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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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수입심사 ‘구린내 풀풀’

식약청, 신종플루 진단 장비 등 2등급 ‘허가’ 제품을 1등급으로 ‘신고’ 처리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9-11-11 1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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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에 초비상이 걸렸다. 상급기관인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 감사에 이어, 서슬 퍼런 감사원 감사가 들이닥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감사원 예비감사 단계. 10월27일에는 대대적인 인사개편이 단행됐다. 특히 수입의료기기 심사를 담당하는 의료기기안전국이 초토화됐다. 국 소속 과장 6명 중 4명이 바뀌었다. 일부는 다른 국으로, 일부는 지방 또는 하급기관으로 내려갔다.

    식약청 관계자는 “원래 예정돼 있던 인사로,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 할 수 없어서 끝나고 한 것뿐”이라고 주장하지만, 문책성 인사의 성격이 짙다. 감사원 감사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해당 부처 실무책임자를 교체한 점도 의혹을 더한다. 여기에 신종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의 불법유통 등 악재가 잇따르자 식약청은 초상집 분위기다.

    발단은 최근 보건복지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수입의료기기 심사 및 허가 특혜 의혹으로, 그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신종플루 진단 장비다. 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10월23일 식약청 국정감사에서 “전국 23개 병원에서 신종플루 의심환자의 감염 여부를 확진 판정하는 미국 ABI사의 진단 장비가 2005년 8월 최초 수입되던 때부터 지금까지 불법적인 방식으로 수입됐다”면서 식약청의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전 의원에 따르면, ‘의료기기 품목 및 품목별 등급에 관한 규정’에 따라 ‘유전자 증폭장치’인 신종플루 진단 장비는 식약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 2등급 장비다. 그러나 수입업체인 L사에서 이를 ‘신고’만으로 수입 가능한 1등급 장비로 허위 신고했는데도 식약청은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

    감사 앞두고 대대적인 문책성 인사



    ‘신고’와 ‘허가’는 절차상 차이가 크다. 신고는 수입신고서만 제출하면 된다. 길어야 열흘 이내에 심사가 끝나고, 심사 수수료도 500원에 불과하다. 반면 허가는 시험성적서를 제출해야 할 뿐 아니라 생산시설 실사(實査), 안정성 및 유효성 검사도 받아야 한다. 심사 소요기간은 65일. 또한 심사 수수료 3만원, 시험검사 비용 약 450만원, 해외 생산시설 방문 실사비용 등 수천만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전 의원은 “식약청 관계자들이 이런 사정을 몰라서 그냥 통과시켜준 게 아니라, 뭔가 대가를 받고 특혜를 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전재희 복지부 장관에게 “감사원은 신종플루 진단 장비뿐 아니라 식약청의 모든 수입의료기기 심사 및 허가과정을 엄격히 감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전 장관도 이를 받아들였다.

    실제로 식약청의 수입의료기기 심사 및 허가과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신종플루 진단 장비와 비슷한 수법으로 2등급 장비를 1등급으로 신고해 들여온 수입의료기기들이 추가로 확인됐다. 의료기기 수입업체 P사와 Q사가 호주에서 수입한 ‘Rotor-Gene’ 시리즈와 H사가 미국에서 수입한 ‘Smart Cycler Dx system’도 모두 유전자 증폭장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2등급에 해당하는 의료기기로, 모두 허가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전 의원을 통해 ‘주간동아’가 입수한 관련 제품들의 식약청 신고서류에는 모두 1등급 신고물품에 해당하는 ‘의료용 원심방식 임상화학자동분석장치’로 기록돼 있었다. 심사 역시 수입신고서만으로 끝났다. 이에 대한 업체의 해명이 더 어처구니없다.

    H사 관계자는 “식약청에 신고할 때 외국 제조업체에서 제품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주지 않아 잘못 알고 그렇게 기재했다”면서 “얼마 전 식약청으로부터 문제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수입신고를 자진 철회했다”고 밝혔다. H사가 문제 의료기기의 수입신고서를 제출한 것은 지난해 3월. 1년8개월이나 지난 지금, 국회에서 관련 자료를 요청하자 비로소 식약청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해당업체에 통보하고, 해당업체는 수입신고를 자진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인 것이다.

    5년 동안 같은 수법을 몰랐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 수입업체가 문제의 의료기기를 수입한 시기다. 관련 업체들의 수입신고 서류에 따르면, 이들 의료기기가 2005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지속적으로, 그것도 같은 수법으로 수입돼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오랫동안 의료기기 수입업체들에게 편의와 특혜를 제공했다면 식약청 관계자 한두 명만 관여했다고 보긴 어렵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전 의원실의 윤재관 보좌관은 “짧은 국정감사 기간에 살펴본 결과가 이 정도라면 실태가 어떻겠느냐”면서 “수입의료기기에 대한 전면적인 실사로 문제 있는 의료기기를 가려내고, 수입업체들에게 지속적인 편의와 특혜를 제공한 식약청 내부의 ‘부패 고리’를 찾아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수입의료기기 문제에 대해 앞으로 복지부와 감사원 감사가 있을 예정이기 때문에 어떤 입장도 말하기가 곤란하다. 현재 할 수 있는 말은 감사 결과에 따라 처리되리라는 것뿐”이라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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