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만찬장에서 만난 각국 수석대표들. 위성에서 바라본 동북아의 야경은 북한의 경제 현실을 말해준다(아래).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12월18~22일)로 다시 끌어다 앉힌 중국의 외교술은 흔히 사육사의 그것과 비견된다.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북-미 간 협상 과정에서 중국은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어가며 큰 구실을 했다.
중국이 손에 쥔 핵심 지렛대는 대북(對北) 교역이다. 북한의 제1교역국인 중국은 북한 전체 무역의 39%(2005년)를 차지한다. 특히 북한은 에너지 분야에서의 중국 의존도가 80%가 넘는다.
“공장지대에서 연기가 거의 안 난다.”
2006년 말 북한을 다녀온 한 인사의 증언이다. 북한의 경제는 최근 중국과의 교역액 증가 추세가 꺾인 데다 경제제재가 겹쳐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드러나지 않게 북한을 조여가는 전략을 쓴 것 같다”고 말한다.
중국 해관총서(중국 세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중국의 대북 원유 수출량은 ‘0’이었으며 10월엔 이례적으로 많은 양의 원유가 북한으로 수출됐는데, “중국이 원유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면서 북한을 압박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9월에 원유 수출이 일절 없었다는 것은 북한에 어떤 자극을 준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승호 박사)
겨울 땔나무를 사다 나르고 있는 개성 주민들(좌).중국과의 불평등 교역에서 북한이 대표적으로 비싸게 사오는 것이 석유제품이다.
“북한은 에너지를 지렛대로 한 중국의 압력을 견뎌내기 어렵다. 핵무기로 밥을 지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따라서 북한의 협상력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소 한 관계자)
대북 수출은 비싸게, 수입은 싸게
그렇다면 압록강을 경계로 이뤄지는 북한과 중국의 교역은 어떤 양태를 띠며 이뤄지고 있을까?
북한의 경제 관련 자료가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북-중 간 교역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중국 해관총서의 무역통계가 거의 유일하다. 해관총서의 자료를 ‘거울 통계(mirror statistic)’로 활용해보자.
북한은 1995년 공식적으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요청한 이후 한국 및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근근이 버텨왔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당시 곤두박질친 북한 경제는 중국과의 무역과 남북경협이 활성화된 2000년을 기점으로 플러스로 돌아선다.
수입품 | 수출품 | ||
품명 | 금액 | 품명 | 금액 |
에너지 및 연료 | 286 | 에너지 및 연료 | 112 |
식용 육류 | 104 | 어패류 | 92 |
기계류 | 77 | 광, 슬랙 및 회 | 92 |
전기기기 | 57 | 철강 | 72 |
플라스틱 | 52 | 의류/ 부속품 | 58 |
곡물 | 50 | 목재 | 15 |
철강 | 35 | 아연과 그 제품 | 11 |
인조 필라멘트 섬유 | 29 | 채유용 종자 | 7 |
차량 | 28 | 편직물 | 5 |
강철제품 | 25 | 과실류 | 5 |
북한으로 보내는 원유가 저장된 중국 단둥시 인근의 중조우의수유기공사 전경(좌).<br>베이징발 평양행 열차에서 바라본 북한의 노변 풍경. 마구잡이 벌목으로 북한의 산들은 모두 민둥산이다.(우).
미 노틸러스 연구소가 주최한 ‘북한에너지 전문가 연구모임’에서 해관총서의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된 ‘해관총서에 보고된 북한과 중국의 교역-최근 에너지 동향과 그 의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중 간 교역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 북한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철저하게 ‘을(乙)’의 위치에 있다. 흥미롭게도 북한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팔 때는 싸게 팔고, 살 때는 비싸게 사는 처지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 ‘우호 가격’으로 물건을 팔고, 중국은 북한에 ‘제값보다 비싸게’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 2004년 | 2005년 | |||
품목 | 금액 | 품목 | 금액 | 품목 | 금액 |
오징어, 조개 등 | 102,950 | 오징어, 조개 등 | 128,148 | 무연탄 | 108,273 |
게류 | 78,652 | 게류 | 74,135 | 철광석 | 66,521 |
갈치, 명태 등 | 24,208 | 갈치,명태 등 | 57,252 | 오징어, 조개 등 | 51,140 |
남성의류 | 18,201 | 무연탄 | 49,085 | 철스크랩 | 34,890 |
무연탄 | 15,428 | 철광석 | 44,521 | 갈치, 명태 등 | 23,270 |
2003년 | 2004년 | 2005년 | |||
품목 | 금액 | 품목 | 금액 | 픔목 | 금액 |
원유 | 121,004 | 원유 | 139,326 | 원유 | 197,675 |
돼지고기 | 56,420 | 돼지고기 | 134,984 | 돼지고기 | 95,565 |
석유·역청유 (조제품 포함) | 35,745 | 석유·역청유 (조제품 포함) | 48,853 | 석유·역청유 (조제품 포함) | 73,600 |
쌀 | 21,433 | 컬러TV | 22,597 | 옥수수 | 36,104 |
컬러TV | 15,300 | 철, 비합금강 평판압연제품 | 21,860 | 합섬장섬유사의 직물 | 26,183 |
예컨대 북한은 중국의 석유제품에 대해 최근 10년 동안 실제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 중국은 석유제품을 수출하면서 다른 국가들에겐 1t당 254달러를 받았는데, 북한은 1t당 299달러에 중국산 석유제품을 수입했다. 또 북한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석탄의 97%가 역청탄인데 중국에서 북한을 제외한 다른 국가로 수출된 역청탄 가격은 1t당 36달러였으나, 북한은 1t당 43달러를 지불하고 역청탄을 수입했다. 도대체 왜 이런 불균형이 벌어지는 것일까?
“수출입 가격의 불균형엔 정치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순수하게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북한은 비싸게 수입하고 싸게 수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국은 외부와의 교류가 막혀 있는 북한의 ‘수요 독점’ 시장이다. 반대로 중국 업자들은 다른 수입처가 없는 북한에 수출할 때 높은 가격을 매길 수 있다.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수산물의 경우에도 이 같은 사정은 마찬가지다.”(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문수 교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북한의 대중 무역 적자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02~2004년 2억 달러대를 유지하던 무역 적자는 2005년 5억8203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에너지 무상원조 없으면 ‘휘청’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주요 제품은 원유를 비롯해 기계류, 전기기기, 철강, 자동차 같은 에너지집약적 상품들이다. 반대로 북한은 어패류, 의류, 편직물, 과실류 등 노동집약형 상품을 주로 수출한다. 북한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품목 1위는 의외로 에너지 및 연료인데 이는 탄광개발, 수력발전소 공동 운영 등 중국과의 합작 사업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해관총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에너지 수급은 지난 10년 동안 급속도로 악화됐다. 북한의 대(對)중국 수입의 43%(1995년)를 차지하던 에너지 비중은 2005년에는 26%로 줄었다. 원유를 들여오는 데 쓴 돈이 67%나 증가했음에도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수입량은 50% 넘게 감소한 것. 원유, 석탄, 코크스 등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에너지의 총량은 같은 기간 70%나 줄었다. 중국의 에너지 무상원조 없이는 경제를 운용하기도 버거운 실정에 이른 것이다.
북한이 중국과의 에너지 교역에서 적자를 벌충하는 부문은 무연탄 수출이다. 그러나 북한은 무연탄을 수출할 때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1997년 말까지 1t당 12달러의 ‘우호 가격’으로 무연탄을 수출했으며, 2006년 5월 1t당 38달러로 현실화되기 이전까지 헐값에 무연탄을 넘겼다. 북한은 산업용으로 쓰이는 무연탄을 수출하는 대신 요리에 사용되는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앞서 언급했듯 북한은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역청탄을 들여오고 있다.
북한으로 보내는 원유가 저장된 중국 단둥시 인근의 중조우의수유기공사 정문(좌).<br>땔감을 등에 지고 마을로 걸어가는 북한의 금강산 온정리 주민들(우).
좌파이론인 임마누엘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을 원용하면, 북-중 교역에서 중국은 ‘중심부’고 북한은 ‘주변부’다. 월러스타인의 주장대로 불평등한 교환관계를 통해 잉여가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전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과 중국의 교류가 늘면 늘수록 북한은 중국에 의존하게 되며 동시에 무역적자 폭도 커지는 구조다. 이 같은 불균형을 일부 벌충하는 것이 중국의 북한에 대한 무상원조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에너지 무상원조(규모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중국이 북한을 다루는 데 전가의 보도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6자회담이 앞으로도 지지부진할 경우 중국이 에너지 공급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문수 교수도 “에너지는 중국이 가진 최후의 카드다. 중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근’ 일변도 한국도 ‘채찍’ 병행 목소리 높아
이렇듯 경제적 측면에서 북한이 중국에 빠른 속도로 ‘종속’되면서 중국의 협상력은 커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중국의 일개 변방으로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중국의 위성국가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중국의 동북 4성의 하나로 편입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맞물리면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제2교역국이다. 한국은 북한의 대외 교역의 25%(2005년)를 차지하는데, 숫자만으로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두 번째로 큰 나라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교류는 ‘당근’ 일변도다. 한국이 대북 제재에 부분적으로라도 나서면 북한은 움찔할 수밖에 없다. 사육사를 연상케 하는 중국처럼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대북전문가는 “시혜성 지원 성격이 강한 금강산관광은 모르겠지만 북한이 경제적으로 한국에 의존하게끔 만드는 개성공단 형식의 경협은 확대돼야 한다. 북한 경제가 중국에 예속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경우 북한이 중국의 위성국가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남북경협의 확대는 당근과 채찍이라는 양날의 칼로도 기능할 수 있다. 물론 현 정부처럼 ‘당근’만 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