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8일 미국 연방준비은행(이하 미 연준)은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거쳐 5.25%이던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린 4.75%로 전격 결정했다. 8월 중순 프랑스 BNP파리바은행의 유동성 경직 이후 거의 한 달 만의 조처다. 10월31일에는 기준금리를 더 내려 4.5%로 결정했다.
금리인하 여부를 놓고 미 연준과 월스트리트 간에 심리적 줄다리기가 계속돼왔음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언급한 바 있다. 미 연준의 금리인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발생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을 완화함으로써 실물경제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사전에 제한적이나마 차단하기 위해 단행됐다. 1986년부터 95년까지 지속됐던 저축대부조합(S·LA) 사태나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촉발된 롱텀 캐피탈 사태 모두 유동성 공급→금리인하 과정을 거치면서 안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금리인하는 1000억 달러가 넘는 긴급 유동자금 공급 이후에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대응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 연준의 금리인하 가능성을 두고 물론 찬반 논의가 있었다. 찬성 쪽은 실물경제에 대한 악영향 차단,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 등을 이유로 꼽았고, 반대 쪽은 도덕적 해이 문제를 거론했다. 미 연준과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투자금융기관들의 전략적 실수를 보전해줌으로써 이들 금융기업의 과실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옳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적어도 앞서 지적한 예를 보면 이 같은 정책 결정이 단순히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고 치부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러나 여기서 관심 있게 짚어보아야 할 점은 금리인하가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경제, 비(非)경제적 파급 효과다.
지난 3년간 달러화 가치는 30% 넘게 하락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인하는 달러화 약세 기조를 고착화할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5월까지 미국정부는 두 차례 미-중간 전략적 경제회담(Strategic Economic Dialogue)을 통해 위안화를 10~15% 평가절상해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 당국이 환율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견지했다. 중국은 차일피일 위안화 절상 문제를 지연시키는 한편, 일본 엔화의 저평가 문제를 거론하며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8월 중순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달러화 약세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인하는 달러화 약세를 가속화한다. 결국 중국정부가 아무리 버텨도 위안화 및 엔화에 대한 달러화 절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곡물가격 상승·고유가 등이 미 경제붕괴 오해 불러
덕분에 최근 들어 미국의 쌍둥이 적자, 즉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호전되는 분위기다.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8월 576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 676억 달러에 비해 100억 달러가량 감소했다. 재정수지도 2007 회계연도(2006년 10월~2007년 9월)에 1628억33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4.4%나 축소됐다. 이는 2002년도 1578억 달러 이래 최저 수준이다.
미 달러화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달러화의 약세는 곧 ‘미국 패권의 상실’ 또는 ‘미국경제의 침체’를 예고하는 전조인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현재 진행 중인 달러화 약세나 미국경기 둔화는 미국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일시적인 조정 국면을 맞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좀더 자세히 논하자면 세계경제가 제조업 중심에서 금융산업 중심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 세계경제의 패러다임 변화, 즉 제조업에서 금융산업으로의 이동이라는 21세기 후기산업사회의 과도기적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네 가지 자생적인 글로벌 경제의 위기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위기 요인들이 마치 미국의 경제패권이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는 ‘오해’를 부르는 것이다.
먼저 달러화 약세 속에 고유가 행진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경제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 정책적 인하 없이도 달러화 가치는 지난 3년간 30%나 하락했다. 즉 석유수출기구(OPEC)의 절대 석유가격이 같은 기간 30%나 하락한 셈이다. 따라서 이를 보전하기 위해 OPEC은 지난해 10월과 12월1일 석유생산량 150만 배럴 감축을 합의한 바 있다. 최근에는 11월부터 50만 배럴을 증산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현재의 고유가 행진을 멈추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태풍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은 정유시설이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겨울이 오고 있다는 점도 고유가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이번 겨울에 예년보다 추운 날씨가 지속된다면 난방용 석유 수요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배럴당 100달러 시대는 그 시기가 언제냐일 뿐, 머지않아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당연히 글로벌 경제에 물가상승 압력을 가할 것이다.
둘째, 곡물가격 상승이다. 미국 기상청(NWS)은 연초 미국 서부 및 중남부 지역의 강우량 부족과 건조한 날씨로 곡물 작황이 악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10월20일 발생한 캘리포니아 지역의 산불이 한 예다. 따라서 곡물가격은 앞으로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이 역시 물가상승의 잠재 요인이다.
셋째, 미국을 제외한 주요 국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다. 현재 중국 물가는 6%를 향해 치솟고 있다. 베트남 인도 등의 물가도 7%, 13%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각국이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미국 달러화의 상대적 환율가치가 좀더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 점에서 미국 달러화 절하는 두 가지 상충되는 의미를 가진다. 한쪽에서는 달러화 약세로 물가상승과 미국경제의 성장 둔화 가능성이 커지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 가운데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이다.
넷째, 중국경제의 급랭 가능성이다. 이미 중국 증시와 부동산 가격에 심각한 버블현상이 잠재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서구 자본주의적 잣대로 비(非)시장경제의 실물과 금융경제를 바라본다는 것은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경제의 고성장이 서구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중국은 다르다’는 가정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가 간단치 않다.
중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승천하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때 저렴한 노동력을 근간으로 그 자리를 대신해오면서 글로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왔다. 그러나 중국경제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급격히 붕괴하거나 골이 깊게 패는 조정에 맞닥뜨리게 되면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고유가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이 중국경제 침체라는 악재와 맞물릴 경우 글로벌 경제에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인플레이션 토네이도’가 휘몰아칠 것이다.
결국 인위적인 위안화 환율 절상을 거부해온 중국정부로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무역 역조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경제와 함께 글로벌 경제에 자신들의 위상을 입증한 이상, 글로벌 경제와의 ‘공조’라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시장에서의 급격한 버블 붕괴를 막고,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의 지속 성장을 바탕으로 중국경제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선 자발적인 위안화 절상이 필요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미국의 정치경제적 패권은 당분간 도전받을 수는 있지만, 역설적으로 패권에 대한 도전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지를 세계경제에 각인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진작 내 말을 들었다면 세계경제에 짐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두 함께 발전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라고. 역사공부를 좀 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85년 있었던 제1 플라자합의가 그것이다. 미국에 엔화절상 압력을 받은 일본은 회담 후 곧장 엔화가치를 50% 이상 절상했다. 이후 일본경제는 수출 둔화 우려도 불식한 채 최소 5년간 잘 나갔다. 부동산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일본 자본은 미국 내 부동산 자산 매입에까지 나섰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 구단, 영화사 매입 등 ‘Buy USA’를 외치고 다니는 호시절이 전개됐다.
글로벌 경제 5년 호황 끝 조정 불가피
그러나 미국은 그리 호락호락한 경제가 아니다. 눈물을 머금고 일본에 내줬던 시카고 시어스 타워(Sears Tower)는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로 5년 만에 그 절반 가격에 미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는 일본군 야마모토 제독이 진주만 공습 이후 내뱉는 독백이 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당분간 글로벌 경제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석유를 비롯한 세계 원자재 가격의 상승 속에서도 중국이 버팀목 구실을 하면서 글로벌 경제는 지난 5년간 호황을 누렸다. 이제는 조정이 불가피하다. 쉴새없이 달리는 기관차도 한 번은 쉬어가야 한다. 엔진이 뜨거워지면 언젠가 폭발할지도 모른다.
중국이나 글로벌 경제는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무시하자니 더 큰 피해를 보거나 글로벌 경제의 경기침체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처지다. 이래저래 미국의 경제 패권은 ‘대국(大國)’ 중국마저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과연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패권에 도전하고자 할 것인가? 필자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중국이 곧 위안화를 20% 절상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결국 그럴 것이었다면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금리인하 여부를 놓고 미 연준과 월스트리트 간에 심리적 줄다리기가 계속돼왔음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언급한 바 있다. 미 연준의 금리인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발생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을 완화함으로써 실물경제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사전에 제한적이나마 차단하기 위해 단행됐다. 1986년부터 95년까지 지속됐던 저축대부조합(S·LA) 사태나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촉발된 롱텀 캐피탈 사태 모두 유동성 공급→금리인하 과정을 거치면서 안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금리인하는 1000억 달러가 넘는 긴급 유동자금 공급 이후에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대응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 연준의 금리인하 가능성을 두고 물론 찬반 논의가 있었다. 찬성 쪽은 실물경제에 대한 악영향 차단,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 등을 이유로 꼽았고, 반대 쪽은 도덕적 해이 문제를 거론했다. 미 연준과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투자금융기관들의 전략적 실수를 보전해줌으로써 이들 금융기업의 과실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옳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적어도 앞서 지적한 예를 보면 이 같은 정책 결정이 단순히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고 치부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러나 여기서 관심 있게 짚어보아야 할 점은 금리인하가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경제, 비(非)경제적 파급 효과다.
지난 3년간 달러화 가치는 30% 넘게 하락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인하는 달러화 약세 기조를 고착화할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5월까지 미국정부는 두 차례 미-중간 전략적 경제회담(Strategic Economic Dialogue)을 통해 위안화를 10~15% 평가절상해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 당국이 환율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견지했다. 중국은 차일피일 위안화 절상 문제를 지연시키는 한편, 일본 엔화의 저평가 문제를 거론하며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8월 중순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달러화 약세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인하는 달러화 약세를 가속화한다. 결국 중국정부가 아무리 버텨도 위안화 및 엔화에 대한 달러화 절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곡물가격 상승·고유가 등이 미 경제붕괴 오해 불러
덕분에 최근 들어 미국의 쌍둥이 적자, 즉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호전되는 분위기다.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8월 576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 676억 달러에 비해 100억 달러가량 감소했다. 재정수지도 2007 회계연도(2006년 10월~2007년 9월)에 1628억33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4.4%나 축소됐다. 이는 2002년도 1578억 달러 이래 최저 수준이다.
미 달러화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달러화의 약세는 곧 ‘미국 패권의 상실’ 또는 ‘미국경제의 침체’를 예고하는 전조인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현재 진행 중인 달러화 약세나 미국경기 둔화는 미국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일시적인 조정 국면을 맞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좀더 자세히 논하자면 세계경제가 제조업 중심에서 금융산업 중심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 세계경제의 패러다임 변화, 즉 제조업에서 금융산업으로의 이동이라는 21세기 후기산업사회의 과도기적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네 가지 자생적인 글로벌 경제의 위기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위기 요인들이 마치 미국의 경제패권이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는 ‘오해’를 부르는 것이다.
먼저 달러화 약세 속에 고유가 행진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경제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 정책적 인하 없이도 달러화 가치는 지난 3년간 30%나 하락했다. 즉 석유수출기구(OPEC)의 절대 석유가격이 같은 기간 30%나 하락한 셈이다. 따라서 이를 보전하기 위해 OPEC은 지난해 10월과 12월1일 석유생산량 150만 배럴 감축을 합의한 바 있다. 최근에는 11월부터 50만 배럴을 증산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현재의 고유가 행진을 멈추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태풍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은 정유시설이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겨울이 오고 있다는 점도 고유가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이번 겨울에 예년보다 추운 날씨가 지속된다면 난방용 석유 수요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배럴당 100달러 시대는 그 시기가 언제냐일 뿐, 머지않아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당연히 글로벌 경제에 물가상승 압력을 가할 것이다.
둘째, 곡물가격 상승이다. 미국 기상청(NWS)은 연초 미국 서부 및 중남부 지역의 강우량 부족과 건조한 날씨로 곡물 작황이 악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10월20일 발생한 캘리포니아 지역의 산불이 한 예다. 따라서 곡물가격은 앞으로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이 역시 물가상승의 잠재 요인이다.
셋째, 미국을 제외한 주요 국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다. 현재 중국 물가는 6%를 향해 치솟고 있다. 베트남 인도 등의 물가도 7%, 13%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각국이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미국 달러화의 상대적 환율가치가 좀더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 점에서 미국 달러화 절하는 두 가지 상충되는 의미를 가진다. 한쪽에서는 달러화 약세로 물가상승과 미국경제의 성장 둔화 가능성이 커지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 가운데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이다.
넷째, 중국경제의 급랭 가능성이다. 이미 중국 증시와 부동산 가격에 심각한 버블현상이 잠재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서구 자본주의적 잣대로 비(非)시장경제의 실물과 금융경제를 바라본다는 것은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경제의 고성장이 서구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중국은 다르다’는 가정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가 간단치 않다.
중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승천하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때 저렴한 노동력을 근간으로 그 자리를 대신해오면서 글로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왔다. 그러나 중국경제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급격히 붕괴하거나 골이 깊게 패는 조정에 맞닥뜨리게 되면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고유가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이 중국경제 침체라는 악재와 맞물릴 경우 글로벌 경제에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인플레이션 토네이도’가 휘몰아칠 것이다.
결국 인위적인 위안화 환율 절상을 거부해온 중국정부로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무역 역조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경제와 함께 글로벌 경제에 자신들의 위상을 입증한 이상, 글로벌 경제와의 ‘공조’라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시장에서의 급격한 버블 붕괴를 막고,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의 지속 성장을 바탕으로 중국경제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선 자발적인 위안화 절상이 필요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미국의 정치경제적 패권은 당분간 도전받을 수는 있지만, 역설적으로 패권에 대한 도전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지를 세계경제에 각인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진작 내 말을 들었다면 세계경제에 짐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두 함께 발전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라고. 역사공부를 좀 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85년 있었던 제1 플라자합의가 그것이다. 미국에 엔화절상 압력을 받은 일본은 회담 후 곧장 엔화가치를 50% 이상 절상했다. 이후 일본경제는 수출 둔화 우려도 불식한 채 최소 5년간 잘 나갔다. 부동산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일본 자본은 미국 내 부동산 자산 매입에까지 나섰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 구단, 영화사 매입 등 ‘Buy USA’를 외치고 다니는 호시절이 전개됐다.
글로벌 경제 5년 호황 끝 조정 불가피
그러나 미국은 그리 호락호락한 경제가 아니다. 눈물을 머금고 일본에 내줬던 시카고 시어스 타워(Sears Tower)는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로 5년 만에 그 절반 가격에 미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는 일본군 야마모토 제독이 진주만 공습 이후 내뱉는 독백이 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당분간 글로벌 경제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석유를 비롯한 세계 원자재 가격의 상승 속에서도 중국이 버팀목 구실을 하면서 글로벌 경제는 지난 5년간 호황을 누렸다. 이제는 조정이 불가피하다. 쉴새없이 달리는 기관차도 한 번은 쉬어가야 한다. 엔진이 뜨거워지면 언젠가 폭발할지도 모른다.
중국이나 글로벌 경제는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무시하자니 더 큰 피해를 보거나 글로벌 경제의 경기침체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처지다. 이래저래 미국의 경제 패권은 ‘대국(大國)’ 중국마저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과연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패권에 도전하고자 할 것인가? 필자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중국이 곧 위안화를 20% 절상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결국 그럴 것이었다면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