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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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의 위태로운 일상 ‘벽화 속으로’

  • 김준기 미술비평가

    입력2006-04-05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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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민의 위태로운 일상 ‘벽화 속으로’
    서울 광화문에서 효자동 쪽 경복궁 담벼락을 끼고 청와대 방향으로 가다 보면 ‘브레인 팩토리(Brain Factory)’라는 작은 갤러리가 있다. 톡톡 튀는 게릴라성 전시가 자주 열리는 곳으로 알음알음 소문이 난 공간이다. 이호진의 그리기는 캔버스가 아닌 이곳 갤러리의 벽면 위에서 이뤄졌다. 전시가 끝나면 다음 전시를 위해 냉정하게 지워져버릴 것이다. 그림이라는 게 틀에 짜서 그린 뒤 전시장에 내걸리고 나면 누군가에게 팔리거나 작가 작업실에 처박히는 신세라 작가들이 ‘예술 상품화’의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고 보면, 예술의 사용가치가 화폐가치로 치환되기를 거부하는 이러한 시도는 행위 그 자체로서 이미 진정한 의미의 예술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벽그림(wall painting)들은 세 개의 섹션으로 이뤄졌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에 밝은 톤의 벽그림 ‘백일몽’이 있고, 그 반대편에 어두운 톤의 ‘술에 취해’가 있다. 혼잡한 도시의 삶 속에서 몽상과 취기에 어린 혼돈의 세계가 대비된다. ‘상대적 가치, 절대행복, 그래도 살아야 한다’ 등 자기 독백적인 문구가 암호처럼 들어 있는 이 벽그림들은 힘겹게 일상을 꾸려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안쪽 벽면에는 작가의 자화상 ‘다시’가 있다. 전시장 밖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한 욕망을 상징하는 전단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호진이 그리고 있는 도시민의 삶은 나른하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위태로운 일상이다. 작가 자신이 뉴욕과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체험한 것은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빈 도시와 자본의 양태를 펼쳐놓은 파노라마다. 복잡한 도상들을 뒤죽박죽 섞어놓음으로써 권태 속에 숨겨진 위태로운 일상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경쾌한 터치로 심각한 속내를 조근조근 드러내고 있는 이호진의 벽그림을 따라 우리가 사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노라면 봄의 나른함을 깨뜨리고 삶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의 생은 지금 권태로우면서도 위태로운 길 가운데에 있지 않은가. ‘내가 도시 안에서 말할 수 있는 것’, 4월8일까지, 브레인 팩토리, 02-725-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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