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전자검사 기관에서 연구원이 친자 확인과 개인 식별을 위해 유전자 정보를 감식하고 있다.
유전자검사는 1984년 9월 영국 레스터대의 유전학자 앨릭 제프리스 교수가 개발했는데, 우리나라에는 91년경 처음 도입됐다. 유전자검사에서 친자 판정에 오류가 생길 확률은 4조7000억 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이 검사 결과는 법정에서 사실을 가리는 명확한 증거로 채택된다. 따라서 친자관계를 둘러싼 소송에서는 유전자검사를 받지 않은 쪽이 패소할 개연성이 높다. 채 전 총장과의 보도 형평성 논란을 불러온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의 경우, 끝까지 유전자검사에 불응했으나 2011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딸과의 친자관계가 확정됐다. 2009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50대 남성의 친자확인 소송에서도 유전자검사를 받지 않은 김 전 대통령이 재판에서 졌다.
소송절차 중 법원으로부터 유전자검사 명령을 받았을 때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하면 10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거나 30일 범위 내에서 유치장에 갇힐 수도 있지만, 실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상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대법원 통계를 보면 친자 확인이나 부인 소송이 지난 10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었다. 개방적 성문화의 확산, 유산 상속을 둘러싼 분쟁 증가와 더불어 유전자검사 비용이 낮아진 점도 그 이유로 분석된다.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검사는 부 또는 모와 자녀의 유전자 지문(DNA fingerprinting)을 ‘찍어’ 같은 핏줄인지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DNA 중 극히 일부인 16개 부위(좌위)를 검사하고 분석해 패턴(밴드)의 일치 여부를 살펴 이를 확률적으로 추정한다. 샘플로는 혈액이나 모근(毛根), 구강상피세포, 표피(表皮)세포가 쓰인다. 검사 결과는 6∼8시간 만에 나오며 비용은 두 사람을 하는 데 30만 원 선이다. 유전자검사는 유골만 발견된 망자의 신원 확인에도 유용하며, 한우나 포도주, 약이 진짜인지를 판별하는 과정에도 쓰인다.
하지만 유전자검사 결과가 늘 승소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 사건의 경우, 그의 혈액과 피살현장에서 발견된 아내 등 두 여성에게서 채취한 피의 유전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혈흔 채취 과정에서 백인 경찰관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등 절차적 오류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사회적 쟁점을 해결하려면 절차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를 모두 구현해야 한다. 절차적 정의란 ‘문제해결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희생되지 않도록(정당성)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말고(합법성), 관련된 당사자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야(민주성) 하며, 이를 잘 지켜 얻은 결과물이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 공익을 실현하는 것(호혜성, 공익성, 합목적성)’이 실질적 정의다. 채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논란을 촉발한 이번 보도의 정당성과 합법성은 우리가 두고두고 성찰해야 할 숙제가 됐다. 과연 우리는 오로지 사회정의를 구현하려고 진실을 찾으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