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5일 대우증권 주주총회 직후 열린 이사회. 당초 예상과 달리 노조가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등 주총이 무사히 끝나서인지 분위기는 대체로 밝았다. 신임 이사들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날 주총에서는 사내이사로 김성태 흥국생명 고문과 이윤우 전 한국산업은행 부총재, 사외이사로 김동기 변호사와 김준영 성균관대 부총장을 새로 선임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사회 분위기를 미묘하게 만든 게 있었다. 이윤우 전 부총재가 끝내 이사회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 그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게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뜻’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그의 불참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이사들은 ‘종전대로’ 김성태 대표이사 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장기 비전에 대한 밑그림 달라
곧이어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여러 해석이 뒤따랐다. 감사원이 ‘브레이크’를 걸어 이 전 부총재의 이사회 의장 선임이 좌절됐다는 게 가장 유력한 분석이었다. 대우증권 노조가 5월 초 감사원에 산업은행의 관치금융에 대한 감사와 관치인사 철회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낸 것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것.
물론 이에 대해 감사원 측은 ‘공식적으론’ 개입 사실을 부인하지만, 산업은행 측은 감사원과 ‘협의’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전윤철 감사원장이 해외출장 중이어서 감사원 측과 조율을 끝내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의 뜻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과 협의를 마치면 다시 이사회를 열어 이 전 부총재를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할 예정이라는 것.
대우증권 분위기도 산업은행의 이런 설명과 비슷하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김성태 사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 것은 이사회 의장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이사들 사이에서는 집행 임원에 대한 감시 및 견제기구인 이사회 의장을 사장이 겸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곧 재론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산업은행 주변에선 감사원이 ‘제동’을 건 배경과 관련해 “‘대우증권 매각 권고’라는 지난해 9월의 감사원 감사 결과를 무시하고 산업은행이 대우증권 지배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봤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한다. 특히 이사회 의장의 연봉을 대표이사와 같은 8억원으로 책정한 것도 금융 공기업의 방만경영 사례로 지목됐다는 것.
대우증권 측은 ‘이사회 의장의 연봉 8억원’은 사실과 다르다고 적극 해명했다. 원래 연봉은 세전 기준 3억원이지만 최저 -20%에서 최고 100%까지 지급 가능한 성과급을 100% 받는 경우에 한해 6억원이라는 것. 또 나머지 2억원은 업무추진비이기 때문에 소득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8억원이 많다고 하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우증권 이사회 의장 선임 문제를 둘러싼 감사원과 산업은행의 ‘기싸움’은 대우증권의 장기 비전에 대한 ‘밑그림’이 서로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한마디로 산업은행이 설립 목적에 맞게 중요 산업에 대한 자금공급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대우증권 같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것은 구조조정 취지에도 어긋나고 산업은행의 ‘문어발’ 확장 욕심을 드러낸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의 생각은 다르다. 산업은행은 자신들의 기업금융 및 투자은행(IB) 업무 경험과 대우증권의 자본시장 노하우를 연계하는 것이 외국계 IB에 대항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지난해 한 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업계가 대형화, 겸업화로 나가고 있는데 대우증권을 매각하는 것은 거꾸로 가는 결정”이라면서 “내 임기 중에 매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사회 보좌할 사무국도 없어
재정경제부도 산업은행 쪽 생각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이 공식적으로 “6월 중 재경부의 기능개편안이 나오면 이에 따르겠다”고 공언하는 것도 이런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것. 재경부는 현재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 3개 국책은행의 역할 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대우증권은 증권업계에서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6월 취임한 손복조 전 사장이 당시 매출순위 5위로 내려간 대우증권을 3년 만에 1위로 끌어올린 덕분이다. 자기자본도 당시 1조원대에서 현재 2조15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손 전 사장의 뛰어난 리더십과 추진력, 시장 예측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우증권의 이런 위상에도 IB 부문에 관한 한 산업은행과는 게임이 안 되는 수준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증권업계 한 전문가는 “IB 업무의 기본은 리스크를 인수하고 관리하는 것인데, 산업은행의 경우 정책 차원이긴 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회사채 인수 업무를 통해 이를 배울 수 있었던 반면 증권회사들은 회사채 단순 중개 구실만 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산업은행의 이런 구상은 실현될 수 있을까. 우선 시장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대우증권의 IB 부문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은 상식에 속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008년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대우증권이 증권업계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대우증권 노조는 산업은행의 구상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산업은행과 대우증권의 IB부문만 떼어내 IB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대우증권의 리테일 부문은 분리 매각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 산업은행의 이번 대우증권 경영진 개편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과 산업은행의 밑그림 가운데 어느 것이 타당한지는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우증권의 중장기 비전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집행을 감독하는 일차적인 책임과 권한은 대우증권 이사회에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대우증권은 그동안 이사회를 보좌할 사무국도 설치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이사회를 운영해왔다는 지적을 들었다. 결국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이사회의 정상화가 아닐까?
그런데 한 가지 이사회 분위기를 미묘하게 만든 게 있었다. 이윤우 전 부총재가 끝내 이사회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 그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게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뜻’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그의 불참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이사들은 ‘종전대로’ 김성태 대표이사 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장기 비전에 대한 밑그림 달라
곧이어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여러 해석이 뒤따랐다. 감사원이 ‘브레이크’를 걸어 이 전 부총재의 이사회 의장 선임이 좌절됐다는 게 가장 유력한 분석이었다. 대우증권 노조가 5월 초 감사원에 산업은행의 관치금융에 대한 감사와 관치인사 철회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낸 것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것.
물론 이에 대해 감사원 측은 ‘공식적으론’ 개입 사실을 부인하지만, 산업은행 측은 감사원과 ‘협의’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전윤철 감사원장이 해외출장 중이어서 감사원 측과 조율을 끝내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의 뜻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과 협의를 마치면 다시 이사회를 열어 이 전 부총재를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할 예정이라는 것.
대우증권 분위기도 산업은행의 이런 설명과 비슷하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김성태 사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 것은 이사회 의장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이사들 사이에서는 집행 임원에 대한 감시 및 견제기구인 이사회 의장을 사장이 겸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곧 재론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산업은행 주변에선 감사원이 ‘제동’을 건 배경과 관련해 “‘대우증권 매각 권고’라는 지난해 9월의 감사원 감사 결과를 무시하고 산업은행이 대우증권 지배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봤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한다. 특히 이사회 의장의 연봉을 대표이사와 같은 8억원으로 책정한 것도 금융 공기업의 방만경영 사례로 지목됐다는 것.
대우증권 측은 ‘이사회 의장의 연봉 8억원’은 사실과 다르다고 적극 해명했다. 원래 연봉은 세전 기준 3억원이지만 최저 -20%에서 최고 100%까지 지급 가능한 성과급을 100% 받는 경우에 한해 6억원이라는 것. 또 나머지 2억원은 업무추진비이기 때문에 소득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8억원이 많다고 하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우증권 이사회 의장 선임 문제를 둘러싼 감사원과 산업은행의 ‘기싸움’은 대우증권의 장기 비전에 대한 ‘밑그림’이 서로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한마디로 산업은행이 설립 목적에 맞게 중요 산업에 대한 자금공급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대우증권 같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것은 구조조정 취지에도 어긋나고 산업은행의 ‘문어발’ 확장 욕심을 드러낸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의 생각은 다르다. 산업은행은 자신들의 기업금융 및 투자은행(IB) 업무 경험과 대우증권의 자본시장 노하우를 연계하는 것이 외국계 IB에 대항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지난해 한 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업계가 대형화, 겸업화로 나가고 있는데 대우증권을 매각하는 것은 거꾸로 가는 결정”이라면서 “내 임기 중에 매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사회 보좌할 사무국도 없어
손복조 전 사장
현재 대우증권은 증권업계에서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6월 취임한 손복조 전 사장이 당시 매출순위 5위로 내려간 대우증권을 3년 만에 1위로 끌어올린 덕분이다. 자기자본도 당시 1조원대에서 현재 2조15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손 전 사장의 뛰어난 리더십과 추진력, 시장 예측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우증권의 이런 위상에도 IB 부문에 관한 한 산업은행과는 게임이 안 되는 수준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증권업계 한 전문가는 “IB 업무의 기본은 리스크를 인수하고 관리하는 것인데, 산업은행의 경우 정책 차원이긴 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회사채 인수 업무를 통해 이를 배울 수 있었던 반면 증권회사들은 회사채 단순 중개 구실만 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산업은행의 이런 구상은 실현될 수 있을까. 우선 시장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대우증권의 IB 부문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은 상식에 속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008년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대우증권이 증권업계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대우증권 노조는 산업은행의 구상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산업은행과 대우증권의 IB부문만 떼어내 IB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대우증권의 리테일 부문은 분리 매각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 산업은행의 이번 대우증권 경영진 개편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과 산업은행의 밑그림 가운데 어느 것이 타당한지는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우증권의 중장기 비전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집행을 감독하는 일차적인 책임과 권한은 대우증권 이사회에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대우증권은 그동안 이사회를 보좌할 사무국도 설치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이사회를 운영해왔다는 지적을 들었다. 결국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이사회의 정상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