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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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3D 업종 꼬리표 뗄까

수사경찰 전문화 위한 수사경과제 내년 시행 … 수당 현실화·승진 가점 등 처우 개선 검토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11-03 19: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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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 3D 업종 꼬리표 뗄까

    2002년 취임 당시 수사경과제를 공약한 최기문 경찰청장.

    서울 청량리경찰서에서 ‘강력반’ 형사들이 사라졌다. 두 달 전 강력반 간판을 일제히 내린 것. 형사계, 정보계, 수사계도 함께 간판을 내렸다. 대신 일반기업처럼 팀 간판이 올랐다. ‘강력수사팀’ ‘지능수사팀’ ‘유치관리팀’…. 청량리서의 이런 변화는 내년 상반기에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사경과(警科)제’를 9월1일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경과제란 수사경찰을 일반경찰과 분리해 독립적인 인사, 교육 시스템을 갖추어 운영하는 제도. 수사경찰을 수사부서에서만 평생 근무하도록 보장함으로써 수사 전문성과 역량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수사경과제는 지난여름 경찰이 언론과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던 ‘수난’을 자양분 삼아 피어났다. 최기문 경찰청장이 2003년 취임 당시 내세운 공약이긴 하나 지난 상반기 유영철씨 연쇄살인사건, 이학만씨 경찰관 살해사건, 서울 서남부 지역 미제살인사건 등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형성된 경찰 수사력 약화에 대한 우려 여론이 수사경과제 도입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최청장은 8월 각계 인사와 경찰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범죄는 점차 광역·흉폭·지능화되는 데 비해 일선 수사부서는 열악한 근무여건과 위험 노출로 기피 부서가 된 지 오래”라며 수사경찰의 혁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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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찰청 전경.

    힘들고 승진 불리…기피 부서 된 지 오래

    수사전담제는 한마디로 수사경찰을 다시 ‘경찰의 꽃’으로 부상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일반경찰에서 수사경찰을 분리해내 수사부서에서만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각종 수당 및 인사·승진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 경찰 당국은 전체 경찰의 17%를 차지하는 수사경찰을 25%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로 내년 799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할 예정이다. 경찰청 나영민 기획반장은 “월 30만원인 수사비, 월 73시간까지만 인정해주는 야근수당 등도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실 수사부서가 기피 대상이 된 지는 오래다. 올 1월 정기인사 때 15명의 수사인력이 빠져나간 충북 제천경찰서에서 수사부서 지원자가 단 1명에 불과했던 것은 현재 수사경찰의 ‘위상’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 이 같은 ‘공동화(空洞化) 현상’ 때문에 수사경찰관의 경력도 낮아지는 추세다. 현재 수사경찰의 약 60%가 경력 5년 미만이어서 베테랑 형사가 실종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강력반장은 “예전에는 경비부서에 지원하는 경찰이 없어 순번제를 실시했는데, 요즘에는 1순위자도 경비부서에 가기 어려울 정도”라며 “근무여건이 좋은 경비부서에서 승진시험 공부나 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경찰 당국은 또 수사경찰의 ‘진입장벽’을 높여 전문인력을 양성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2년 이상 경력자를 대상으로 수사경찰을 선발, 1년간의 시보과정을 거쳐 수사경과로 편입시킨다는 것. 또 수사부서에서 3년 이상 근무한 뒤 인증시험에 합격해야만 ‘전문수사관’ 자격을 주기로 했다. 전문수사관에게 수당 및 승진 가점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마련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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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악한 근무여건에 놓인 수사경찰은 더 이상 ‘경찰의 꽃’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수사경과제의 핵심은 수사 분야의 전문화 도입이다. 부서로만 나뉘었던 현 체제를 팀제로 바꾸고 각 팀에 전문수사 분야를 부여해 특정 범죄유형에 대한 전문수사관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강력범죄 폭행 사기 횡령 배임 공무원범죄 마약 사이버 선거 등 팀마다 죄종별로 담당사건을 처리하도록 하는 것. 청량리서도 각 팀마다 ‘특별 미션’을 부여하고 있다. 강력수사 6팀은 청량리파, 8팀은 장안파, 11팀은 까불이파 등 조직폭력배를 담당하고, 지능수사 1팀은 공무원 범죄, 2·3·4팀은 사기 횡령 배임 등을 담당하는 식이다. 나영민 기획반장은 “기존에는 같은 폭행사건이라도 현장에서 검거되면 형사계가, 고소·고발장이 접수되면 조사계가 맡았지만 앞으로는 폭행사건 전담 팀이 맡게 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면 시행 두 달을 앞둔 수사경과제를 둘러싼 논란도 많다. 가장 큰 논란은 ‘팀제 개편’에 관한 것. 전문화를 기치로 내걸고 당장 각 팀에서 한 명씩 차출해 당직 근무를 하도록 했지만, 청량리서는 일주일 만에 이런 당직근무 체제를 포기해버렸다. 한 수사경찰은 “새벽에 들어오는 사건은 술 취한 사람들간의 폭행이나 절도가 대부분”이라며 “자신의 전문 죄종만 맡는다면 한두 명만 엄청 일하게 되는 셈”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과거 강력반 출신 형사들의 불만도 높다. 강력반 출신의 한 경찰은 “과거 강력반 형사들은 열심히 강력범을 잡으러만 다니면 됐는데, 이젠 팀에 배당되는 당직사건까지 처리해야 하니 사무실 안에서만 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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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16일 열린 이학만씨 사건으로 순직한 경찰관들의 안장식 모습.

    한편 일선 서에서는 기존 ‘과장-계장-반장’ 직제가 ‘과장-팀장’으로 단순화되면서 계장이었던 경감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새로운 팀제에선 경감이나 경위가 팀장을 맡도록 돼 있기 때문. 서울의 한 일선 서 형사계장은 “순경부터 시작해 20년 넘는 수사경력을 쌓은 경감들이 대부분 50대인데, 어떻게 젊은 후배들과 현장에서 뛰라는 것이냐”며 “수사경과제 시행은 나 같은 50대 경감에겐 이제 경찰조직에서 나가달라는 얘기로 들린다”며 허탈해했다.

    그런가 하면 경사 이하 ‘주니어’ 수사경찰들은 팀제 실시 후 ‘모셔야’ 할 상관들만 많아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한 팀은 ‘경감 1, 경위 2, 경사 2, 경장과 순경 3’ 등 8명으로 구성한다는 게 경찰청 계획이기 때문에 상관이 3명이나 되는 셈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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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초 ‘형사계’ ‘강력계’ 등 간판이 사라지고 죄종별 팀제가 도입될 예정이다.

    계급문화 현실 극복이 성패 관건

    그동안 경찰조직 내에서 골이 깊었던 경찰대 출신과 순경 출신의 갈등은 수사경과제 아래서도 해결되지 않을 조짐이다. 순경 때부터 수사업무를 시작, 경력이 10년 이상 된 40대 경사(팀원)가 수사경력이 매우 짧은 경찰대 출신의 경감(팀장)과 한 팀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 수사경력 10년차의 한 경사는 “계장으로 모셨을 때와 한 팀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면서 “부서 안에 손발은 줄고 머리만 늘어난 기분”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선서의 한 경위는 “다른 부서들의 반발을 고려해 2006년까지 수사경찰만 따로 구분해 승진시험을 치를 수 없게 했기 때문에, 기존 방식대로 필기시험으로 승진시킨다면 수사경과제 안에 새로 생긴 팀장 자리는 경찰대 출신이 싹쓸이할 게 뻔하다”고 꼬집었다.

    물론 경찰 당국은 경찰대 출신 경위라도 수사경과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수사지원팀에서 1년간 시보과정을 밟게 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선 서에서는 “계급사회 특성상 1년 후 팀장이 될 ‘분’에게 누가 나서서 일을 가르치려 들겠느냐”며 그 효과를 의심하는 분위기다.

    수사경과제 전면 확대 두 달을 앞두고 경찰들의 반응은 반반이다. ‘수사경찰이 따로 분리되어 전문화의 길을 걷는다면 일할 맛이 날 것’이라는 기대와 ‘충분하고 구체적인 인력과 예산 마련이 없다면 예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란 우려가 그것.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갈수록 능수능란해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경찰이 전문화되어야 하는 것은 시대적 대세”라며 “경찰이 계급문화를 얼마나 탈피하느냐가 성패의 갈림길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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