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파두의 이른바 ‘뻥튀기 기업공개(IPO)’ 논란에 대해 박필서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5월 8일 기자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변호사는 “공모가가 부풀려져 주가 급락으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주주들을 대리해 파두와 상장 주관사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박 변호사는 “파두와 상장 주관사가 작성한 투자설명서를 보면 2023년에도 계속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고, 이 같은 매출액 추정을 기초로 공모가가 정해졌다”며 “지난해 2분기 매출이 크게 급락하는 등 문제가 생겼음에도 파두는 이런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관련 사건의 첫 재판은 5월 1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 소송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판결 효력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에게도 적용된다.
파두 로고(오른쪽))와 주력 제품인 SSD(Solid State Drive· 데이터 저장장치) 컨트롤러. [파두 제공]
금감원, 파두 사태 관련 전방위 압수수색
파두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 조사도 본격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3월 파두와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한국거래소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4월 30일에는 파두의 최대 거래처인 SK하이닉스도 압수수색했다. 이 같은 전방위 수사를 두고 금융계와 법조계에선 금감원이 구체적 단서나 혐의점을 확보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감원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각 사 자료를 비교 분석해 IPO 과정에서 파두의 매출 추정이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구체적인 혐의 사실을 확인할 경우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하게 된다. 파두 사태 등 IPO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금감원은 5월 9일 상장 주관사인 증권사의 기업 실사와 공모가 산정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파두와 상장 주관사는 고의적 실적 부풀리기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지효 파두 공동대표는 3월 28일 주주총회에서 “거시적 사이클을 충분히 읽지 못하고 단기적으로 변동성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며 주주들에게 사과하면서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회복세가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장 주관사도 파두에 대한 실사에는 문제가 없었으며 매출 급감은 반도체 시장 악화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파두는 IPO 대어로 기대감을 모으며 지난해 8월 코스닥 시장에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입성했다. 공모가는 3만1000원으로 기업가치가 1조 원을 훌쩍 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파두가 공시한 지난해 실적이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 제시한 추정치를 크게 밑돌면서 터져 나왔다. 파두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상 2023년 매출 추정치는 1203억 원 규모였으나, 상장 후인 지난해 11월 발표된 실제 매출 실적은 2분기 5900만 원, 3분기 3억2000만 원에 그쳤다(그래프1 참조). 뜻밖의 어닝쇼크에 지난해 9월 4만5000원까지 갔던 파두 주가는 2만 원대로 급락했고 올해 3월에는 1만230원까지 떨어졌다(그래프2 참조).
SK그룹 계열사, 파두 전환사채에 투자
파두는 2015년 SK텔레콤 연구원 출신인 남이현 대표와 베인앤드컴퍼니 반도체 산업 컨설턴트 출신인 이지효 대표가 공동 창업했다. 데이터센터용 SSD(Solid State Drive·데이터 저장장치) 컨트롤러가 주력 제품이다. 메타에 납품하는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제품에 파두가 생산한 컨트롤러가 탑재돼 시장에서 기대를 모았다. 파두는 SK그룹과 인연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맏사위 윤 모 씨가 파두에 재직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윤 씨는 파두와 SK하이닉스 간 거래가 본격화되기 전인 2020년쯤 파두를 퇴사해 스타트업을 창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16년에는 SK그룹 계열사인 SK인포섹(현 SK쉴더스)이 파두가 발행한 30억 원 규모 전환사채(CB)에 투자하기도 했다.시장에선 파두의 지난해 매출 급감이 SK하이닉스와의 1000억 원 규모 거래가 무산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파두의 최대 거래처인 SK하이닉스와의 거래 축소가 어닝쇼크에 결정타를 날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면서 주요 수요 기업에 SSD 재고가 넘치는 상황이었다. 이런 여건에선 SK하이닉스 같은 메이커도 컨트롤러를 발주할 수 없고, 파두처럼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 실적은 악화하게 마련이다. SK하이닉스 측은 파두와의 1000억 원 규모 거래가 무산된 배경 등을 묻는 기자 질문에 “거래 관계에 대해선 답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일각에선 파두 사태 배경에 기술특례상장제도의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 상장에 비해 기술특례상장은 허들이 낮은 편이다. 우수 기술력을 갖춘 기업에 상장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다. 반도체 분야 한 투자 전문가는 “투자자 관점에서 파두 사태의 근본 원인은 기술특례상장제도 자체의 문제”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기업이 가진 기술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정량적으로 평가하긴 힘들다. 하지만 기술력이 있는 기업이라고 꼭 상장사로서 안정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기술특례상장 바이오주 가운데 실적을 내지 못해 주주들 손해가 커진 경우가 적잖았다. 파두 사태는 기술력이 뛰어나도 기업으로서 체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주가가 곤두박질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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