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에 휩싸인 춘천지방법원(오른쪽)과 춘천지방검찰청 전경.
심지어 주요 언론들이 ‘단순접대’를 넘어 구조적인 ‘법조비리’ 가능성까지 내비치자 춘천 법조계는 “검찰 수사가 끝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조사중인 춘천지검은 10월15일과 18일 관련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고, 10월 마지막 주에는 엄정한 수사를 위해 서울고검 강익중 검사와 수사관 2명의 파견을 받아들였다. 10월31일 서울고검 박영수 차장검사는 “부방위에서 J판사 및 춘천지검 직원과 강원경찰청 하위직 간부에 대한 비위첩보를 이첩받아 조사한 결과 성접대 리스트나 장부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대형 법조비리로 커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수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법조비리’ 의혹에 대해 춘천 법조계는 강력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과연 춘천 법조계 ‘성향응’ 파문의 진실은 무엇인가. 검찰은 10월11일 사직한 전직 J판사를 비롯한 현직 춘천지법 판사들을 조사해야 하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철저한 보안 속에 수사를 펼치고 있다. 춘천 현지에서 종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건은 약 1년8개월 전인 2003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은 법원의 정기인사가 있었던 날로 판사들의 송별식이 벌어진 날이기도 했다. 강원도청 인근 S단란주점에서 춘천 법조계 인사들과 술자리를 함께했던 K변호사가 뒤늦게 합류한 J판사의 ‘2차’ 비용까지 계산했다는 것이 사건의 큰 줄거리다.
판사와 변호사 간의 부적절한 술자리가 밖으로 새어나간 까닭은 유흥업소의 내부갈등 때문. 지난해 말 S단란주점의 업주와 여종업원들은 감금과 선불금 문제를 놓고 분란에 휩싸였고, 결국 여종업원 3명이 업주 김모씨를 춘천경찰서에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불금 문제가 본질이었기 때문에 J판사는 거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지검과 춘천경찰서는 지난해 말 업주 김씨를 긴급체포하고 폭행 및 윤락행위방지법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되자 불구속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원주경찰서 역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사건을 춘천경찰서로 이첩했다. 여종업원들이 원주경찰서에까지 진정을 제출한 것은 S단란주점 주고객들이 춘천지역의 잘나가는 인사들이어서 춘천경찰서에서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들 여종업원과는 별개로 S단란주점 지배인이 올 5월 “업소에 법조 및 경찰 관계자들이 자주 출입하며 향응을 제공받았다”며 부방위에 진정을 냈다. 이 과정에 J판사의 이름이 거명됐고, 부방위는 자체 조사를 거쳐 이달 초 사건을 검찰에 통보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J판사는 끝내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춘천지법 성접대 파문의 전반전인 셈이다.
“춘천지법은 의정부나 대전과 달리 인구가 적고 큰 사건 역시 많지 않기 때문에 구조적인 법조비리가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춘천 관내 A변호사)
불 꺼진 춘천 유흥가. S단란주점은 현재 검경의 수사로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시민단체 “진상 철저히 밝혀내라”
한편 K변호사를 정점으로 하는 춘천지역의 법조비리 가능성을 일축하는 쪽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한다. 우선 춘천 관내 법률시장이 20여명의 변호사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한두 변호사가 사건 수임을 독점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 이들 변호사 상당수가 지역 명문인 춘천고등학교 출신 선후배로 얽혀 있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K변호사와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박형일 변호사는 “K변호사 역시 춘천고를 나왔기 때문에 주위 선배들과의 관계도 있는데, 의도적으로 판사를 접대해 사건을 독식할 수는 없는 일이다”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판사 출신들의 전관예우가 힘을 쓰는 지방법원의 특성상 연수원 수료 이후 줄곧 변호사로 활동해온 K변호사는 소위 ‘인맥 형성용’ 접대에만 주력했다는 분석이다. K변호사가 춘천지법 관내 형사사건을 독식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는 달리 실제로는 수임 4~5위에 해당하는 평범한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K변호사가 형사전문 변호사인데, 향응을 받은 J판사는 민사전담 판사이기 때문에 사건과 직접 연관되지도 않았다는 것. 현재 K변호사는 “문제의 J판사와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성접대는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10월29일 검찰 소환 발표 이후 연락이 끊긴 상황이다.
검찰 수사 역시 ‘법조비리’ 의혹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K변호사는 물론 S단란주점과 사장의 자택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여 상당량의 영업장부와 카드매출 전표 등을 확보해 분석했지만 관련 법조인 리스트 같은 결정적 단서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오래 전 일이어서 최근 발효된 ‘성매매특별법’이 아닌 ‘윤락행위방지법’으로 처벌해야 하는데 당시 성행위의 증거가 없는 만큼 처벌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건은 9월23일 이후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으로 인해 관습적인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인 반성이 본격화되면서 불거진 첫 번째 사건”이라며 “지역 법조계의 부적절한 관행이 밝혀진 만큼 그 진상을 더욱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와 달리 법조계의 시각은 더욱 정치적 해석으로 기울고 있다.
춘천의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과 부방위의 관계를 내세우며 “애당초 얘기가 안 되는 사건이지만, 최근 공직부패수사처(이하 공수처) 출범을 앞둔 부방위가 검찰에 넘겨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검찰로서는 내년부터 검사와 판사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조사권을 발동할 공수처를 의식해 더욱 철저하게 수사를 펼칠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춘천 법조계가 희생양이 됐다는 논리다.
법조비리나 공수처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판사가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변호사를 포함한 지역 유지들이 판사들에게 골프나 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특히 지방 법조계에서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부방위의 한 관계자는 “법조비리까지는 아니겠지만 판사와 변호사는 이른바 연수원 선후배이기 때문에 이들이 만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란 불가능한 것 아니겠냐”며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가 부적절한 접대와 향응으로 관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