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3일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복제 개 스너피를 공개한 황우석 교수(왼쪽)와 기술 자문에 참여한 제럴드 섀튼 박사. 둘은 황 교수의 윤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별했다.
“황 교수 연구실의 허술한 보안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대학 서버를 이용하는 연구실 컴퓨터는 해킹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고, 연구원들의 보안 의식 또한 빵점 수준이었다. 이중삼중의 보안 시스템을 갖춰놓은 기업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허술했다.”
황 교수가 영웅으로 떠오르면서 국정원과 경찰은 삼성전자 수준의 보안과 경호에 나선다. 국정원은 연구팀 전원을 대상으로 보안 교육을 하고 도청 및 해킹 방지 시설을 설치했다. 국정원은 황 교수 연구실을 첨단연구소(A급)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교수는 경찰로부터 국가 요인(要人)급 신변보호를 받고 있다. 경찰은 황 교수 집 인근에 경비초소를 짓고 3교대로 24시간 경계근무를 선다. 황 교수가 비행기나 기차를 탈 때도 경호원이 동승한다고 한다.
한국은 두 해 동안 황 교수의 연구 성과로 들썩였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다. 세계적 잣대로 윤리 문제를 보지 않았으며, 경호와 보안이라는 산업시대의 패러다임에 안주한 것이다. 영웅 만들기에 매몰돼 호들갑을 떨었으나 실속을 잃었다. 황 교수의 연구가 막대한 부가가치를 가져올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를 가졌을 뿐 이를 검증하거나 체계화하려는 노력은 미흡했다.
윤리 기준 소홀 경호와 보안에만 안주
줄기세포 연구의 부가가치 추정액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연간 6조6000억원에서 많게는 33조원에 이른다. 황 교수의 연구 결과가 국부를 창출하기 위해선 줄기세포 연구가 세계시장에서 지식재산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33조원 운운하는 건 세계 특허시장의 현실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말한다.
세계 각국의 특허 기준은 다르다. 예컨대 영국 특허청은 배아세포의 분할 수준에 따라 인간으로 규정하기 이전의 배아세포는 특허를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밖의 유럽 지역에선 대체로 배아세포 연구는 분화 단계와 무관하게 불특허 사유에 해당된다. 윤리 규범이 보수적인 나라에서는 앞으로도 특허권 확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세계 과학계는 기술 패권주의가 지배한다. 기술 패권주의는 핵무기에 대한 통제와 비슷하다. 강대국은 가져도 되지만, 약소국이 그것을 갖기 위해선 높은 수준의 정치력이 요구된다. 줄기세포 연구의 경제적 효과가 핵무기의 안보 효과에 버금가게 된다면 기술 패권주의가 연구 결과를 조여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 특허와 관련한 70년대 일화 한 토막.
12월5일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 연구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연구실을 나오고 있다. 국정원은 이 연구실 보안을 맡고 있다.
30년 전보다 강대국의 기술 패권주의는 더욱 거세졌다. 특허기술은 국가 안보에 버금가는 형태로 통제된다.
세계 과학계 기술 패권주의 지배
황 교수 논문을 둘러싼 다툼을 떠나서 정부에 필요한 건 기술 패권주의 시대에서 과학자들을 보호하고, 이권을 챙겨낼 수 있는 정치력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 부문에 대해 전무했다. 지적재산권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실력은 수준 이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1세기는 지적재산권 전쟁 시대다. 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성, 특허성, 경제성은 한국의 잣대가 아닌 기술 패권을 지배하는 강대국의 틀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과학자의 연구 결과를 상품화할 때 재정적으로 돕는 것은 불공정 거래에 해당할 수도 있다. 제2, 제3의 황우석이 등장한다면 또다시 수십조 원의 경제가치가 있다면서 경호나 하고 있을 것인가.
이상희 대한변리사회 회장(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관련 법을 제정한 뒤 특허전문가, 국제정치학자, 외교전문가, 비즈니스맨 등으로 TF팀을 만들어 과학자들을 돕는 게 시급하다. 특정 과학자를 드러내놓고 돕기보다는 소리 소문 없이 일을 진행해야 한다. 황 교수 논란은 안방의 부부싸움에서 세계적 지식 재산 싸움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엔 특A급 과학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연구비를 지원하고 경호를 해주는 게 거의 전부다. 황우석 교수는 연구에만 전념하지 않았다. 또 전념할 수도 없었다. 종교 지도자를 만나 윤리 논쟁에 직접 뛰어들었으며,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 줄기세포를 홍보하는 데 직접 나서야 했다. 사방팔방으로 뛰면서 홀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과학자들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이 아니라 법을 통한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이 돼야 한다. 윤리적 문제의 조언이나, 언론에 대한 대처 등에 대해 과학자들은 도움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다.
이 회장은 “정부, 언론, 과학기술인이 모두 21세기적 사고로 바뀌어야 한다”며 “24시간 경호니 뭐니 하는 건 이전 시대의 패러다임이다. 과학자가 지적재산권을 세계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키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스케줄을 관리하는 전문가, 홍보전문가, 윤리전문가, 특허 문제를 다룰 변리사 등을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어쨌거나 황 교수 논문의 난자 체득 과정에서의 윤리성 및 진위 논란은 지적재산권 전쟁에서 적지 않은 손실을 가져올 전망이다. 오명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은 “황 교수의 줄기세포 검증을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논쟁은 스러지지 않고 있다. 황 교수를 쓰러뜨린 것은 경호원들이 막아야 하는 총알이 아니라, 비판 세력이 내뱉은 ‘말(言) 총’과 윤리문제와 관련한 황 교수의 거짓말에서 기인한 신뢰의 상실이다.
수십조 원의 경제 효과는 지켜야 할 ‘우상’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할 ‘대상’이다.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우상의 거품은 꺼졌으나 알맹이(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남았고, 할 일은 더욱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