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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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으면 손해? … ‘다단계 공화국’

고소득 부업 유혹 각계각층서 판매 사업자 합류 … 이론적으로 최적 마케팅, 돈 벌기 쉽지 않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2-11-08 1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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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으면 손해? … ‘다단계 공화국’
    얼마 전 삼성그룹은 회사 내에서 다단계 사업을 벌이는 사원들을 색출했다.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회사에 ‘조직 내 조직’이 만들어지는 등 부작용이 만만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감찰망에 걸린 사원들은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 상당수의 대기업들이 다단계에 빠져 있는 사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회사 일은 뒷전이고 부업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올 초 교육부에 비상이 걸렸다. 학교 선생님들이 학부모들을 상대로 다단계 물품 구입을 강요한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부 교사들은 다단계 업체의 기업설명회에 강사로 나가 교사임을 밝히고 강연을 한다는 제보도 입수됐다. 다단계에 뛰어든 교사들을 색출해낼 마땅한 방법이 없던 교육부는 모 다단계 기업의 회원용 책자를 입수해 책자에 실린, 해외연수를 다녀온 사람들과 우수사업자로 선정된 사람들의 이름과 전체 교원 명부를 대조해 관련 교사를 적발했다.

    합법적 업체 소속만 400여만명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하나둘씩 다단계 사업에 빠져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 기자 등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도 다단계 열풍에 한몫하고 있다. 대학병원 의사, 대기업 임직원, 대학교수들이 주요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다단계 업체도 있다. 업계가 추산하는 회원 수는 합법적인 업체에 소속된 사람만 400여만명. 중복 가입을 제외하더라도 경제활동 인구의 상당수가 다단계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셈이다.

    1988년 세계적 다단계 판매회사 암웨이의 한국 진출을 계기로 형성된 합법적 다단계 판매의 시장 규모는 95년까지만 해도 4000억원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들과 취업난을 겪던 대학생이 가세하면서 시장은 9100억원 규모로 성장했고, 2000년에는 2조12억원, 지난해에는 3조8000억원 규모로 팽창했다. 최근 3~4년간 매년 두 배 가까이 성장해온 셈이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들까지도 다단계 마케팅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잡을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

    -수입품인데, 회원으로 가입해야 살 수 있어. 내가 사다줄 수도 있지만 어차피 한번 쓰면 계속 쓰게 될 테니까 너도 회원으로 가입해라. 가입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부업에 나설 수도 있어.

    “혹시 피라미드 얘기하는 건 아니지?”

    올 4월 회사원 김모씨(28)는 학원강사인 친구의 권유로 화장품 한 세트를 구입했다. 화장품을 제작 유통한 회사가 다단계 업체인 터라 친구가 꺼낸 부업 얘기는 “다음부터 말도 꺼내지 말라”며 무시했다. 하지만 친구의 설득은 한동안 계속됐다.

    -의사, 변호사들도 다 해. 미국 부호들 대부분이 다단계 사업으로 부자가 됐을 정도로 선진국에선 이미 보편화된 마케팅 방법이야.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A그룹 사원들도 얼마나 많은데…. 10년만 지나면 모든 유통망이 네트워크로 짜여진다는데, 늦을수록 너만 손해야.

    “그래도 텔레비전 보면 다단계 업자들이 구속되고 그러던데…. 남편이 알면 큰일 나.”

    -××씨도 하고 있는데 뭘. 그럼 설명회나 한번 와봐라.

    김씨는 친구의 약혼자도 다단계 사업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명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방위산업체에서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엘리트까지 뛰어들었다면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몇 번을 망설이던 김씨는 결국 소개해준 친구의 약혼자 ‘라인’에 정식으로 들어갔다.

    늦으면 손해? … ‘다단계 공화국’

    한 다단계 업체의 교육장

    이후 김씨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업체의 사업설명회에 참가하면서 어느새 ‘다단계 전도사’가 됐다. 친구들에게 화장품을 추천하고 다단계 마케팅의 미래를 설명하면서 하위 회원 모집에 나서고 있는 것. 회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면서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매출액에 따라 매달 ‘공돈’이 통장에 들어온다. 처음엔 “정신나간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며 펄쩍 뛰던 남편도 소극적이지만 김씨의 일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제품이 좋고 값까지 싸다,’ ‘선진 마케팅 기법이다,’ ‘본업을 하면서 부업으로 쏠쏠한 수입을 거둘 수 있다’. 다단계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주장들에 솔깃해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명절 때 친척들로부터, 혹은 학교 동창이나 선후배, 군대 동료들로부터 다단계 사업을 함께 하자는 권유를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부업까지 된다는데, 다단계 사업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이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국내 1위의 다단계 업체인 암웨이 관계자는 “최근의 네트워크 마케팅 열풍은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투잡(two job)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며 “평생직장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부업으로 네트워크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최근 다단계 판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줄이기 위해 다단계 판매를 ‘네트워크 마케팅(network marketing)’이라고 부른다. 그는 “인구밀도가 높고 인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며 “누구나 도전해볼 만한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11월1일 오후 서울의 한 다단계 업체 교육장에서 만난 회사원 박모씨(41). 박씨는 낮에 사용하는 명함과 밤에 사용하는 명함이 다르다. 낮에는 대기업 직원이고 밤에는 다단계 사업가인 것이다. 그는 현재 9명의 핵심회원을 확보하고 있는데, 9명의 회원들이 모은 회원이 70여명. 모두 80명의 사업자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김씨의 ‘부업 수당’은 월 100만원 남짓. 그는 아직은 월급의 4분의 1도 안 되는 액수지만 다단계 사업을 통해 번 돈이 회사 월급보다 더 뿌듯하다고 했다. 계속 늘어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부업으로서 다단계 사업을 이끌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언젠가는 전업 사업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 장모씨(30)는 올 1월부터 다단계 사업을 하고 있다. 김씨가 다단계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 평균 120만원 정도. 9개월 동안 이 정도 성과를 거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장씨는 “의사가 고수익을 거두는 직업임은 분명하지만 다단계 사업을 통해 더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언젠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고정적인 수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장씨는 희망에 차 있었다.

    다단계 사업은 김씨와 장씨처럼 직업이 ‘반듯’할수록 유리하다. 이들은 다단계 업체에서 비교적 자리를 잡은 경우에 속한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를 갖춘 사람들이 던지는 말에 보다 신뢰가 가는 것은 인지상정.

    어느 정도 직급에 올라가면 그때부터는 라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라인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한 사업자는 “하위 라인의 물건을 가끔씩 대신 사줘야 이탈하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결국 좋은 직업을 갖고 있고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으면 사업을 수행하기가 보다 수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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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입 혹은 판매할 상품을 고르고 있는 다단계 판매 다단계 판매 사업주들.

    교사의 경우처럼 회원(학부모)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경우도 다단계 사업을 벌이는 데 매우 유리하다. 현재 상당수의 교원이 다단계 사업에 뛰어들어 결근을 하면서까지 회사연수를 다녀오는 등 교사의 본분을 뒤로하고 있다. 서울의 한 교사(43)는 2년9개월 동안 다단계 사업자로 일하면서 월 평균 4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기자들의 경우도 교사와 비슷하다. 이해관계가 걸린 취재원에게 물품 구입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직 기자의 경험담이다. “10위권 안에 드는 다단계 기업을 취재하고 있었는데 회사측에서 ‘딜’을 하더라고요. 중간 레벨부터 사업을 시작하게 해줄 테니 잘 써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의사가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면서 물품을 강매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 교수 종교인 기자 등이 제자나 신도 취재원들에게 구입을 강요할 경우엔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단계 사업을 하면 과연 큰돈을 벌 수 있을까. 다단계 회사에서 상위 등급으로 승급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업체마다 다른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대개는 얼마나 많은 물건을 판매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회원으로 가입시켰느냐에 따라 직급이 결정되고, 직급과 라인의 매출액을 고려해 수당이 결정된다.

    다단계 업계 관계자들은 “대리점이 없고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윤의 상당부분이 회원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한다. 즉 상품 가격의 거품을 빼서 소비자이자 회원인 사업자에게 돌려준다는 얘기다. 고액을 들여 방송광고를 찍고, 대리점을 운영하며 마케팅을 하는 일반 기업이 제공하는 물건엔 당연히 광고비와 유통비가 포함돼 있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다단계 사업은 소비자 겸 사업주에게 최대의 부가가치가 돌아가는 마케팅시스템인 셈이다.

    그러나 국내 1위의 다단계 업체에서도 고수익을 올리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5월 현재 한국 암웨이 사업자(IBO)는 약 120만조(기혼 IBO의 경우 부부가 함께 등록하는 게 원칙이라 ‘조’ 단위를 쓴다). 그중 한 달에 한 번 이상 제품을 구매하는 ‘활동성 IBO’는 20만조 정도 된다. 이들 가운데 핀 레벨(IBO들은 자신의 등급을 나타내는 핀을 꽂고 다니기 때문에 IBO 등급을 ‘핀 레벨’이라 부른다)이 다이아몬드(다이아몬드는 암웨이의 상위 16개 등급 중 여섯 번째 등급) 이상인 경우는 320조로 전체 활동성 IBO의 0.16%에 불과하다. 연 평균 2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플래티늄’ 레벨 이상도 8233조로 4.12%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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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암웨이주식회사 가양동 물류센터 전경. 한국 암웨이의 매출액은 최근 해마다 100%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기록해왔다.

    YMCA 시민중계실 김희경 간사는 “다단계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버는 사람은 수십만명 중에 1~2명뿐”이라면서 “업체측에서 이런 설명은 구체적으로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격이 싸다는 주장도 의문시된다. 시중에서 유통되지 않은 제품이 많은 데다, 비슷한 물건의 가격대와 비교했을 때 오히려 비싸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사정이 이런데도 상위 레벨로 올라가기 위해 ‘사재기’를 하거나 소위 ‘깡통회원’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다단계 업체 반대 사이트 ‘안티SMK’ 운영자 한윤찬씨는 “설명회를 통해 장밋빛 미래를 거듭 강조하면 누구나 세뇌를 당하지 않겠느냐”면서 “다단계 업체들이 1주일에도 수차례씩 집회 참여를 요구하는 것도 모두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단계 업체 관계자는 “일부 사업자들이 회사의 규정과 다르게 사재기를 하거나 다소 이상한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윤리강령 등을 통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단계 마케팅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피라미드’다. 다단계와 피라미드의 가장 큰 차이는 실정법 준수 여부(상자기사 참조). 그런데 상당수의 다단계 업체가 다단계 업체의 탈(?)을 쓰고 사실상 피라미드식 영업을 하고 있다. 일부 중·대형 업체와 서울 강남과 경기도 성남 하남 등지에 밀집한 소형급 다단계 업체들의 상당수가 사실상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고 있는 것.

    이들 업체들은 주로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사업을 벌인다. 외견상으로는 다단계 판매처럼 보이지만 이들 다단계 업체들은 물건을 매개로 하위 회원이 물건값으로 낸 돈을 먼저 회원이 된 사람이 ‘착취’하는 구조다. ‘물건 장사’가 아닌 ‘사람 장사’이다 보니 회원을 모으기가 어렵고 회원 확장이 중단되면 피라미드가 무너지고 물건을 산 사람들은 고스란히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들 업체들은 회원들을 합숙시키면서 하위 회원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가르친다. 합숙을 하지 않는 경우엔 회원들을 오전 7시경에 출근하도록 해 하루 종일 교육을 듣게 한다. 이들 다단계 업체들은 한결같이 “일부 사업자가 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 뿐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한 업체에서 1년 동안 활동하다 1000여만원을 손해보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엉망이 된 김정준(가명)씨의 경험담. “일단 수백만원 상당의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해야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몇 단계만 회원을 모으면 벤츠를 타고 다닐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10명씩 두 번만 튀기면 곧 1000명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 모으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빚에 쪼들린 여자 회원들이 생면부지의 남자와 잠자리를 한 뒤 데려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씨를 다단계로 끌어들인 친구는 현재 빚을 값기 위해 호스트바에 나가고 있다. 휴학까지 하고 카드 대출로 ‘사재기’를 했다 낭패를 본 경우다. 김씨는 현재 안티피라미드 사이트 운영진으로 활동하면서 술집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

    다단계 사업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부업으로 일정 수준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문제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생계를 팽개치고 다단계에 빠져들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수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업체가 회원들을 자극해 사재기, 깡통회원 만들기를 부추긴다는 주장은 차치하더라도 사람들이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탈법이 없다는 전제하에 다단계 판매는 이론적으로 소비자에겐 ‘좋은’ 물건을 싸게 사고, 다른 소비자에게 소개를 하면서 수당까지 받을 수 있는 손해볼 게 없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단계를 넘어 전업 사업가로 나서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업가로 성공하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나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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