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가한 주재환씨가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비디오 설치 작품 ‘슈퍼스타트’.
나는 베니스를 처음 방문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작가로 참가한 것도 처음이다. 내가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받은 것은 중국 큐레이터 후한루와의 인연 덕분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8개 주제 중 하나인 ‘위기의 지대’를 기획한 후한루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내 개인전과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내 작품을 기억했나 보다. 후한루는 나를 포함해 장영혜, 김홍석, 김소라 등 4명의 한국 작가를 초대했다.
나는 6월9일 베니스에 도착해 다음날부터 작품 설치에 들어갔다. 12세기에 세워진 조선소를 개조한 본전시장(아르세날레)은 낡고 천장이 높아 실험적인 작품 전시에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참가 작가로 내가 가장 크게 아쉬워하는 점은 원래 보여주고 싶었던 작품을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큐레이터가 원한 작품을 소장한 쪽에서 작품 보호를 위해 액자를 만들 것을 요구했는데 비엔날레측에서 예산의 절대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했다. 이라크 전쟁으로 스폰서가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갖고 있는 작품 중 6점을 골라 돌돌 말아서 보내고 나는 압정만 들고 갔다. 전시장에 가서야 내가 얼마나 비엔날레를 쉽게 생각했는지 알게 됐다. 작가들이 동시에 작품을 설치하느라 전시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고, 게다가 ‘위기의 지대’엔 비디오 설치를 도와주는 기술자가 단 한 명뿐이어서 비디오 작품을 낸 우리 작가 장영혜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한 중국 작가가 그냥 돌아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에어컨 설치 국가관에 인산인해
언론과 미술 관계자들을 위한 6월12~14일의 개막행사 기간은 말 그대로 인파와 더위, 그리고 미술의 대결이었다. 미국 호주 등 입장객 수를 제한한 국가관 앞은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고 본전시장도 인산인해였다. 특히 유럽과 북미에서 가족 단위로 온, 여유 있어 보이는 백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비엔날레는 확실히 베니스 시에 막대한 수입을 보장하는 관광상품이 된 듯했다. 이 기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전시장은 유럽 흑인들의 비참한 실상을 보여줘 화제가 된 미국관도, 수상을 한 룩셈부르크관-이곳은 중심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지도 못했다-도 아니었다. 그저 에어컨이 가동되는 국가관들이었다.
내 작품이 전시되는 본전시장에서 20분쯤 걸어가면 나타나는 바다가 보이는 명당 자리에 한국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한국관에는 ‘차이들의 풍경’이란 주제로 황인기, 정서영, 박이소가 참여했다. 한국은 1995년에 한국관을 지으면서 땅을 사용하는 대가로 이곳 자르디니 공원에 공중화장실을 기증했다고 들었다. 전시장은 두 면으로 바다가 보이고 천장이 낮아 자연친화적이긴 했으나, 전시장이라기보다 서울 강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국가관을 갖지 못한 나라들이 수십 개국에 이른다니 이만한 전시 공간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싶었다. 전시장 앞마당과 입구에 박이소가 베니스 비엔날레 건물들을 미니어처로 제작한 ‘베니스 비엔날레’와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1위~10위’를 설치했고, 내부에 정서영이 가짜 기둥 작품 ‘기둥’을 세웠다. 황인기는 정문 우측에서 바다가 보이는 유리면까지 28m에 달하는 벽면에 ‘바람처럼’이란 디지털 산수화를 설치했다.
한국관의 악조건을 극복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이 너무 두드러져 건물을 전시하는 것인지, 작품을 전시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관에 한 작가나 한 그룹의 작품을 집중 전시하는 게 낫지 않나 싶다. 12일에는 이곳에서 비엔날레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과 한국에서 온 기자들, 미술평론가 및 관계자들이 모여 ‘스페셜 패널 디스커션’을 열었지만, 어수선한 분위기라 생산적인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내 작품이 별 볼일이 없어서였겠지만, 기자나 관람객 중에서 작품에 대해 질문하는 이가 없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설치된 한국 작가들의 작품. 황인기의 ‘바람처럼’, 정서영의 ‘새로운 삶’, 본전시에 참가한 김홍석 김소라의 ‘만성역사해석증후군’.(왼쪽부터).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체코 작가 카메라 스쿠라와 쿤스트 푸의 공동작품 ‘슈퍼스타트’가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전시장 가운데에 예수가 운동복을 입고 링을 붙잡고 있는 모습의 거대한 인형을 설치하고, 양쪽 벽면에 설치한 비디오 화면을 통해 열광하는 스포츠 관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쟁, 가난, 불평등 같은 문제를 육체적 즐거움으로 눈감게 하는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듯했다. 이것이 언어 장벽 없이 공감할 수 있는 미술의 장점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원인이 되었던 9·11 테러에 대한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못내 섭섭하고 의아했다. 어째서 이곳에 모인 세계적인 작가들은 사회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가.
전시를 보면 볼수록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인들을 위한 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니스에서 짜서 먹지 못하고 남긴 음식을 볼 때마다 내 작품의 어떤 점이 외국인 큐레이터들의 ‘입맛’에 맞았는지 생각해보곤 했다. 결국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축제에 참가한다고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며,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질이 떨어지는 작가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많은 후배 작가들은 지나치게 국제무대를 의식한다. 그래서 ‘비엔날레 형’ 작품이란 말도 나오나 보다. 국제무대를 의식하다 보면 ‘오버’하기 십상이다.
더운 날씨와 짧은 일정 때문에 작품을 대강 보고, 부지런히 사진 찍고 팸플릿과 도록을 챙겼다. 서울에 와서 찬찬히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이 가방들은 항공사의 실수로 분실되어 지구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다. 첫번째 베니스 비엔날레의 추억은 이렇게 기억으로만 남게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