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한국은 이라크에서의 철군을 준비해야 한다.”
황의돈 사단장(소장) 이하 전 부대원이 결의를 다지기 위해 해병대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자이툰 부대 제1진(나시리야에서 이동해온 서희 제마 부대 포함) 2900명이 아르빌 공항에서 1.5km쯤 떨어진 라시킨 기지에 주둔한 것이 겨우 9월22일이었다. 700여명으로 편성된 2진은 출국 준비중이고(11월 초 출국 예정),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주둔을 1년 연장’하는 동의안을 아직 국회에 제출하지도 못했는데(11월 중순 제출 예정)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세계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선문대 이원삼 교수(이슬람 사상)의 말이다. 이교수는 자이툰 부대 파병 훨씬 전인 2월18일 한국언론재단이 위험지역(이라크)으로 종군할 기자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이 같은 주장을 한 뒤, 줄기차게 반복해오고 있다.
이교수는 정부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반골’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철군 준비를 외치는 것은 쿠르드 지역으로 자이툰을 파병한 것은 ‘국익은 적고 위험은 상당히 높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라크 사태를 예의 주시해온 많은 전문가들은 명분 있는 철군 준비는 해야 한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간동아’가 만나본 전문가 중에서 이교수의 견해에 반대한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노무현 정부는 국민 저항을 무릅쓰며 파병을 해놓고도 미국으로부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못 받고, 자이툰 부대는 앞으로 쏟아질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고 비난한다. 왜 이런 이야기가 쏟아지는 것일까.
이라크 저항세력 북쪽으로 밀려가는 형세
이라크는 크게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많이 사는 남부, 소수이지만 후세인 시절 권력을 잡았던 수니파가 많은 중부, 그리고 쿠르드족이 사는 북부로 3등분된다. 다국적군은 이라크를 다섯 개 지역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시아파가 많은 남부지역은 영국군 부대가, 역시 시아파가 많은 중남부 지역은 폴란드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 부대(일명 폴란드 사단)가 맡고 있다.
수니파가 많은 중부지역의 경우 사마라-티크리트(후세인의 고향이자 생포된 곳, 오무전기 직원이 피살된 곳)-팔루자(미군 시신이 훼손되고 김선일씨가 납치된 곳)로 이어진 ‘수니 3각지대’를 중심으로 강한 항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13일 후세인이 검거된 뒤 티크리트의 저항은 줄어들었지만, 라마디와 바그다드 인근의 빈민지역인 사드르가 새로운 투쟁지로 떠올랐다. 때문에 미군은 제1보병-제1기갑-제1해병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제1 사단(Three One Division)’을 사마라-팔루자-사드르-라마디 등지에 배치해 대대적인 소탕전을 펼치고 있으나, 완전 장악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석유의 40%가 매장돼 있다고 하는 키르쿠크 지역(중북부 지역)은 큰 소요가 없어 미군은 스트라이커 여단 하나를 두고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전 참화를 거의 겪지 않은 가장 북쪽의 쿠르드 지역에는 한국의 자이툰 사단이 들어가 있다(자이툰은 이름만 사단이지 규모는 여단급이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 자이툰 부대는 작전 소요가 가장 적은 안전한 지역에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문제는 미군과 수니파 저항세력이 싸우고 있는 중부지역이다. 미국은 작심한 듯 ‘세 개의 제1 사단’을 투입해 이곳을 훑고 있고, 저항세력은 조금씩 북쪽으로 밀려 올라가는 형세다. 이에 따라 전쟁기간 중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키르쿠크와 모술 지역이 차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미군의 소탕전이 계속되면 이들은 산이 많은 쿠르드족 지역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독립투쟁을 벌여온 쿠르드족은 1974년 아르빌·다후크·술라이마니아 3개 주를 쿠르드 자치지역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91년에는 미국과 영국이 걸프전에서 승리한 뒤 북위 36도 이북의 이라크 영공을 ‘비행금지구역(No Fly Zone)’으로 정해, 이 지역으로는 아예 이라크 공군기가 날아오르지 못하게 했다. 그 덕분에 쿠르드 자치지역은 사실상의 독립을 누려왔고, 쿠르드인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페슈메르가’라는 민병대를 운영해왔다. 페슈메르가는 미군에 쫓긴 이라크인 저항세력이 쿠르드 지역으로 몰려오면 이를 막는 핵심세력이 된다.
그런데 쿠르드 지역으로 몰려오는 반미 저항세력을 페슈메르가만으로 막을 수 없게 된다면, 자이툰 부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이툰은 쿠르드 지역 방어를 책임진 데다 상대가 반군인 만큼 페슈메르가와 함께 작전에 나서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이라크인들로부터 “아랍(이라크)의 배신자인 쿠르드족을 도왔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문제는 한국의 배신은 이미 이라크에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자이툰 무장 허술 … 헬기·전차 없어
지난해 11월 한국이 키르쿠크 쪽으로 자이툰을 파병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이를 환영했다. 지난 2월 국방부는 키르쿠크가 포함된 타밈주를 주로 소개하는 ‘이라크 파병 길라잡이’란 책을 만들어 돌렸다. 4월6일에는 이라크 축구 대표팀을 불러들여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친선 경기를 했는데(한국이 1대 0으로 승리), 이때 자이툰 부대원은 ‘사전 선무’ 차원으로 열렬히 이라크 팀을 응원했다. 그리고 정부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로 하여금 키르쿠크의 부족장 18명을 초청하겠다며 이들에게 한국행 비자를 발급해주었다. 그러나 안전을 이유로 갑자기 아르빌로 파병지를 바꾸면서 초청을 취소해버렸다.
상당수의 이라크인은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에 협조한 쿠르드족을 배신자로 보고 있다. 이라크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이 처음에는 이라크를 돕겠다고 해놓고 갑자기 쿠르드 지역 방어를 책임지게 되자 많은 이라크인들이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쿠르드 지역에 들어간 자이툰 부대가 페슈메르가와 함께 이라크인을 향해 사격을 한다면, 이라크인들은 한국을 적대국으로 여길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자이툰 부대의 무장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평화와 재건’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자이툰 부대를 경무장으로 편성했다. 자이툰이 갖고 있는 최고 기동장비는 K-200 장갑차이고, 최고의 포는 보병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화기중대에서 사용하는 사거리 8km의 81mm 박격포이다. 미국과 영국의 보병은 전부 조준경이 달린 소총을 갖고 있으나, 한국 소총에는 조준경이 없다. 요인 경호에 참여할 10명 정도의 저격수만이 조준경이 달린 소총을 갖고 있는 형편이다.
라시킨에 주둔한 자이툰 부대는 현재 1, 2, 3선의 방어선을 쳐놓고 있는데, 이 방어선에서는 감시초소와 별도로 참호를 파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저항세력이 라시킨 기지를 공격해 방어선이 뚫리면, 병사들은 참호 속에 고립된 상태에서 전투에 임해야 한다. 유선 통신망이 두절돼버리기라도 하면 병사들은 오직 개인용 무전기에 의존해 작전해야 한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자이툰 사령부는 재빨리 헬기를 띄워 공중사격을 하거나 정찰을 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7위의 헬기 보유 대국이지만, 정부는 ‘자이툰은 평화와 재건을 목적으로 파병된 부대’라는 이유로 단 한 대의 헬기도 내주지 않았다.
자이툰 부대에는 전차도 없으므로 K-200 장갑차를 출동시켜 고립된 병사를 구출해내야 한다. 그러나 이 장갑차는 시야가 좁다는 약점이 있다. 미군의 스트라이커 장갑차에는 잠망경 같은 장비가 달려 있어 밖을 잘 볼 수 있으나, K-200 장갑차는 아주 작은 창을 통해서만 밖을 볼 수 있다. 또한 미군은 겉모양은 지프와 흡사하나 차체는 물론 앞유리와 옆창의 방탄력이 K-200보다 강한 험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유사시에는 AH-64 아파치 헬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미군도 번번이 저항군에게 고립되는데, 경무장의 자이툰이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 자이툰은 벌써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월 초 서울을 출발할 2진은 아르빌 공항에서 30여km쯤 떨어진 스와라시에 주둔할 예정이었지만 유사시 고립될 수 있다는 문제점 때문에 라시킨 기지에 함께 수용키로 결정됐다. 자이툰의 위축은 보급품 수령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자이툰은 아르빌 공항을 통해 물자를 공급받는데 공항에 내려놓은 물자를 라시킨 기지로 전달해주는 것은 현지인들이다. 자이툰 부대는 여간해서는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고 있는 것. 때문에 현지인들은 “왜 한국군은 기지에만 있고 꼼짝도 하지 않느냐”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쿠르드족은 이번 기회를 1300년 만에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쿠르드족은 74년 이라크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확보할 때 키르쿠크 지역이 자치영역에서 제외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쿠르드족이 발전하거나 장차 독립국가를 세우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유전지대인 키르쿠크 지역을 확보하면 이 문제는 금방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쿠르드족은 “이라크 연방 내에 쿠르드 자치지역을 만들든, ‘쿠르디스탄’이란 이름으로 독립국가를 세우든 간에 키르쿠크는 반드시 쿠르드 영유지에 포함되어야 한다. 키르쿠크는 쿠르드족의 수도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쿠르드족, 터키·이란 주변국과도 갈등
미국에서 쿠르드 독립을 지원해온 북미쿠르드연맹 의장 살리 사만 박사는 “키르쿠크를 쿠르드 지역에서 제외한다면 쿠르드인들은 이라크로부터의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으면 바로 독립전쟁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들은 키르쿠크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니파, 시아파를 막론하고 이라크인(아랍인)들은 키르쿠크를 쿠르드족에게 내줄 의사가 전혀 없다. 이러한 생각을 가장 강하게 갖고 있던 이가 후세인 전 대통령이었는데, 그는 70년대에 이라크인을 키르쿠크와 모술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강력한 ‘사민(徙民) 정책’을 펼치고, 키르쿠크주란 이름을 타밈주로 바꿔버렸다. 그 결과 지금 타밈주에는 6대 4의 비율로 이라크인이 많아졌다. 따라서 쿠르드인의 자치 영역이 논의되기 시작하면 타밈주 지역에서 이라크인과 쿠르드인은 심각한 대결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때 자이툰은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가.
쿠르드족의 내분도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이라크는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터키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때 오스만 터키는 독일과 한 편이고 영국과 프랑스는 그 반대편에 서서 싸웠다. 영국은 오스만 터키를 공략하기 위해 이들의 지배 아래 있는 아랍인들에게 ‘당근’을 던졌다. 1915년 아랍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집트 고등판무관인 맥마흔으로 하여금 ‘오스만 터키와 싸워 이기면 팔레스타인 사람을 포함한 아랍인들에게 아랍인 국가를 세우도록 해주겠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맥마흔 서한).
그로 인해 지금 이라크 지역에 있던 아랍인들은 영국과 합세해 오스만 터키를 밀어내고 독립을 이루었다. 그러자 이에 자극받은 쿠르드족의 지도자 쉐이크 마흐무디 바르자니가 1919년과 23년, 31년 잇달아 이라크로부터 독립을 시도했으나 영국과 이라크 연합군에 눌려 실패했다. 그리고 46년 그의 아들인 물라 무스타파 바르자니가 ‘쿠르르 민주당’으로 번역되는 KDP (Kurdistan Democratic Party)를 만들어 75년 대대적인 독립투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바로 그해 물라 무스타파 바르자니의 오랜 숙적인 잘랄 탈라바니가 ‘쿠르드 애국동맹’으로 번역되는 PUK(Patriotic Union of Kurdistan)를 만들었다. PUK는 지주의 재산을 빼앗아 분배한다는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해 쿠르드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산시켰다. 그로 인해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은 자본주의 성격이 강한 북부의 KDP와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남부의 PUK 지역으로 양분되었다. 따라서 쿠르드의 자치나 독립이 확정될 경우 두 세력은 주도권 장악을 위한 내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때 자이툰은 어느 편을 지원할 것인가.
KDP와 PUK는 일시적으로 제휴한 적이 있었다. 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은 독립을 이루기 위해 이란을 지원했는데 이에 대한 보복으로 88년 3월 이라크군은 쿠르드 지역으로 화학탄을 발사해 5000여명을 학살했다. 95년에도 역시 화학탄을 발사했다. 미군은 이를 근거로 후세인의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주변국의 시선도 문제이다. 이란은 국민의 10% 정도가 쿠르드족인지라 이라크 쿠르드가 독립국가를 세우는 데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이란보다 더욱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터키다. 터키는 전 국민의 28%가 쿠르드족인데, 이러한 쿠르드인을 하나로 묶는 정치조직이 바로 ‘쿠르드노동자당’으로 번역되는 PKK(‘페카카’로 읽는다. 영어로 옮기면 Kurdistan Worker’s Party)이다. PKK는 오사마 빈 라덴만큼이나 강력한 테러를 일으키는 조직으로 유명한데, 99년 터키는 이 조직의 리더인 압둘라 오잘란을 생포해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를 처형할 경우 더욱 큰 테러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무기징역으로 형량을 낮춰주었다.
“주둔지 변경이나 철군 고민해야 할 것”
이런 형편이기 때문에 터키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라크 쿠르드의 독립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미국은 터키를 제4사단과 공군기의 발진기지로 이용하려고 했으나 터키 의회의 반대로 실패한 바 있다. 할 수 없이 미군은 쿠르드 지역에 101공정사단을 낙하시킨 후 쿠르드 민병대인 페슈메르가와 함께 이라크군을 공격하는 작전을 선택했다.
그러자 터키는 곧바로 미 공군에게 공항 이용권을 제공하고 동시에 1만여 병력을 파병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터키가 급작스레 이런 결정을 한 데는 미국이 지원을 약속한 85억달러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이라크 쿠르드가 독립을 선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때 터키군은 이라크 국경을 통과해 모술 근처까지 접근했다가 슬며시 철수했다.
요즘 쿠르드 지역은 재건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에 필요한 물자는 터키의 실로피라는 국경도시를 통해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터키군은 실로피의 국경 초소에 단 두 명의 초병만 배치, 쿠르드 지역으로 가는 물자 통관을 매우 더디게 하고 있다. 쿠르드 지역으로 많은 물자가 공급되면 터키 경제가 그만큼 부흥할 수 있는데도 이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터키에게는 돈보다는 쿠르드족의 독립을 막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아랍인으로 구성된 나라이지만 이라크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시리아도 국민의 10% 정도가 쿠르드족인데, 시리아 또한 쿠르드족의 독립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라크 쿠르드 지역은 이라크인과 쿠르드인 간의 적대감, 터키인과 쿠르드인 간의 갈등, 이란과 쿠르드인 간의 불편함, 시리아와 쿠르드인 간의 마찰, 그리고 KDP와 PUK라는 쿠르드 내부조직 간의 주도권 싸움이 상존하는 ‘미래의 화약고’다. 이러한 곳에 평화와 재건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경무장만 한 채 들어간 자이툰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테러리즘연구소의 최진태 소장은 “이미 상당히 피를 흘린 미국은 그래도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이라크 사태를 종식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일어나는 쿠르드 사태에 대해서는 그들도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높다. 쿠르드족은 철저하게 미국에 붙어 독립을 추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러한 위험을 예측하지 못하고 당장 안전하다는 이유로 ‘갈등의 골짜기’로 뛰어 들어갔다. 이라크에서 함께 싸워줄 친구를 필요로 했던 미국은 이러한 선택을 한 한국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쿠르드족은 2300만명이 넘는 인구와 독자 언어가 있으면서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유일한 민족이다. 따라서 쿠르드 문제는 21세기 현대사가 풀어야 할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한 전문가의 말이다.
“2005년 폴란드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독일군을 중심으로 한 NATO군과 프랑스군이 UN 주도의 다국적군으로 이라크로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이때가 한국으로서는 주둔지를 변경하거나 철군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이다. 그때까지는 쿠르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한국은 쿠르드가 아닌 이라크인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켜야 전후 복구사업에서 더욱 큰 ‘파이’를 차지할 수 있다.”
황의돈 사단장(소장) 이하 전 부대원이 결의를 다지기 위해 해병대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자이툰 부대 제1진(나시리야에서 이동해온 서희 제마 부대 포함) 2900명이 아르빌 공항에서 1.5km쯤 떨어진 라시킨 기지에 주둔한 것이 겨우 9월22일이었다. 700여명으로 편성된 2진은 출국 준비중이고(11월 초 출국 예정),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주둔을 1년 연장’하는 동의안을 아직 국회에 제출하지도 못했는데(11월 중순 제출 예정)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세계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선문대 이원삼 교수(이슬람 사상)의 말이다. 이교수는 자이툰 부대 파병 훨씬 전인 2월18일 한국언론재단이 위험지역(이라크)으로 종군할 기자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이 같은 주장을 한 뒤, 줄기차게 반복해오고 있다.
이교수는 정부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반골’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철군 준비를 외치는 것은 쿠르드 지역으로 자이툰을 파병한 것은 ‘국익은 적고 위험은 상당히 높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라크 사태를 예의 주시해온 많은 전문가들은 명분 있는 철군 준비는 해야 한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간동아’가 만나본 전문가 중에서 이교수의 견해에 반대한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노무현 정부는 국민 저항을 무릅쓰며 파병을 해놓고도 미국으로부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못 받고, 자이툰 부대는 앞으로 쏟아질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고 비난한다. 왜 이런 이야기가 쏟아지는 것일까.
이라크 저항세력 북쪽으로 밀려가는 형세
이라크는 크게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많이 사는 남부, 소수이지만 후세인 시절 권력을 잡았던 수니파가 많은 중부, 그리고 쿠르드족이 사는 북부로 3등분된다. 다국적군은 이라크를 다섯 개 지역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시아파가 많은 남부지역은 영국군 부대가, 역시 시아파가 많은 중남부 지역은 폴란드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 부대(일명 폴란드 사단)가 맡고 있다.
수니파가 많은 중부지역의 경우 사마라-티크리트(후세인의 고향이자 생포된 곳, 오무전기 직원이 피살된 곳)-팔루자(미군 시신이 훼손되고 김선일씨가 납치된 곳)로 이어진 ‘수니 3각지대’를 중심으로 강한 항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13일 후세인이 검거된 뒤 티크리트의 저항은 줄어들었지만, 라마디와 바그다드 인근의 빈민지역인 사드르가 새로운 투쟁지로 떠올랐다. 때문에 미군은 제1보병-제1기갑-제1해병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제1 사단(Three One Division)’을 사마라-팔루자-사드르-라마디 등지에 배치해 대대적인 소탕전을 펼치고 있으나, 완전 장악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석유의 40%가 매장돼 있다고 하는 키르쿠크 지역(중북부 지역)은 큰 소요가 없어 미군은 스트라이커 여단 하나를 두고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전 참화를 거의 겪지 않은 가장 북쪽의 쿠르드 지역에는 한국의 자이툰 사단이 들어가 있다(자이툰은 이름만 사단이지 규모는 여단급이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 자이툰 부대는 작전 소요가 가장 적은 안전한 지역에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문제는 미군과 수니파 저항세력이 싸우고 있는 중부지역이다. 미국은 작심한 듯 ‘세 개의 제1 사단’을 투입해 이곳을 훑고 있고, 저항세력은 조금씩 북쪽으로 밀려 올라가는 형세다. 이에 따라 전쟁기간 중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키르쿠크와 모술 지역이 차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미군의 소탕전이 계속되면 이들은 산이 많은 쿠르드족 지역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독립투쟁을 벌여온 쿠르드족은 1974년 아르빌·다후크·술라이마니아 3개 주를 쿠르드 자치지역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91년에는 미국과 영국이 걸프전에서 승리한 뒤 북위 36도 이북의 이라크 영공을 ‘비행금지구역(No Fly Zone)’으로 정해, 이 지역으로는 아예 이라크 공군기가 날아오르지 못하게 했다. 그 덕분에 쿠르드 자치지역은 사실상의 독립을 누려왔고, 쿠르드인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페슈메르가’라는 민병대를 운영해왔다. 페슈메르가는 미군에 쫓긴 이라크인 저항세력이 쿠르드 지역으로 몰려오면 이를 막는 핵심세력이 된다.
그런데 쿠르드 지역으로 몰려오는 반미 저항세력을 페슈메르가만으로 막을 수 없게 된다면, 자이툰 부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이툰은 쿠르드 지역 방어를 책임진 데다 상대가 반군인 만큼 페슈메르가와 함께 작전에 나서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이라크인들로부터 “아랍(이라크)의 배신자인 쿠르드족을 도왔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문제는 한국의 배신은 이미 이라크에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자이툰 무장 허술 … 헬기·전차 없어
지난해 11월 한국이 키르쿠크 쪽으로 자이툰을 파병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이를 환영했다. 지난 2월 국방부는 키르쿠크가 포함된 타밈주를 주로 소개하는 ‘이라크 파병 길라잡이’란 책을 만들어 돌렸다. 4월6일에는 이라크 축구 대표팀을 불러들여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친선 경기를 했는데(한국이 1대 0으로 승리), 이때 자이툰 부대원은 ‘사전 선무’ 차원으로 열렬히 이라크 팀을 응원했다. 그리고 정부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로 하여금 키르쿠크의 부족장 18명을 초청하겠다며 이들에게 한국행 비자를 발급해주었다. 그러나 안전을 이유로 갑자기 아르빌로 파병지를 바꾸면서 초청을 취소해버렸다.
상당수의 이라크인은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에 협조한 쿠르드족을 배신자로 보고 있다. 이라크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이 처음에는 이라크를 돕겠다고 해놓고 갑자기 쿠르드 지역 방어를 책임지게 되자 많은 이라크인들이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쿠르드 지역에 들어간 자이툰 부대가 페슈메르가와 함께 이라크인을 향해 사격을 한다면, 이라크인들은 한국을 적대국으로 여길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자이툰 부대의 무장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평화와 재건’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자이툰 부대를 경무장으로 편성했다. 자이툰이 갖고 있는 최고 기동장비는 K-200 장갑차이고, 최고의 포는 보병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화기중대에서 사용하는 사거리 8km의 81mm 박격포이다. 미국과 영국의 보병은 전부 조준경이 달린 소총을 갖고 있으나, 한국 소총에는 조준경이 없다. 요인 경호에 참여할 10명 정도의 저격수만이 조준경이 달린 소총을 갖고 있는 형편이다.
라시킨에 주둔한 자이툰 부대는 현재 1, 2, 3선의 방어선을 쳐놓고 있는데, 이 방어선에서는 감시초소와 별도로 참호를 파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저항세력이 라시킨 기지를 공격해 방어선이 뚫리면, 병사들은 참호 속에 고립된 상태에서 전투에 임해야 한다. 유선 통신망이 두절돼버리기라도 하면 병사들은 오직 개인용 무전기에 의존해 작전해야 한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자이툰 사령부는 재빨리 헬기를 띄워 공중사격을 하거나 정찰을 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7위의 헬기 보유 대국이지만, 정부는 ‘자이툰은 평화와 재건을 목적으로 파병된 부대’라는 이유로 단 한 대의 헬기도 내주지 않았다.
자이툰 부대에는 전차도 없으므로 K-200 장갑차를 출동시켜 고립된 병사를 구출해내야 한다. 그러나 이 장갑차는 시야가 좁다는 약점이 있다. 미군의 스트라이커 장갑차에는 잠망경 같은 장비가 달려 있어 밖을 잘 볼 수 있으나, K-200 장갑차는 아주 작은 창을 통해서만 밖을 볼 수 있다. 또한 미군은 겉모양은 지프와 흡사하나 차체는 물론 앞유리와 옆창의 방탄력이 K-200보다 강한 험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유사시에는 AH-64 아파치 헬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미군도 번번이 저항군에게 고립되는데, 경무장의 자이툰이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 자이툰은 벌써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월 초 서울을 출발할 2진은 아르빌 공항에서 30여km쯤 떨어진 스와라시에 주둔할 예정이었지만 유사시 고립될 수 있다는 문제점 때문에 라시킨 기지에 함께 수용키로 결정됐다. 자이툰의 위축은 보급품 수령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자이툰은 아르빌 공항을 통해 물자를 공급받는데 공항에 내려놓은 물자를 라시킨 기지로 전달해주는 것은 현지인들이다. 자이툰 부대는 여간해서는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고 있는 것. 때문에 현지인들은 “왜 한국군은 기지에만 있고 꼼짝도 하지 않느냐”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쿠르드족은 이번 기회를 1300년 만에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쿠르드족은 74년 이라크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확보할 때 키르쿠크 지역이 자치영역에서 제외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쿠르드족이 발전하거나 장차 독립국가를 세우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유전지대인 키르쿠크 지역을 확보하면 이 문제는 금방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쿠르드족은 “이라크 연방 내에 쿠르드 자치지역을 만들든, ‘쿠르디스탄’이란 이름으로 독립국가를 세우든 간에 키르쿠크는 반드시 쿠르드 영유지에 포함되어야 한다. 키르쿠크는 쿠르드족의 수도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쿠르드족, 터키·이란 주변국과도 갈등
미국에서 쿠르드 독립을 지원해온 북미쿠르드연맹 의장 살리 사만 박사는 “키르쿠크를 쿠르드 지역에서 제외한다면 쿠르드인들은 이라크로부터의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으면 바로 독립전쟁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들은 키르쿠크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니파, 시아파를 막론하고 이라크인(아랍인)들은 키르쿠크를 쿠르드족에게 내줄 의사가 전혀 없다. 이러한 생각을 가장 강하게 갖고 있던 이가 후세인 전 대통령이었는데, 그는 70년대에 이라크인을 키르쿠크와 모술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강력한 ‘사민(徙民) 정책’을 펼치고, 키르쿠크주란 이름을 타밈주로 바꿔버렸다. 그 결과 지금 타밈주에는 6대 4의 비율로 이라크인이 많아졌다. 따라서 쿠르드인의 자치 영역이 논의되기 시작하면 타밈주 지역에서 이라크인과 쿠르드인은 심각한 대결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때 자이툰은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가.
쿠르드족의 내분도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이라크는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터키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때 오스만 터키는 독일과 한 편이고 영국과 프랑스는 그 반대편에 서서 싸웠다. 영국은 오스만 터키를 공략하기 위해 이들의 지배 아래 있는 아랍인들에게 ‘당근’을 던졌다. 1915년 아랍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집트 고등판무관인 맥마흔으로 하여금 ‘오스만 터키와 싸워 이기면 팔레스타인 사람을 포함한 아랍인들에게 아랍인 국가를 세우도록 해주겠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맥마흔 서한).
그로 인해 지금 이라크 지역에 있던 아랍인들은 영국과 합세해 오스만 터키를 밀어내고 독립을 이루었다. 그러자 이에 자극받은 쿠르드족의 지도자 쉐이크 마흐무디 바르자니가 1919년과 23년, 31년 잇달아 이라크로부터 독립을 시도했으나 영국과 이라크 연합군에 눌려 실패했다. 그리고 46년 그의 아들인 물라 무스타파 바르자니가 ‘쿠르르 민주당’으로 번역되는 KDP (Kurdistan Democratic Party)를 만들어 75년 대대적인 독립투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바로 그해 물라 무스타파 바르자니의 오랜 숙적인 잘랄 탈라바니가 ‘쿠르드 애국동맹’으로 번역되는 PUK(Patriotic Union of Kurdistan)를 만들었다. PUK는 지주의 재산을 빼앗아 분배한다는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해 쿠르드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산시켰다. 그로 인해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은 자본주의 성격이 강한 북부의 KDP와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남부의 PUK 지역으로 양분되었다. 따라서 쿠르드의 자치나 독립이 확정될 경우 두 세력은 주도권 장악을 위한 내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때 자이툰은 어느 편을 지원할 것인가.
KDP와 PUK는 일시적으로 제휴한 적이 있었다. 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은 독립을 이루기 위해 이란을 지원했는데 이에 대한 보복으로 88년 3월 이라크군은 쿠르드 지역으로 화학탄을 발사해 5000여명을 학살했다. 95년에도 역시 화학탄을 발사했다. 미군은 이를 근거로 후세인의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주변국의 시선도 문제이다. 이란은 국민의 10% 정도가 쿠르드족인지라 이라크 쿠르드가 독립국가를 세우는 데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이란보다 더욱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터키다. 터키는 전 국민의 28%가 쿠르드족인데, 이러한 쿠르드인을 하나로 묶는 정치조직이 바로 ‘쿠르드노동자당’으로 번역되는 PKK(‘페카카’로 읽는다. 영어로 옮기면 Kurdistan Worker’s Party)이다. PKK는 오사마 빈 라덴만큼이나 강력한 테러를 일으키는 조직으로 유명한데, 99년 터키는 이 조직의 리더인 압둘라 오잘란을 생포해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를 처형할 경우 더욱 큰 테러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무기징역으로 형량을 낮춰주었다.
“주둔지 변경이나 철군 고민해야 할 것”
이런 형편이기 때문에 터키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라크 쿠르드의 독립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미국은 터키를 제4사단과 공군기의 발진기지로 이용하려고 했으나 터키 의회의 반대로 실패한 바 있다. 할 수 없이 미군은 쿠르드 지역에 101공정사단을 낙하시킨 후 쿠르드 민병대인 페슈메르가와 함께 이라크군을 공격하는 작전을 선택했다.
그러자 터키는 곧바로 미 공군에게 공항 이용권을 제공하고 동시에 1만여 병력을 파병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터키가 급작스레 이런 결정을 한 데는 미국이 지원을 약속한 85억달러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이라크 쿠르드가 독립을 선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때 터키군은 이라크 국경을 통과해 모술 근처까지 접근했다가 슬며시 철수했다.
요즘 쿠르드 지역은 재건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에 필요한 물자는 터키의 실로피라는 국경도시를 통해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터키군은 실로피의 국경 초소에 단 두 명의 초병만 배치, 쿠르드 지역으로 가는 물자 통관을 매우 더디게 하고 있다. 쿠르드 지역으로 많은 물자가 공급되면 터키 경제가 그만큼 부흥할 수 있는데도 이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터키에게는 돈보다는 쿠르드족의 독립을 막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아랍인으로 구성된 나라이지만 이라크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시리아도 국민의 10% 정도가 쿠르드족인데, 시리아 또한 쿠르드족의 독립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라크 쿠르드 지역은 이라크인과 쿠르드인 간의 적대감, 터키인과 쿠르드인 간의 갈등, 이란과 쿠르드인 간의 불편함, 시리아와 쿠르드인 간의 마찰, 그리고 KDP와 PUK라는 쿠르드 내부조직 간의 주도권 싸움이 상존하는 ‘미래의 화약고’다. 이러한 곳에 평화와 재건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경무장만 한 채 들어간 자이툰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테러리즘연구소의 최진태 소장은 “이미 상당히 피를 흘린 미국은 그래도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이라크 사태를 종식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일어나는 쿠르드 사태에 대해서는 그들도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높다. 쿠르드족은 철저하게 미국에 붙어 독립을 추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러한 위험을 예측하지 못하고 당장 안전하다는 이유로 ‘갈등의 골짜기’로 뛰어 들어갔다. 이라크에서 함께 싸워줄 친구를 필요로 했던 미국은 이러한 선택을 한 한국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쿠르드족은 2300만명이 넘는 인구와 독자 언어가 있으면서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유일한 민족이다. 따라서 쿠르드 문제는 21세기 현대사가 풀어야 할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한 전문가의 말이다.
“2005년 폴란드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독일군을 중심으로 한 NATO군과 프랑스군이 UN 주도의 다국적군으로 이라크로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이때가 한국으로서는 주둔지를 변경하거나 철군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이다. 그때까지는 쿠르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한국은 쿠르드가 아닌 이라크인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켜야 전후 복구사업에서 더욱 큰 ‘파이’를 차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