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룩한 선린인터넷고 유학반 학생들.
“학생들의 영어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국제공인기술 자격증과 AP 코스(고교에서 배운 컴퓨터 전공과목의 경우 미국 대학에서 인정된다)에서 가산점을 받아 전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신화의 선봉에 선 인물인 하인철(41) 지도교사의 이야기다. 2003년 3월 하 교사가 1학년 네트워크 특기적성반의 산학겸임교사로 부임했을 때 아무도 이런 꿈의 현실화를 예측하지 못했다.
특별전형에 도전 ‘신화 창조’
“학생들을 접했을 때 개성이 무척 강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다수가 컴퓨터 마니아였죠. 또 네트워크 분야에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전체 성적은 평범하지만 컴퓨터 분야에서만큼은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하 교사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그 역시 광주상고 출신으로 미국에서 유학을 한 특별한 경력을 갖고 있었던 것.
선린인터넷고는 IT 분야 특성화 학교로 거듭나며 21세기에 필요 한 IT 지도자를 육성하는 데 교육의 목적을 뒀다. 하 교사는 본격적인 네트워크 기술 강의를 하기에 앞서 이 분야의 비전과 글로벌 시대의 네트워크 엔지니어 이상향에 대해 설명했다. ‘이제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인터넷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선 네트워크가 제대로 구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네트워크 장비 내의 회로를 설계하거나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진출하고자 하는 분야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하 교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미국 통계청 보고에 의하면 해당 네트워크 분야의 필요 인원은 10만명 이상이지만, 2004년 현재 25% 정도밖에 인력을 확보하지 못했어요. 10년 후면 현재 인력의 3배가 더 필요하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따라서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지금의 의사나 변호사보다 더 각광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줬어요. 관심을 가지게 된 학생들은 제가 미국에서 네트워크 관련 분야를 공부했다는 것을 알고는 제게 유학을 떠나게 된 배경과 유학 생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하 교사는 공부가 하고 싶어 광주상고를 졸업한 뒤 1982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생활은 실망투성이였다. 우선 시위가 잦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회의를 느낀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겠다고 결심했고, ‘되든 안 되든 가보자’는 다짐으로 유학을 추진했다. 캔자스 주립대학에서 컴퓨터 정보공학을 전공하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데이터 통신 중장비 설계 및 분석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현재는 IBM 협력업체의 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유학반 지도교사인 하인철 씨. 그 역시 실업계 고교 출신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1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네트워크 특기적성반의 많은 학생들이 하 교사처럼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중 25명이 주축이 되어 ‘NEFUS (network focus)’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 동아리의 박명훈(18) 학생이 “유학을 가고 싶다.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하 교사는 “한번 해보자”고 대답했는데 이것이 유학반의 시작이 되었다. 이에 동아리 학생 모두 찬성하면서 유학반이 탄생했다.
처음엔 유학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방과 후에도 학생들이 남아 국제공인 네트워크 엔지니어 자격증과 토플을 준비하며 공부를 하자, 소문이 퍼졌다. 학교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천광호 교장은 “젊은 시절의 모험과 고생은 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격려했다.
2기 유학반 20여명도 준비 중
유학반을 운영하는 민사고나 특목고 등이 SAT(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를 준비하는 데 반해, 선린인터넷고 유학반에서는 IT 관련 국제공인기술 자격증을 따는 데 치중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수시모집 전형이 있듯 미국의 대학들도 이런 자격증을 가진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준다는 것을 겨냥한 것.
학기 초마다 학부모 간담회를 열었다. 하 교사는 앞으로 네트워크 분야의 비전과 학생들의 잠재적 소질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엔 ‘무슨 유학이냐’며 어리둥절해했던 학부모들도 설명을 듣고 호응을 해왔다. 하지만 가정형편 등으로 11명이 탈락해, 최종적으로 14명이 남았다. 하 교사는 9월부터 학생들의 성적과 특기, 자격증 등과 경제적인 사정을 고려해 학비가 저렴하면서도 탄탄한 교육과정을 갖추고 있는 50~150위 정도의 중위권 주립대학에 원서를 내도록 했고, 결국 전원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위스콘신 주립대학과 워싱턴 주립대학의 합격통지서를 받아 든 최경훈(18) 군. 중학교 때 반에서 5~6등 정도 하는 우등생이었던 최 군이 선린인터넷고에 진학한 이유는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교 입학 후에도 그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따는 데만 몰두했다. 그러던 중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하 교사에게서 “국제공인 CCNA(네트워크관리공인인증서) 자격증이 있는데, 이것을 획득하면 미국 대학에 진학하기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 군은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유학반에서 CCNA 시험을 준비했고, 11월부터 학원을 다니며 토플을 공부했다. 매일 밤 10시까지 자격증 시험 준비와 토플 공부를 계속했다. 그 결과 3월 CCNA 자격증을 손에 얻었고, 5월 대학 입학 가능선인 200점대의 토플 성적을 받았다. 다음은 최 군의 이야기.
“원서를 쓰는데,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틀린 것을 고치느라 고생 좀 했죠. 10월부터 유학반으로 학생들의 입학허가서가 날아왔어요. 무척 놀라웠고 기뻤죠. 저는 워싱턴 주립대학에 입학하기로 결정했어요. 입학금만 집에서 지원을 받고 이후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충당할 겁니다. 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아이비리그 대학도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하 교사는 “학교를 보내는 데만 만족하지 않고, 학생들이 미국 대학생활에 잘 적응해 글로벌 시대의 인재가 될 수 있도록 확실한 애프터케어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선린인터넷고에는 2기 유학반 학생들 20여명이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하 교사는 “2기 유학반 학생들이 좀더 다양한 자격증을 준비하도록 지도하면서 선배들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이끌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