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5일 경기도 이천 테르메덴 리조트에서 열린 온천발전전략회의.
행정자치부(장관 박명재·이하 행자부)가 일반 온천과 차별화한 요양·치료 전문 온천을 육성하기 위해 시행한다고 밝힌 이른바 ‘국민보양온천제도’의 골자다. 행자부는 3~5월 이러한 정책 내용을 수차례 내놨지만, 이에 대해 생소하다는 국민이 여전히 많다.
행자부에 따르면, 보양온천은 온천수의 온도와 성분이 우수하고 내부 시설과 주변 환경 등이 양호해 건강증진 및 심신요양에 적합한 온천을 의미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1954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보양(保養)은 ‘몸을 편안하게 해 건강을 잘 돌본다’는 뜻. 급속한 고령화 추세와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 등을 감안할 때 보양온천제도가 행자부의 바람대로 시행될 수만 있다면 국민 건강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12년간 사문화된 조항 갑자기 부활
행자부는 보양온천제도 도입을 위해 의료계와 학계, 관광·온천 전문가로 구성된 14명의 위원을 위촉해 3월15일 ‘온천발전전략회의’를 처음 열어 보양온천 지정 기준 마련에 나서는 한편, 3월19일부터 4월30일까지 전국 온천시설 관리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다. 아울러 5월15일엔 한국관광공사, 국민일보사와 온천발전 공동협력 협약식을 갖기도 했다.
이 같은 보양온천제도 도입은 어떤 경위로 추진하게 된 것일까.
먼저 그에 대한 법적 근거. 현행 온천법 제9조 제1항은 ‘시·도지사는 온도와 성분 등이 우수하고 주변 환경이 양호해 건강증진 및 심신요양에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온천에 대하여 행정자치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이를 보양온천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법적 근거는 충분하다.
‘보양온천 지정’에 관한 이 조항은 이미 1995년에 명문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문화(死文化)되다시피 하다 12년이 지난 올해에야 ‘부활의 서막’을 올린 까닭은 뭘까.
“지난해 12월21일 행자부 균형발전지원본부 아래 생활여건개선팀이 새로 꾸려진 것을 계기로 ‘한번 해보자’는 의욕을 가지고 보양온천제도 도입을 추진해왔다. 특정 직원의 개별적인 정책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장관님도 온천 발전에 관심과 의지가 많아 행자부의 올해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다뤄지고 있다.”(행자부 관계자)
현재 핵심 과제는 난제로 일컬어지는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 등 14개로, 청와대에까지 보고된 것들이다. 이 중 보양온천제도는 생활여건개선팀이 맡고 있는 유일한 핵심 과제.
종합하면, 이 과제는 결국 지난해 12월 박명재 장관 취임과 궤를 같이해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 속사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행자부의 이번 정책은 급하고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06년 12월 현재 국내 온천지구는 379개소, 온천업소(시설)는 586개다. 연간 이용객 수는 5000만명(참고로 국내 온천수의 평균온도는 29.2℃, 온천 굴착깊이인 심도는 평균 684m). 하지만 행자부의 보양온천제도 담당 공무원은 고작 3명에 불과하다. 또한 행자부가 보양온천제도 도입의 모델로 삼은 나라는 일본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다수의 온천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담당 직원 2명이 지난 1월 선진 사례 시찰을 위해 둘러본 곳은 일본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간도 5박6일에 그쳤다. 온천을 건강산업화하겠다는 의욕에 걸맞지 않은 소극적 행보였다.
더욱 난감한 문제는 보양온천제도 추진과 관련해 행자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행자부는 당초 5월 중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산업자원부 문화관광부 등 관계부처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6월이 됐음에도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온천 수증기가 자욱한 일본 벳푸온천타운.
먼저 ‘온천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부분부터 살펴보자. 이는 의사 처방이 있는 온천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방안이다. 그러나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엔 온천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다. 따라서 온천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의 기초는 관련 법 개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은 주무부처인 복지부와의 긴밀한 협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따라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비율이 크게 늘어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월평균 1000억원 이상 적자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 온천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은 사실 이상론에 가깝다. 그럼에도 행자부는 이에 대한 노둣돌조차 놓지 않은 상태.
건강보험제도를 관장하는 복지부 보험급여기획팀의 한 직원은 6월1일 “보양온천제도가 뭐냐”고 반문하면서 “행자부가 협조공문을 보내거나 협의를 위해 접촉해온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보양온천에서의 의료서비스 강화를 위한 ‘온천 전문의 제도 도입’ 역시 의료계의 반발 등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수두룩하다. 전문의 제도 주무부서인 복지부 의료자원팀 관계자는 “온천 전문의 제도에 대해 들어봤느냐”는 물음에 “그런 용어는 금시초문”이라면서 “국내의 현행 전문의 제도는 양방 26개 진료과목과 한방에만 적용된다. 또한 진료과목 간 배타성도 매우 강해서 설령 몇몇 나라에서 온천 전문의 제도를 시행 중이라 해도 그것을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구상은 그다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련의 지적에 대해 행자부 측은 “6월 중 복지부에 협조공문을 띄울 예정”이라면서 “보양온천 지정 기준만 마련된다면 공청회, 설명회 등을 통해 공론화를 거친 뒤 제도를 곧 시행할 방침이라 연내 시행이 가능하리라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3월15일 행자부가 주관한 온천발전전략회의 이후 위원들은 각 분과별로 나뉘어 보양온천 지정 기준, 전국 온천 베스트 30곳 선정을 위한 평가지표 개발 등에 대한 사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행자부가 의도하는 보양온천제도의 밑그림을 그리기가 녹록지 않으리라는 견해를 가진 위원도 적지 않다.
온천 전문 검사기관인 한국중앙온천연구소 이종태 소장에 따르면 유럽에는 치료온천, 일본에는 휴양온천이 발달했는데 일본의 경우 온천치료에 적합한 보양온천으로 지정된 곳이 전체 3000여 온천 중 30~40개뿐이라고 한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온천의 25% 가량이 온천수에 특이 성분을 함유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현재 온천수 음용이 법적으로 금지된 만큼 이런 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보양온천과 온천 전문의 제도는 단지 피부질환 치료 정도에 머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보양온천은 ‘희망사항’에 그칠 수 있다는 것.
의료계 인사로 온천발전전략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조비룡 교수는 “어떤 온천수가 특정 질환에 효능을 보인다는 연관성을 의학적으로 입증하기가 매우 어려운 만큼, 행자부의 보양온천제도 추진은 어수선한 국내 온천업계의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소 어그레시브(aggressive·공격적인)한 정책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땅값 상승을 노린 난개발, 온천공 방치로 인한 지하수 오염, 시설 노후화와 워터파크 등 경쟁 업종의 등장에 따른 이용객 감소로 사양길을 걷고 있는 국내 온천업계를 바로잡겠다는 행자부의 발상을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질과 서비스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국내 온천의 르네상스 시대를 펼쳐 나가겠다”던 5월15일 협약식 때의 박 장관의 공언(公言)이 자칫 공언(空言)으로 남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온천물에 몸 담그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혹 좋은 해결책이 떠오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