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커버스토리|e-세상…온국민이 기자다

열린 e-세상 꿈꾸는 뉴스게릴라들

‘탈저널리즘 시대’의 다양한 ‘웹 페이퍼’들…할 말은 다하는 ‘언론 민주화’ 실현의 장(?)

열린 e-세상 꿈꾸는 뉴스게릴라들

열린 e-세상 꿈꾸는 뉴스게릴라들
“황예랑. 연세대학교 인문학부 96학번. 그가 7월16일 오마이뉴스의 뉴스게릴라로 가입하는 순간 오마이뉴스의 기자회원 카운터에는 4000번이 찍혔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99년 12월21일 창간 준비호를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

이름부터 생소한 ‘오마이뉴스’라는 인터넷신문의 창간 준비호가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사람들은 낯설어했다. 그러나 지난 2월22일 정식 창간호를 낸 지 6개월을 맞이한 지금, ‘사이버 공간의 체 게바라’를 꿈꾸는 뉴스게릴라들이 만드는 이 신문은 젊은 세대들이 가장 즐겨 찾는 인터넷 대안 미디어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은 저렴한 비용으로 뉴스의 생산과 보급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심지어 1인 미디어의 출현까지 가능하게 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딴지일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모든 미디어가 그렇듯이 사이버공간을 무대로 활동하는 대안 미디어들도 진화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화의 발원지는 PC통신 게시판이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돼 있지 않았던 불과 2, 3년 전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 국내 4대 PC통신망에 마련된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천 건이 넘는 네티즌의 글이 올라오고 때로는 불꽃 튀는 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또 이 과정에서 기존 언론의 칼럼이나 독자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글솜씨로 PC통신 여론을 주도한 ‘통신논객’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PC통신 공간에서 발행한 첫 정기간행물인 ‘보테저널’은 그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보테저널’은 PC통신 공간이라는 시대 환경의 제약으로 인해 더 이상 성장하지는 못했다. ‘보테저널’이 발행되던 공간은 인터넷 웹사이트처럼 자기 고유의 주소를 가진 독립 공간이 아니라 PC통신사가 제공하는 게시판이었기 때문에 신문독자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뒤에 혜성처럼 등장한 정간물은 ‘딴지일보’로 대표되는 이른바 ‘패러디 미디어’들이다. ‘각종 사회 비리에 똥침을 날리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는 창간 선언문을 내놓으며 인터넷 공간에 첫선을 보인 ‘딴지일보’는 정치와 성(性)을 소재로 한 기상천외한 패러디로 순식간에 인터넷 대안 미디어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딴지일보’의 성공은 스키조선, 패러디한겨레21, 수세미일보, 보일아동 등 기성 언론을 패러디한 사이트와 대자보, 더럽지, 망치일보 등으로 이어지는 ‘대항 언론’ 성격을 띤 패러디 미디어 창간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비판과 풍자를 무기로 삼은 이 패러디 미디어는 그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중요한 가치인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부정기 간행물(웹진)인 패러디 사이트의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차별화를 선언하고 나온 최초의 인터넷 독립 일간지(웹페이퍼)가 지난해 7월에 창간된 ‘온라인 뉴스’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1년여의 인터넷 공간은 각종 독립 매체들이 저마다의 신무기를 내세워 경쟁하는 ‘백가쟁명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들은 크게 머니투데이, 아이뉴스24, 아이비즈투데이 등 경제`-`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지와 세이 월드, 넷피니언, 데일리 클릭, 뉴스보이, 오마이뉴스 같은 종합지로 분류된다. 그중에서도 언론 개혁을 통한 사회 민주화를 꿈꾸는 ‘뉴스 게릴라’들이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창간한 ‘오마이뉴스’는 지금까지 가장 진화된 인터넷 대안 미디어로 손꼽힌다.

대안 미디어로서 오마이뉴스는 ‘아직 실험 중’이다. 그래서 아직 오마이뉴스 혹은 오마이뉴스 현상을 대상으로 연구`-`분석한 학계의 논문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5월31일 오마이뉴스 창간 100일을 기념해 개최된 심포지엄에서 민경배씨(사이버문화연구실장)가 주제발표한 ‘인터넷 대안미디어의 현단계와 가능성`-`오마이뉴스의 실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논문이 유일하다.

“오마이뉴스가 잉태된 자궁은 사이버스페이스였고, 성장의 자양분은 디지털이었으며, 그 세포는 비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기에 아날로그적인 기성 언론이 사이버스페이스로 진입하면서 감수해야 하는 환골탈태의 수고를 생략하면서 출발할 수 있었다.”(민경배 실장)

창간을 주도한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오연호씨도 이와 같은 분석에 동의한다. 오마이뉴스가 자체 평가한 제1의 성공 요인도 속보성과 쌍방향성을 장점으로 하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라는 흐름을 탄 것이다. 오연호 기자의 말이다.

“우선 오마이뉴스의 컨셉트가 인터넷이 널리 확산되는 시대 흐름과 맞았다는 것이다. 즉 시민의식의 성장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모토다. 사회를 향해 뭔가 발언할 것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발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마이뉴스는 이러한 ‘타고난 이점’을 지금까지 비교적 잘 활용해 오고 있다. 예를 들어 오마이뉴스 특종보도 중 하나인 ‘민주당 386 국회의원 광주 술판’ 기사는 디지털 미디어가 갖는 속보성의 위력을 새삼 입증해 준 대표적 사례다.

오마이뉴스의 장점은 디지털 미디어의 또 다른 미덕인 언론사와 독자 간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오프라인 매체에도 독자투고나 옴부즈맨제도 등을 통한 독자들의 참여 공간은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언론으로부터 제공받은 정보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라는 지극히 제한적인 수준의 참여일 뿐이다. 그래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자의 e`-`메일 주소를 공개함으로써 독자와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e`-`메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당사자들 외에는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 ‘사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한계가 있으며, 독자의 지위는 단지 수동적 소비자에서 능동적 소비자로 바뀔 뿐이다.

이에 반해 오마이뉴스에는 기자와 독자의 영역 구분이 없다. 누구든지 특정 사안에 대해 기사를 쓰고 싶으면 기자회원으로 가입하면 된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의 쌍방향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오로지 오마이뉴스에만 있는 ‘의견 쓰기’ 기능이다. 예를 들어 오마이뉴스에 실린 어떤 기사건 그 기사를 보기 위해 클릭하면 그 기사의 말미에 ‘이 기사에 대한 의견쓰기’와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이 붙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민감한 쟁점 사안을 다룬 기사에는 그에 대한 의견기사가 무려 120개씩이나 달려 있는 것도 있다. 이처럼 모든 기사에 ‘의견 쓰기’를 붙인 것은 모든 기사에서 다루는 쟁점 하나하나가 공론의 토론장이 되게 하자는 의도다. 그래서 모든 기사는 실명이지만 ‘의견 쓰기’는 익명도 가능하다. 물론 익명을 허용하다보니 일반 사이트의 게시판처럼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것은 오마이뉴스를 포함한 모든 인터넷미디어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또 다른 부작용은 오마이뉴스 기자회원 자격을 둘러싼 ‘경찰관 뉴스게릴라 논쟁’이 그 대표적 사례다. 한 오프라인 신문 여기자와 여자 경찰관의 말다툼이 빚은 언론과 경찰의 갈등 내막을 현역 경찰관 기자회원이 갈등의 당사자인 여경찰을 취재해 기사화한 것을 두고 ‘기자 자격’을 문제삼은 것이다(현재 오마이뉴스에는 10여명의 경찰관과 30여명의 공무원들이 기자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이 사건은 해당 신문사와 경찰의 화해로 일단락되었지만 앞으로도 언제든지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오마이뉴스의 명제와 충돌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대안 미디어로서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가 ‘잉태된 자궁’인 사이버공간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오마이뉴스의 한 독자는 “훈련되지 않은 4000명의 시민기자들의 활약은 사어버공간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만약 오마이뉴스를 종이신문으로 낸다면 창간호만 내고 하루아침에 망하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모토는 사실 명제가 아니라 당위 명제이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단지 모든 시민은 기자가 될 수 있을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를테면 기자회원으로서 열성적으로 취재했던 김태섭씨는 기자로서의 신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직접 공권력과 부딪치는 취재현장에서 맞닥뜨린 “당신 사이비 기자 아냐?” 라는 말에 한계를 느끼고 붓을 꺾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실험은 언론 권력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사실 쌍방향적 디지털 미디어의 보다 적극적인 의미는 단순한 기자와 독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기자-독자의 구분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데 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모토처럼 독자 개개인이 뉴스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는 패러다임 자체의 일대 변화를 말한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힘없는 일반 대중이 기성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전파하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확장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다.”(민경배 실장)

사실 언론 권력의 민주화는 오마이뉴스의 창간으로 일부나마 실현되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오마이뉴스 편집국 사무실에 가면 한쪽 벽면에는 이인제 홍사덕 장기표 김용환 박상천 이부영 노무현 등 오마이뉴스가 인터뷰했던 유명 정치인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을 제외하면 모두가 직접 찾아와 사진 찍고 인터뷰에 응한 유명인들이다. 인터뷰 당시 이인제`-`홍사덕 의원은 여야의 선거대책위원장이었고, 박상천-이부영 의원은 원내총무였다.

무엇이 이들을 총선이라는 바쁜 시기에 10평 남짓한 좁은 사무실까지 오게 했을까. 무엇이 이들을 한두 달 전만 해도 일개 시민이었던 아마추어 기자들과 기꺼이 인터뷰하도록 이끌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사회적으로 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되고 이 정치인들에게도 인터넷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총선시민연대가 전개한 낙천-낙선운동이 위력을 떨친 것도 바로 인터넷의 전파력 때문이었듯이. 오마이뉴스가 꼽는 성공 요인 중 하나도 인터넷 마인드가 전파되는 가운데 치른 총선이라는 언론의 호재였다. 창간 타이밍이 좋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기존 미디어 종사자들이 오마이뉴스의 출현에 대해 ‘의외로’호의적이었다는 점이다.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언론인들은 오마이뉴스의 창간이 자기의 밥그릇을 빼앗을 수도 있는 문화현상임에도 호의적이었다. ‘호랑이 새끼’를 끼워준 셈이다.

그러나 오프라인 매체들이 오마이뉴스에 대해 갖는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이는 오마이뉴스가 추구하는 게릴라 전략에서 비롯된다. 즉 기성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다보니 오프라인 매체의 기자들이나 보도관행 자체가 오마이뉴스의 타깃이 되곤 했다. 이를테면 오마이뉴스가 특종보도한 MBC 최아무개·고아무개 기자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주장은 다르다.

“MBC 두 기자 사건은 둘 다 제보에 의한 것이다. 공교롭게 두 건이나 MBC와 관련된 것이어서 우리도 고민했다. 고아무개 기자 비리사건의 경우 오마이뉴스 게시판에 제보 내용이 2주간이나 올라 있었다. 그런데 아무 데서도 보도하지 않은 가운데 우리가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그래서 보도했다.”

그렇다면 신문-방송-통신 미디어가 융합되는 머지 않은 미래의 디지털 환경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갖춘 기성 언론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회원(독자) 확보 경쟁에 나섰을 때도 오마이뉴스 같은 독립 매체의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오연호 대표의 대답은 단호하다. 기성 언론이 기득권을 내놓을리도 없지만 직업기자와 시민기자가 1면 톱을 놓고 경쟁하는 언론 판도가 형성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마이뉴스가 바라는 언론개혁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신문들의 뉴스 생산문화의 한계 때문이다”고 말했다. 20세기의 신문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한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20세기의 뉴스 생산문화에 소외된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4700여명의 시민기자들이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뜻에 모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명제는 ‘e`-`세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바야흐로 21세기는 기자와 독자 그리고 취재원의 구분이 없는 ‘e`-`세상, 온 국민이 기자다’라는 명제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논문을 준비 중인 박선희 교수(조선대 신문방송학)는 이런 사이버언론 현상을 우호적으로 해석한다. 그동안 공론화의 장이 없었기 때문에 걸러지지 않은 과도기적 현상일 뿐 ‘욕설도 희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탈저널리즘’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00.08.31 249호 (p28~30)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189

제 1189호

2019.05.17

누구나 가슴에 카카오프렌즈 하나쯤은 있잖아요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