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4일 MBC 뉴스데스크는 자사 프로그램인 PD수첩을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내야 했다.
평소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는 회사원 이태훈(31) 씨의 질문이다. MBC ‘PD수첩’팀이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연구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연구원을 협박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왜 기자가 아닌 PD들이 취재에 나섰는가’, ‘PD들은 취재를 위해 어떤 훈련을 받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지상파 3사의 주요 시사 프로그램인 KBS1 ‘KBS 스페셜’, KBS2 ‘추적60분’, MBC ‘PD수첩’,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은 모두 PD들에 의해 취재, 제작된다. 이들은 기자가 아니라 대부분 방송국 시사교양국 소속의 PD들. 시사 프로그램 PD들은 “PD들이 직접 시사 고발 프로그램, 시사 다큐멘터리 등을 제작해 사회 환경을 감시한다는 의미로 ‘PD 저널리즘’이란 용어가 사용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PD 저널리즘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가 아니라, 1980년대 이후 TV 시사 다큐멘터리의 양적 성장과 함께 만들어진 한국적인 단어다.
PD들은 PD 저널리즘의 장점으로 ‘심층성’과 ‘참신성’을 꼽는다. 기자가 출입처 중심으로 취재해 사실(fact)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루지 못한 ‘사실 뒤에 있는 진실’을 심층 보도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객관적 보도를 위한 기계적인 중립성에서 벗어나 시각(perspective)을 가지고 사안에 접근한다는 것.
80년대 이후 양적인 성장 … 사실 뒤의 진실 전달
그러나 PD 저널리즘이 사실보다는 ‘주관적 견해의 과잉’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언론학자들은 지적한다. ‘진실 추구’라는 명분으로 사실 확인이나 객관성이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윤호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참·거짓을 분명히 가릴 수 있는 사실을 논거로 대도록 훈련받고 팩트 추구를 기본으로 하는 기자와 달리, PD들은 진실에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나친 시청률 의식으로 성매매, 폭력 문제 등 선정적인 소재를 주로 선택한다는 비판도 있다. KBS ‘추적60분’의 한 PD는 “PD들이 감성에 치우쳐 사실 확인이나 전체적인 흐름을 읽지 못하거나, 시청률 때문에 자극적인 소재 등 그림이 되는 것만 찾다 보니 보도가 선정적으로 흐르는 경향도 있다”고 털어놨다.
방송사 내부에서도 사실 보도를 놓고 기자와 PD가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KBS 보도국장을 지낸 김인규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좌교수는 “기자들은 PD들이 사실 확인이나 객관성 확보에 소홀하다고 지적하고, PD들은 기자들이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발표 저널리즘’에 매몰돼 있다고 비난할 뿐 협업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PD수첩’ 파문과 관련해 MBC 한 관계자는 “‘PD들이 저지른 일을 왜 우리가 뒤처리하냐’는 기자들의 불평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보도를 놓고 기자와 시사 PD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셈.
외국에선 기자 저널리즘과 PD 저널리즘이 분리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 CBS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60 minutes’, ABC의 ‘20/20’ 등은 대부분 ‘취재는 기자가 하고 제작은 PD가 하는’ 통합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PD수첩처럼 PD가 직접 취재를 해 프로그램까지 제작하는 경우는 한국적인 특수 현상이라는 것.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정병욱 책임 PD는 “기자들은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고, PD들은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나’를 배운 사람들”이라며 “전달 방식에 신경 쓰다가 기본 사실을 간과하는 위험을 늘 경계한다”고 말했다.
한 언론학자는 “취재는 연출이 아닌데도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PD들이 훈련도 안 된 상태에서 취재에까지 뛰어들면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학자들은 PD 저널리즘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사 내부의 엄격한 검증 장치 마련 △기자와 PD가 공조하는 시사 프로그램 제작의 일원화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