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오네긴’의 한 장면.
10월2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찬탄과 박수로 가득 찼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오네긴’이 끝난 시간은 오후 10시40분. 그러나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거듭되는 커튼콜과 기립박수가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쏟아졌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에서부터 실연의 아픔을 넘어선 성숙한 ‘여인’까지, 주인공 ‘타티아나’의 드라마틱한 삶을 전신으로 표현해낸 강수진의 연기는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발레를 잘 모르는 이라도 ‘강수진’이라는 이름은 알 정도로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발레리나다. 10여년 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리나’의 첫 자리는 늘 그가 차지해왔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강수진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유럽에 가야 한다. 그곳에서 강수진은 세계 5대 발레단의 하나로 꼽히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이며, 1999년 4월 발레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여성무용가상을 받은 대스타이기 때문이다. 슈투트가르트 거리를 돌아다니는 버스 옆면에는 강수진의 사진이 붙어 있고, 그의 이름을 딴 난(蘭) 품종도 있다. 세계 유수의 안무가들이 오직 강수진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다. ‘한국을 대표하는’ 혹은 ‘동양인’이라는 수식어 없이도 그는 이미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다.

그가 겪은 가장 최근의 시련은 부상으로 인한 긴 공백이다.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고 명실상부한 세계 정상으로 부상하던 99년, 왼쪽 다리 정강이뼈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걸을 수 없을 만큼 심한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어떻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다리를 방치했느냐. 차라리 부러졌다면 회복이 빨랐을 텐데 다리에 금이 간 채 너무 오래 사용했기 때문에 최악의 상태가 됐다. 뼈가 완전히 붙을 때까지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최후 통첩을 내렸다. 이미 5년 넘게 통증을 참으며 춤을 추었던 강수진으로서는 더 이상 욕심을 부릴 수 없었다. 그때부터 15개월 동안 그는 미래를 알 수 없는 기나긴 휴식에 들어가야 했다.
다시 춤을 출 수 있을지,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암흑의 시간을 넘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다 알고 있는 그의 발이다. 마디마디 굳은살이 박히고 뒤틀린 강수진의 두 발. 그의 말처럼 ‘점점 피카소의 그림처럼’ 기기묘묘한 모양새로 변해가고 있는 그 발은 강수진이 연습에 쏟은 땀과 눈물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남편 툰치와 결혼한 직후 행복의 키스를 나누는 모습.
이런 그의 곁을 늘 든든히 지켜주는 것은 같은 발레단 출신의 남편 툰치 소크멘이다. 지금은 은퇴해 강수진의 매니저 일을 보고 있는 소크멘은 요리를 즐기고, 강수진의 일거수 일투족을 꼼꼼히 챙긴다. 발레밖에 모르던 강수진의 삶은 그를 통해 좀더 여유 있고, 행복해졌다.
이제 강수진은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한국인 발레리나들 가운데 최고참이 됐다. 많은 발레리나들이 ‘제2의 강수진’을 꿈꾸며 외국 행 비행기에 오른다. 강수진은 이들을 위해, 그리고 더 많은 팬들을 위해 최근 동아일보에서 자신의 발레 인생과 삶을 담은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라는 책을 펴냈다.

▶ 약 력 ◀
·생년월일 1967년 4월24일
·키·몸무게 167cm·49kg
·1979년 선화예술중학교 입학, 발레 시작
·1982년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 유학
·1985년 스위스 로잔콩쿠르 동양인 최초 1위 입상
·1986년 세계 5대 발레단인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최연소 입단
·1987년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요정 역으로 데뷔
·1999년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ce) 최고 여성무용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