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은 심산유곡이 아니라 새들이 노니는 야산에 있었다. 한 달 전 심마니 정씨가 다른 지역에서 캔 50년 된 산삼(원안).
그런데 왜 욕심을 없애라는 걸까. 운만 터진다면 산삼 군락지라도 발견해 ‘인생역전’할 수 있을 텐데 어찌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욕심이 있어야 산삼을 캘 의욕도 생기는 것 아닌가. 이런 의문들이 들면서도 3년 만에 산삼 600여 뿌리를 캤다는 한교수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릴 수 없어 다시 물었다.
“근거 있는 말인가요? 괜히 하는 얘기지요?”
한교수는 대답 대신 씽긋 웃었다. 이번 산삼여행에 동참한 이는 모두 16명. 좀 많은 인원이지만 모두 대전 21C지구촌교회(목사 허광필) 신도들이다. 이 교회 장로인 한교수가 신도들과 우의를 다지기 위해 마련한 첫 여행에 기자가 객으로 끼어들었다. 이 모임은 앞으로 매달 1회씩 산삼여행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교수와, 대전에서 가장 큰 서점인 ‘대훈서적’을 운영하는 김주팔 사장 등 서너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삼 채취 경력이 없는 이들.
“캐고 싶다고 캘 수 있는 게 아니지…”
혼자 산삼을 캐러 간다면 나침반, 휴대전화, 물, 소금, 카메라, 장갑, 등산용 지팡이, 모종삽, 칼 그리고 산삼을 안전하게 옮기는 데 쓸 신문과 아이스박스 등을 챙겨 가야 한다. 그러나 기자는 넘치는 의욕만 갖고 맨몸으로 따라 나섰다.
6월14일 새벽 6시 대전을 출발한 일행은 소백산 자락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산삼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좋기는 좋습디다. 오줌발 하며, 몸에 기운 도는 게 확 달라집디다.”
“저는 오래 앓던 통풍을 고쳤고, 아내는 관절염을 고쳤습니다.”
찻길 가 야산에는 눈꽃 같은 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날이 맑아 산삼 캐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그런데 가는 길에 작은 교통사고가 났고,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이 많아 예정보다 2시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일행은 그것을 액막이로 여기고 싶은 눈치였다. 초행자들이 산삼을 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생각으로라도 가능성을 높이고 싶은 심사였을 것이다.
목적지에서는 한교수와 친분이 있는 심마니 김정식씨(53·가명)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와 부인 정희자씨(45·가명)는 채삼을 시작한 지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수십년 경력의 심마니 못지않은 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실직의 고통에 빠져 있던 이들이 우연히 산삼을 캐기 시작하면서 삶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지난해 김씨 부부는 산삼을 캐 500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렸다.
이날 산삼을 캐기로 한 산은 김씨 부부의 ‘농장’(산삼을 캔 장소를 이르는 심마니들의 은어로 보통 한 번 발견하면 6년 정도 계속 채취한다고 한다)으로 부부는 이날 자식들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장소를 우리 일행에게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산삼을 매개로 김씨 부부와 오랫동안 교유해온 한교수 덕분이다..
산삼은 아이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캐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발견한 산삼을 캐고 있는 기자(위)와 고운 자태를 드러낸 산삼 잎과 줄기.
한교수와 김씨에 따르면 산삼 자생지는 과거의 인삼 경작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깊은 산 속에서 산삼의 씨가 떨어져 자란 천연 산삼인 천종(天種)은 거의 멸종 상태다. 한국전쟁 이후 무차별하게 이루어진 벌목으로 산삼이 자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심마니들이 발견하는 산삼은 사람들이 재배한 인삼의 씨가 까치나 꿩, 비둘기 등에 의해 전파된 것이라고 한다. 인삼은 파종하기 전에 단단한 인삼 씨의 눈을 틔우는 개갑(開匣) 과정을 거치는데, 새들의 배설물에 섞인 인삼 씨는 스스로 발아해 싹이 터 자생하게 되는 것.
따라서 산삼은 새가 많이 찾는 떡갈나무 등 활엽수 근처에 뿌리내리는 경우가 많다. 마을 주변의 논밭에서 먹이를 찾아 먹는 까치나 꿩, 비둘기 같은 산새들의 행동반경이 2km 안팎이라고 하니 당연히 산삼 자생지는 야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산삼은 심산유곡의 인적 드문 곳에서 나고, 발견하기도 무척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심마니들이 산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과장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직도 깊은 산에 천종 산삼이 있을 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산삼은 야산에서 발견됩니다.” 산에 오르기 전 한교수와 김씨는 산삼을 발견하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일러줬다. 우선 경사가 15도 이하인 산의 북쪽 사면 3~5부 능선, 시원한 바람이 볼에 와 닿는 곳을 유심히 살피되 해를 등지면 잘 보이지 않으므로 해를 바라보며 갈 것.
이전에 심마니들은 산에 오르기 며칠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근신했다. 하찮은 미물도 살생하지 않고, 금주하며, 초상집 음식도 먹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금기를 잘 지키지 않는다. 산을 제대로 타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므로 삼겹살이나 추어탕, 혹은 비린 음식까지 먹는 이들도 있다. 다만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침착하게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지금도 중요한 지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활엽수 주변 경사지고 편편한 곳에서 발견
산삼여행에 나섰던 일행들이 이날의 최상품 산삼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윤수 류배근 정동구씨(왼쪽부터).
밖에서 볼 때는 그저 그런 야산이려니 했는데 산 숲에 안기자 의외로 험했다. 방향감각을 잃을 정도로 숲이 깊었다. 긴 소매 웃옷과 긴 바지를 입었지만 덤불가시가 옷을 뚫고 들어왔다. 온몸에서 후텁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일행은 고작 10여m씩 떨어져서 훑어 올라갔지만 금세 주변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가 갑자기 숲 속에서 튀어나와 나한테 달려들 것만 같았다. 나는 조그만 동물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흠칫 놀랐다.
30여분이나 지났을까. 멀리서 한교수가 소리를 질렀다.
“정기자~!”
산삼을 발견한 그가 “심봤다!”고 외치는 대신 나를 부른 것이다. 일행에게 산삼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야 하니 나를 부르라고 부탁해뒀던 터였다. 너무 빨리 산삼이 ‘다가와’ 잠깐 싱겁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소리나는 쪽을 향해 뛰었다. 산삼을 발견한 이는 심마니 정씨였다. 그는 산삼 캐는 일을 한교수에게 맡겨두고 계속 산을 올랐다. 역시 전문가답게 그는 산의 생김새며 바람의 방향 등을 따지며 산삼이 자생할 만한 위치를 찾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줬다.
심마니 정씨가 군락지에서 캔 산삼, 갓 캐낸 산삼의 완전한 형태(왼쪽부터).
그때 내 마음속에서 거대한 욕심덩어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어차피 심마니의 농장이라면 이 산 어딘가에 몇 뿌리는 더 있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서 기운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눈에 핏발이 섰다.
이상하게도 욕심이 앞설수록 자꾸 다리가 휘청거렸고 잡초들이 산삼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실물 크기의 산삼 사진을 들고 비교해봤지만 숙맥(菽麥)을 구별 못하는 사람처럼 참나무 순이나 산나물을 산삼인 줄 알고 캐기 일쑤였다.
다시 “정기자” 하고 부르는 메아리가 들려왔다. 소리나는 쪽으로 올라가자 정씨가 손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산삼이었다. 그 잎이며 줄기가 어찌나 예쁘던지. 발견한 것은 정씨였지만 캐는 것은 내가 맡기로 했다. 첫경험이었던 탓일까. 조심스레 흙을 파내는 데 너무 긴장돼 손이 떨렸다. 산삼은 실뿌리 하나라도 훼손되면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동행했던 정우일씨(한국양명회 이사)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마무리작업을 했다. 7년근. 기대보다 어린 산삼이었지만 캤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자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은 더 커졌다. 산삼을 캐고 사진도 찍었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는 사이 혼자 어딘지 모를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방향을 가늠해보려 했지만 나침반도 없고, 나무들이 하늘을 덮어 해도 보이지 않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시원한 바람이 뺨에 와서 닿는 곳을 찾으라”고 했던 한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경사진 비탈로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가시덤불에 옷이 찢겼다.
한참을 올라가다 소나무들 사이에 있는 잎 넓은 뽕나무를 발견했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었다. 머리 끝이 쭈뼛해졌다. 무언가 있을 듯했다.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산삼은 결코 내게 ‘오지’ 않았다.
산삼 잎에서도 달콤쌉싸름한 향기 진동
입산한 지 3시간. 하산하자는 일행의 전화가 걸려왔다. 일행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포기하고 산을 내려갔다. 다른 계곡으로 정씨를 따라간 이윤수씨(44·건설업)가 30년근 산삼을 캤다고 좋아했다. 정씨가 이씨에게 떡갈나무 근처에서 찾아보라고 조언했고, 이씨가 어린 산삼 두 뿌리를 발견했다. 정씨는 줄기를 건드리지 않고 잎만 살짝 따고는 산삼을 캐지 않았다. 줄기를 건드리면 수년간 휴면삼이 되어 지상으로 줄기가 올라오지 않기 때문. 그 근처에서 이씨가 30년근을 발견한 것이다.
“정말 짜릿했습니다.”
산삼을 손에 들고 생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전문가 한상수 교수, 산삼여행에 나선 일행들(위부터).
그러나 처음 산삼을 발견한 장소를 찾는 게 더 어려웠다. 나름대로 방향과 산세를 가늠하며 돌아다녔지만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곳을 다시 찾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류씨와 기자는 1시간여를 더 헤맨 끝에 결국 빈손으로 터벅터벅 산을 내려왔다.
일행들은 심마니 정씨의 집으로 이동했다. 한 달 전 정씨가 50년 이상 묵은 산삼 다섯 뿌리를 캐서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임자만 잘 만나면 한 뿌리에 수천만원쯤 받을 수 있다는 산삼을 직접 구경했지만 사실 7년근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50년근 산삼을 만지다가 잎이 몇 개 떨어졌다. 그것을 주워 입에 넣고 씹자 ‘달콤쌉싸름한’ 향기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산삼 잎은 뿌리와 같은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향 때문인지 갑자기 활기가 샘솟는 듯했다. 신기하게도 이 향기는 저녁 때까지 입 안에서 맴돌았다. 일행은 심마니에게서 상당히 싼값에 다른 산삼 한 뿌리씩을 샀다.
그런데 왜 산삼은 내게 ‘오지’ 않았을까. 정말 욕심이 과했던 탓일까. 한교수는 혼자 산행 가서 산삼을 캘 때 진정한 ‘득도’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제 주말이면 기자의 발걸음이 습관처럼 산으로 향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우리 일행은 저마다 ‘자신감 한 뿌리’씩을 안고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