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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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밖에 모르는 반쪽 천재로 살지 마라”

유명 스포츠 심리학자 앤더슨이 김연아·박태환에게 보내는 충고

  •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hanmail.net

    입력2007-01-02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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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밖에 모르는 반쪽 천재로 살지 마라”

    최근 스포츠 스타로 떠오른 김연아 선수.

    “11월19일 오후 2시53분에 은퇴를 결심했다.”

    지난 11월21일 기자회견에서 ‘인간어뢰(Phorpedo)’ 이언 소프가 던진 충격적인 은퇴 선언이다. 일요일 오후 무심하게 시계를 쳐다보다가 시곗바늘이 2시53분을 가리키는 순간 은퇴를 결심했다는 그는 이제 겨우 스물네 살이다.

    이언 소프 조기은퇴 배후 인물

    소프는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 골프선수 그레그 노먼과 함께 호주 스포츠 3대 스타다. 그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하며 호주의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이는 호주 수영 역사상 최고 성과다.

    그는 “경이로운, 정말 경이로운 한 여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혀 기자회견장을 술렁이게 했다. 그러나 그 여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밝히지 않아 호주 언론은 한동안 ‘소프의 미스터리 여인’으로 보도했다.



    미스터리 여인의 정체는 데이드레 앤더슨 매쿼리대학 스포츠·레저담당 CEO. 그는 호주의 저명한 스포츠 심리학자다. 앤더슨은 소프 외에 역시 20대 중반의 프리먼도 은퇴하게 만들었다. 호주 원주민 출신의 프리먼은 시드니올림픽 육상 4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뒤 심각한 ‘금메달 후유증’을 앓았다. 그리고 성급한 결혼은 얼마 가지 않아 이혼으로 끝났다. 그는 앤더슨의 권유를 받아들여 은퇴한 뒤 불우한 원주민 어린이를 돕는 사회활동가로 거듭났다.

    “운동밖에 모르는 반쪽 천재로 살지 마라”

    박태환 선수.24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결심한 이언 소프(왼쪽부터).

    앤더슨이 유명 선수를 은퇴시키는 데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16세의 나이에 올림픽 금메달 2개를 획득한 뒤 바로 은퇴한 여자 수영선수 셰인 굴드를 현역에 복귀시키기도 했다. 굴드는 사람 공포증과 물 공포증에 시달리며 28년 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살다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했다.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이후 수영해설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즐겁게 사는 일이다.”

    “운동선수로 정상에 오른 당신은 왜 다른 분야에서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인생은 단 한 장(章)으로만 구성된 얇은 책이 아니다.”

    앤더슨이 유명 스포츠 선수와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항상 하는 말이다. 12월20일 앤더슨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떠오르는 스포츠 스타 김연아와 박태환에게 전하는 충고를 들었다.

    “수영장·아이스링크서 매순간 즐겨라”

    “운동밖에 모르는 반쪽 천재로 살지 마라”
    김연아와 박태환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각각 89년생과 90년생으로 나이가 비슷하며 2006년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에서 한국인 최초 기록을 세웠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린다는 점도 같다.

    김연아와 박태환은 올림픽에 앞서 2007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3월 호주 멜버른에서는 수영세계선수권대회가, 같은 달 일본 도쿄에서는 피겨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이들의 최대 라이벌이 개최국 소속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박태환의 라이벌은 호주 출신의 그랜드 해켓(26)이며 김연아는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 수구리 후미에 등과 실력을 겨뤄야 한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최근 호주 언론들은 ‘마린 보이’ 박태환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해켓을 무너뜨릴 남자가 나타났다’ ‘해켓의 더할 수 없는 악몽’ 등 제목의 기사에서 ‘박태환은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하루에 18km를 훈련하는 지독한 선수다’라고 전하고 있다. 앨런 톰슨 호주대표팀 감독은 “박태환이 2006년 기록한 400m와 1500m 기록은 충격적”이라며 “박태환에 필적할 만한 선수는 해켓과 은퇴한 이언 소프밖에 없다”고 말해 호주에서의 ‘박태환 신드롬’을 거들었다.

    “이언 소프는 박태환에게도 우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박태환이 소프의 갑작스런 조기은퇴를 통해 많은 것을 터득했으리라고 믿는다. 정상에서 견뎌내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허무감이 얼마나 큰지 상상됐을 것이다.”

    앤더슨은 먼저 ‘정상에서 느끼는 고독감’을 거론했다. 이어 그는 특히 스포츠 엘리트들의 ‘운동밖에 모르는’ 삶을 우려했다. 특히 박태환이 새벽부터 18km씩 고강도 훈련을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스포츠 엘리트는 정신적으로도 엘리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상에서 느끼는 중압감과 고독감에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동물입니다. 물론 스포츠 스타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수영이나 피겨스케이팅에서 더 이상 행복을 찾을 수 없으면 과감하게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앤더슨은 “김연아와 박태환, 두 선수를 잘 모른다는 점이 조심스럽다”면서도 “16~17세 어린 스포츠 스타에게 해줄 말은 분명하게 있다”고 말했다. 수영장과 아이스링크에서의 삶을 매순간 즐기라는, 평범하지만 어려운 진리를 실천하라는 충고다.

    앤더슨은 전화 인터뷰를 끝내면서 호주인들에게 했던 말을 한국인들에게도 똑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스포츠 스타가 우승을 하면 당연한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게으르고 해이해졌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모두는 잘할 때가 있고 못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스포츠 스타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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