤양이 심해졌어요.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했어요. 3년간 휴직 이후 학교로 돌아갔더니 동료 교수들이 전공과목 강좌를 안 줘요. 지금도 직장(대학)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올해 2학기 강의도 ‘연극의 이해’라는 과목만 강의하고 있어요. 학생들은 저를 좋아해서 이번 강의에도 많이 몰렸는데, 400명으로 자르고 반을 두 개로 나눴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학생들, 골수 팬들 덕분에 그는 허청거리는 다리를 다시 뻗대고 선다. 그가 대학에서 궁지에 몰렸을 때 학생들은 ‘마광수를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며 성원해줬다. 그의 팬들이 주로 결집하는 홈페이지(www.makwangsoo.com) 회원 2만여 명 가운데 몇몇은 11월2일 에세이집 출판기념회도 마련해줬다. 한국에선 판매금지된 ‘즐거운 사라’가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돼 이제까지 10만 부 넘게 팔렸다.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올해 88세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도리스 레싱처럼 늙어서도 정력적으로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늙어도 야한 소설 쓰고 싶다는 말입니다. 늙으면 몸 사리고 회고적으로 변하게 마련이지만 저는 그러지 않으려 합니다.”
마 교수는 12월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는 문화비평집을 내고, 내년 초에는 생애 열 번째 단편집도 묶어낼 예정이다. 모 일간지에 ‘섹스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다 중단했던 작품들과 몇 편을 더 보충한 것이다. “작가는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글쓰기를 통한 대리배설 욕구를 시원하게 풀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성실히 실행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에선 외설작가로, 다른 한편에선 앞서가는 예술가로 엇갈리는 마광수 교수의 삶과 문학은 이래저래 흥미롭다.
“아쉬운 것은 외로움이지요. 애인도 없고 아내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