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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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악마의 영혼 심는 아버지

장준환 감독의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10-14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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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에게 악마의 영혼 심는 아버지
    교복 차림의 평범해 보이는 10대 소년 화이(여진구 분)가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사내 5명을 ‘아빠’ 혹은 ‘아버지’라 부르며 자랐다. 냉혹하고 강력한 권위를 가진 우두머리 석태(김윤석 분)를 비롯해 소년의 아비를 자처하는 인물은 모두 범죄자다.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살인과 절도를 저지르는 이들이다. 10년 이상 끔찍한 흉악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경찰의 수사망을 교묘해 피해 다녀 ‘낮도깨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들. 이들 아비 5명은 소년에게 완벽한 살상 기술을 전수해주고, 자비 없는 ‘악마의 영혼’을 심으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들은 아들을 범행 현장으로 데려가 총을 쥐어주며 살인을 사주한다. “아버지들이 다 괴물인데, 너도 괴물이 돼야 한다”는 석태. 화이는 과연 그의 말대로 아버지들 같은 괴물이 될 수 있을까. 석태와 아비들은 어떻게 괴물이 됐을까, 화이는 왜 그들을 아빠라고 부르게 됐을까, 그가 총을 겨눈 피해자는 과연 누구일까. 장준환 감독의 영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화이’)는 이러한 숱한 의문을 125분간 풀어간다. 고전적인 복수극, 그리스 비극 같은 신화적 원형, 현대적 스릴러가 한 몸으로 엉켜 달려가다 마지막에 내놓는 것은 어둡고 서늘한 진실,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와 질문이다.

    화이의 아비들은 인두겁을 쓴 ‘괴물’이고, 인류의 DNA에 각인된 ‘순수 악’이다. ‘아버지들의 아버지’인 우두머리 석태를 움직이는 건 자기 복제의 원초적 본능이다. 그는 아들을 자기보다 더한 괴물로 만들고자 한다. 아들은 자유의지와 괴물의 본능 사이에서 아버지들의 시험에 든다. 결국 ‘화이’는 ‘나쁜 피’에 관한 영화이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와 같은 영토를 밟고 있다. ‘스토커’는 한 소녀가 자신의 피 안에 내재한 살인과 폭력 충동을 수수께끼 인물인 삼촌을 통해 발견해가는 이야기다.

    아버지에 관한 서사로서 ‘화이’는 더욱 특별히 눈여겨볼 만하다. 올해 한국 영화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은 아버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개봉 중인 ‘깡철이’에는 아버지가 없다. 이 영화에서 치매로 정신 줄을 놓은 어머니(김해숙 분)는 아들(유아인 분)을 젊은 시절 남편으로 착각한다. 아들이 아버지 망령을 대신하는 셈이다. 영화 ‘소원’에서는 아버지(설경구 분)가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 성폭행범에게 끔찍하게 유린당한 딸은 사고 후 아버지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코코몽’의 탈을 쓴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동화’이자 ‘판타지’가 된다. 동화와 판타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우리가 민낯의 아버지를 만날 방법은 없다고 영화는 말하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영화는 벽두부터 아버지에 관한 서사를 쏟아냈다. ‘7번방의 선물’은 자식을 지키려다 억울하게 죽은 바보 아빠 이야기였다. 이런 바보 아버지의 망령은 ‘더 테러 라이브’에 드리워진 음울한 그림자이기도 했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테러로 억울함을 풀 수밖에 없는 존재는 평생 일을 해왔지만 늘 빼앗기고 경멸당하기만 했던 바보 같은 아버지였다.



    한국 영화는 아버지의 시간을 상징으로서 기록한다. 그것은 원혼의 시간이거나 짐승의 시간이거나 동화의 시간이거나 부재하는 망령의 시간이다. ‘화이’에서 아버지의 역사는 괴물의 시간이었다. 극 중 석태가 말하는 더러운 피를 씻으려고 화이는 오이디푸스처럼 부친 살해의 욕망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위한 나라는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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