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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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사절! 그녀들만 여행을 떠나요

여성들만의 국내외 여행 인기 … 자기 발견의 시간·찐한 자매애 ‘남다른 일상 탈출’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11-04 18: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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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사절! 그녀들만 여행을 떠나요

    해외 여성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중국 쓰촨황롱.

    수은주가 떨어지는 만큼 단풍 색이 짙어지고 있다. 사람들 마음은 초조해진다. 달력 풍경은 물론이고 라디오 DJ와 기상캐스터, 그리고 차가운 공기까지 주변의 모든 것이 당장 가을여행을 떠나라고 충동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길 떠나기를 단념할 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싸서 미련 없이 떠나는 ‘언니들’이 있다.

    “우리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신사임당은 집에서 애만 본 게 아녜요. 금강산에 혼자 여행 가서 3년 동안 불경 공부를 했어요. 황진이는 자기가 여행비용 대서 금강산을 유람했죠. 요즘은 여자들이 미련 없이 떠나요.”

    자칭 ‘십자매 관광단’과 ‘뽀뽀뽀 번영회’라는 여성 유람단을 이끌고 있는 페미니스트 한의사 이유명호씨의 말이다.

    신사임당이나 황진이가 아니어도 행려병자로 죽을 만큼 지독하게 ‘노마드’적 삶을 산 나혜석이 있고, 전세계를 돌며 예술적 영감을 받은 최승희와 천경자가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엔 세계의 오지만을 찾아다닌 한비야도 있다. 이동 수단과 경제적·관습적인 이유로 큰 제약을 받았던 그 옛날에도 여성들은 과감히 길을 떠났으니, 여행하면서 힘쓸 일이 없는 시대에 여자끼리 혹은 여자 혼자 여행하기가 트렌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자 사절! 그녀들만 여행을 떠나요

    인터뷰를 통해 여성들의 여행경험을 담은 책.

    여행사들 여성 전용 상품 앞다퉈 출시

    이유명호씨는 주말마다 ‘무조건’ 떠나는 여행광이다. 그가 조직한 ‘십자매 관광단’은, 십자매 10마리가 모이면 가장 다정하여 한 마리가 아프면 극진히 돌봐 살려낸다는 데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시간이 자유로운 전문직 여성 10여명이 들고 나며 인원을 채워 떠난다고 한다. “남자들과 있다가 여자끼리 여행을 떠나면 너무나 편하다”는 것을 체득한 그는 가을여행에 앞서 안면도 없는 전직 여성 장관에게 ‘여행에의 초대’를 권하는 팩스를 보낸 참이었다.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그만큼 떠나고 싶은 욕망이 강렬한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여행사나 항공사에서는 이들을 위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고 여성주의 사이트로 유명한 ‘언니네’와 ‘또 하나의 문화’에서도 ‘여성주의적’ 여행을 실천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성주의 여행 기획팀이라고 할 수 있는 ‘언니네 시스투어’는 9월 첫 번째 기획으로 여성들이 기획, 참여해 필리핀 보라카이 여행을 다녀왔다. 필리핀의 여성단체를 방문해 아시아 여성들의 연대 필요성을 느끼는 일정도 다른 여행에서 찾기 어려운 것이지만 “여성주의 마인드를 공유하는 같은 또래의 같은 성별, 그리고 인생에서 여행이 절박한 순간이라는 공통점”(이다, 시스투어 프로그래머) 덕분에 ‘찐한 자매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남자 사절! 그녀들만 여행을 떠나요

    여성주의 문화단체에서도 여성 여행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프로그래머 이다씨는 “앞으로 여성에게 의미 있는 장소를 발굴하고 여성 축제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기획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언니네 시스투어’ 설립에는 내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세계 여성학대회가 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을 찾는 여성학자들에게 보여줄 만한 공간을 모색하다 ‘여자들끼리의 여행’으로 아이디어가 발전한 것이다. 또 다른 여성주의 단체인 ‘또 하나의 문화’ 역시 내년 여성학대회를 맞아 외국 여성들을 위한 여행, 관광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이다. 올해 여름 ‘여성문화 테마관광 코스개발 전문가 워크숍’을 열었던 ‘또 하나의 문화’는 현재 하자센터와 공동으로 관광 코스 등을 개발하고 있다.

    “21세기를 여행의 시대라고도 하고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여행을 하죠. ‘또 하나의 문화’에서는 해마다 여성 시인 고정희의 고향을 다녀오는 행사를 진행하는데 외국처럼 ‘빨간머리 앤 마을’이나 ‘에밀리 브론테 마을’ 같은 관광 ‘작품’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되었죠. 앞으로 여학생들을 위한 수학여행 코스도 기획할 예정이고요.”(최윤정, ‘또 하나의 문화’ 사무국장)

    여성들이 혼자 혹은 여럿이 떠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여성주의 진영보다 발빠르게 여성 테마여행 상품을 기획한 곳은 항공사와 여행사들이다.

    ‘가을, 바람난 여자들의 이색 특선’이라는 여행상품을 운영하고 있는 투어익스프레스의 정성훈 과장은 경제적 여유가 생긴 여성들이 많아진 것 외에 ‘디카’와 블로그의 폭발적 유행, 주5일제 근무, 고속철도 등을 여성 여행이 늘어난 이유로 꼽았다.

    “요즘 여성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자신의 모습과 느낌을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 된 듯하고요.”

    항공사 중에서는 아시아나 항공사의 ‘레이디 아시아나 클럽’이 돋보인다. ‘레이디 아시아나 클럽’을 담당하는 차소희씨는 “이미 항공사 손님의 40% 이상이 여성일 정도로 큰 부분인 데다, 경기 불황에도 여성 고객들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면서 “결혼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과감하게 투자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이디 아시아나 클럽’에서는 여성 여행객들의 필요에 따라 여행지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상담을 맡고 있는 임호경씨(투어익스프레스)는 “한번 떠나본 여성들은 계속 여행을 다닌다”면서 아직 유럽처럼 먼 곳보다는 주말을 이용해 다녀올 수 있는 도쿄, 오사카의 밤도깨비 여행, 1박2일 대만 여행, ‘빅세일’ 홍콩과 싱가포르 에어텔 등이 여성들에게 인기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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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사들은 앞다퉈 여성들을 위한 짧은 비행 거리와 깔끔한 식사, 자유로운 휴식과 쇼핑 일정이 마련된 테마여행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남자 사절! 그녀들만 여행을 떠나요

    이유명호씨(왼쪽 사진 맨 왼쪽)는 오한숙희씨 등 페미니스트들과 자주 여행을 떠난다.

    여행 추억 블로그·홈피에 올리는 재미도

    국내 여행지로는 가을 부석사 단풍여행과 ‘포카리 스웨트’ 광고로 많이 알려진 외도, 전남 보성 차밭과 담양 소쇄원, 대관령 양떼 목장이 사색적인 매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언니네 시스투어’ 이다씨는 모계사회의 풍습이 남아 있어 여성들끼리 다녀도 안전하고 기분 좋은 팔라우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과 예술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체코의 프라하를 추천했다. 그리고 “한겨울 프라하의 거리에서 마음 맞는 여자 친구와 함께 뜨거운 와인을 마셔보라”고 조언한다.

    홍콩으로 올빼미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성들과 여성 시인 고정희의 고향을 찾는 여행자들의 성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남자 빼고 떠나는 여자들의 여행’의 본질은 자유와 자기 발견으로 수렴된다. 투어익스프레스의 임호경씨는 “우리나라 여성들처럼 외국에서 대담하게 변하는 이들도 없다. 그만큼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다는 뜻 아닐까”라고 말한다.

    이유명호씨가 “아줌마들이 술도 마시고 춤도 추는 ‘고속버스’ 관광여행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옹호하는 것도 그 ‘억눌림’을 풀어야 한다는 맥락일 것이며, ‘시스투어’의 ‘언니들’이 태평양의 밤바다를 헤엄쳐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의상디자이너는 “여자들끼리 지리산을 7시간 묵묵히 걷다 보면, 성(性) 구별이 무의미해짐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최근 여성신문사에서 펴낸 책 ‘결혼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 결혼안식년’은 결혼한 여자가 자기 사는 곳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55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해 쓴 것이다. 이 책은 ‘여자들의 여행은 남편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한 것’이며 ‘아이들은 엄마에게 자신만의 감정과 관심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여행하는 엄마를 통해 본 독립적인 여성상을 평생 간직하고 살 것’이라고 말한다.

    EBS ‘삼색토크 여성’의 패널이자 월간 ‘페이퍼’ 여행 전문 기자인 정유희씨의 충고는 매우 실질적이다. 그는 도시, 특히 서울에서 떠나는 여행객이라면 ‘거들먹거리지 않기’와 ‘쓰레기 버리지 않기’를 꼭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여행지의 장소성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도 말한다.

    “왜 여행을 가는지를 확실히 점검하세요. 여행지에서 뭔가 엄청난 것을 얻으려는 마음은 버리고 가세요. 일정과 짐은 단출하게 하되, 평소 읽기 어려운 책 한 권은 꼭 들고 가세요.”

    겸손한 마음과 쓰레기 봉투, 그리고 책 한 권을 준비했다면 여행 준비는 된 셈이다. 이제 옆에 있는 여자 친구에게 눈짓만 보내면 된다. ‘오늘 떠나볼까? 남자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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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여성 여행지로 각광받는 외도와 보성 차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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