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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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들의 눈물 그리고 분노

배신감 시달리고 경제적 어려움 ‘이중고’ … 자녀 양육 벅차 보육시설에 위탁 예사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3-06-25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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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자들의 눈물 그리고 분노

    남편의 가출로 가정이 해체된 김태임씨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울음을 터뜨리자 친정 부모가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남편이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넉넉지 않은 살림에 자식 둘을 키운다는 게 부담되고 힘들었겠죠. 어떻든 이해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과도 헤어지게 되니 정말 원망스러워요.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차라리 죽고 싶네요….”

    김태임씨(35)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김씨의 남편 최모씨(45)는 1993년 아침 출근한다고 집을 나선 이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살배기였던 큰아이 기수(가명)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 뱃속에 있던 작은아이 기영(가명)이가 초등학교 4학년으로 자랄 만큼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김씨는 남편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전해 들은 소식은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으니 찾지 말라”는 시댁 식구들의 냉담한 말뿐.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홀로 살아온 그의 삶은 눈물과 한숨, 안타까움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가출은 남겨진 이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특히 성인가출은 버림받은 가족들의 상실감과 경제적 어려움, 남겨진 배우자의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인해 가정해체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김씨 가정도 최씨의 가출 이후 ‘망가지고’ 말았다.

    전국 시설 보호아동 1만여명 중 90% 이상 부모 있어

    “기영이가 어느 날 밥 먹다 말고 ‘아빠는 어떻게 생겼어? 아빠 한 번만 보고 싶다’ 그래요. 그래서 ‘형하고 똑같이 생겼으니까 아빠 보고 싶으면 형 봐’ 그랬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아니, 형말고 아빠 말야. 왜 우리 아빠는 집에 안 와. 난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하면서요. 아직 아기인 줄 알았는데 속으로는 아빠가 없는 것에 상처받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기영이는 학교에서 심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기영이를 ‘아빠 없는 놈’이라고 놀리며 때렸고, 가방을 내다버리기도 했다. 김씨는 한참 후에야 기영이가 그동안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선 후 하루종일 거리를 떠돌다 돌아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수도 커갈수록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PC방에서 다른 아이들의 돈을 훔치거나, 가출해 빈 차 안에 들어가 자다가 경찰서에 끌려가 있곤 했다. 김씨는 결국 혼자 힘으로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말았다.

    “어린아이들을 단칸방에 남겨두고 돈을 벌러 다녔죠. 하루종일 화장실 청소, 계단 청소를 해도 일당 2만원이 고작이지만요. 그런데 자꾸 문제가 생겨 학교에 찾아가고, 경찰서에 가고 하다 보니 일을 나가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청소 일은 하루라도 빠지면 다시는 얻기 힘들거든요. 생활은 점점 더 쪼들리고, 아이들은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보증금 200만원에 16만원 하던 월셋방에서조차 쫓겨나면서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겼어요.”

    남은 자들의 눈물 그리고 분노

    부모가 가출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보육원에 맡겨진다. 현재 시설에 맡겨져 보호받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 90% 이상은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다.

    중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학력으로 10년 넘게 두 아들을 키우며 살아온 김씨에게 아이들을 시설에 맡기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호적에 여전히 최씨가 남편으로 올라가 있어 제대로 된 국가 지원도 받지 못하는 김씨로서는 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이 없었다. 두 아들을 보낸 후 그는 방 두 칸짜리 남동생 집에서 팔순이 넘은 아버지와 한방을 쓰며 ‘얹혀 살고’ 있다.

    “기수, 기영이가 ‘엄마가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할까봐 가장 미안해요. 꼭 데리고 와서 다시 같이 살 건데. 방 한 칸만 있었어도 절대 떠나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애들은 정말 내 목숨이나 다름없어요….”

    김씨는 요즘 이혼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아빠 없는 자식’을 만들지 않기 위해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모자 가정’으로 사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 자식과 오순도순 사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김씨의 삶은 씻기 힘든 상처를 입게 됐다.

    김씨 가족만이 아니다. 부부 한쪽, 혹은 둘 다의 가출로 해체되는 가정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2년 말 현재 전국의 시설에서 보호중인 아동은 1만57명.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이규동 상담실장은 “이중 90% 이상은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카드빚이나 가정불화로 부모가 가출한 후 보호받지 못해 시설에 들어오는 아이들”이라는 것이 이실장의 설명이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 상록보육원에 지난해 12월부터 올 6월 사이에 들어온 9명의 어린이들도 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다. 이중 8명은 부모가 카드빚으로 가출하면서 ‘버림받았고’, 한 명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엄마가 가출하면서 이곳에 들어왔다.

    날래게 뛰어다니는 개구쟁이 희준이(5·가명)의 얼굴만 보고는 아이의 그늘을 쉽게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희준이는 아버지 홍모씨(34)가 두 살배기 동생을 때려 죽인 후 상해치사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고, 가정폭력을 이기지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 동생 희원이(4·가명)와 함께 이곳에 들어온 아이였다. 2001년 3월 보육원에 들어왔을 때 이들 남매는 손가락을 하도 빨아 생긴 심한 염증에, 먹어도 먹어도 멈추지 않는 음식 욕심이 있었다고 한다.

    조용히 동화 듣는 것을 좋아하던 희준이는 한 책에서 아빠가 아들을 번쩍 들어올리는 그림을 보고 갑자기 “안 돼! 아가 떨어져! 아빠가 아가 죽였어”라고 하며 울음을 터뜨려 보육사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희준이는 보육원 근처 유치원을 다니며 또래 아이들처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다른 보육원에서 보호받고 있는 대규(8·가명)는 동생 대철(5·가명)이와 함께 여인숙에 버려졌다 시설에 온 아이다. 중국집 배달원이던 아버지는 카드빚이 쌓이자 집을 버리고 식구들과 함께 여인숙에 방을 잡고, 술과 도박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와 매일 다투던 어머니가 그해 7월 가출해버리자 더 이상 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은 여인숙 주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보육원에 들어왔고 지금은 학교와 유치원에 다닌다.

    상록보육원 부청하 원장은 “어제도 한 아버지가 여섯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찾아와 돈 벌어 찾으러 올 테니 한 달만 맡아달라고 사정했다”며 “요새는 후원하겠다는 전화보다 아이를 맡기고 싶다는 전화가 더 많이 온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해체되는 가정이 늘고 있는데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전무하다는 점. 대부분의 부모들은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긴 후 다시 만나러 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만 18세가 돼 보육원을 떠날 때까지 부모나 친척의 따스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나는 경우가 많다.

    ‘사는기쁨정신과’ 김현수 원장은 “부모가 가출했을 때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느낌 때문에 힘들어한다”며 “부모에 대한 배신감을 세상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환해 (기수와 기영이처럼) 가출을 일삼거나 사회에 적대감을 품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남은 자들의 눈물 그리고 분노

    보육원에서 환히 웃으며 뛰놀던 아이들은 부모가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면 숨겨둔 그리움과 진심을 드러낸다.

    사실 보육원에서 환히 웃으며 뛰놀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엄마 아빠 보고 싶지 않아?’라고 묻자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가 더 재미있어” “엄마는 생각도 안 나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육사들은 “요즘에는 보육원에 들어올 때 집에 가고 싶다며 우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며 “이곳까지 오는 아이들은 부모가 있어도 고통스럽게 산 애들이라 본능적으로 집과 시설 중 어디가 더 자신에게 좋은지를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면 진심을 드러낸다. 우울한 표정으로 혼자 조용히 있다가도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아닌 척 밝게 웃는다는 다섯 살 수근이가 유일하게 우는 때는 엄마와 통화한 후다.

    동생을 잃은 고통과 충격으로 남자를 두려워하고 내성적이던 희준이가 눈에 띄게 밝고 씩씩해진 것도 집을 떠났던 엄마가 여기저기 수소문해 희준이 남매를 보러 보육원에 찾아온 후부터였다. 희준이의 생활보고서에는 “작년 5월에 다녀갔던 희준이 어머니가 올 4월 다시 만나러 왔어요. 희준이가 엄마 만나고 난 후 전보다 더 밝고 명랑해졌어요”라고 적혀 있다. 1년 만에 자신을 만나러 온 엄마지만 희준이는 언제나 엄마를 그리워하며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다섯 살 된 이 아이들의 감춰진 진심은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자신을 다스리며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때문에 이런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국의 경우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웃이 이들을 맡아 기르는 위탁가정서비스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가족이 재결합할 때까지 이들과 가까운 이웃, 친지가 아이들의 교육이나 의식주를 책임지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형제자매의 아이들도 대신 키우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다.

    상록보육원의 예연(5·가명), 예석(4·가명) 남매도 아버지가 카드빚 3000만원을 남겨두고 가출한 후 서울의 이모, 삼촌, 전북 고창의 할머니 댁을 전전해야 했다.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어머니가 이들을 돌볼 수 없었던 탓이지만 넉넉지 못한 형편의 친척들에게 이들은 ‘혹’과 같은 존재였다. 결국 다시 서울로 보내져 보육원에 들어온 예연이의 마음속에는 이때 받은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정부가 위탁가정에 양육비를 지원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식을 키울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이들에게 최소한의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이은실 보육사는 자기가 돌보는 아이들 중 유일하게 ‘진짜 아빠’가 있는 3학년 소현이 이야기를 꺼냈다. 소현이의 아버지는 IMF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한 후 아내가 집을 나가자 당시 다섯 살이던 딸 소현이를 보육원에 맡겼다. 트럭을 빌려 과일장사를 시작하면서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없게 됐기 때문. 하지만 그는 팔다 남은 과일을 트럭에 싣고 보육원을 찾는 등 자주 소현이를 보러 온다. 지난해 월드컵 때는 소현이에게 빨간 티셔츠를 입히고 상암동 광장에서 함께 응원하기도 했다.

    “응원 다녀온 소현이의 눈이 얼마나 반짝거렸는지 몰라요. 소현이는 정말로 자기 아빠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죠. 지금은 보육원에 살지만 언젠가는 아빠가 자기를 데리고 갈 것이라는 걸,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지금 잠깐 떨어져 있는 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그 믿음 덕에 소현이는 절대 비뚤어지지 않을 겁니다.”

    신용불량자 300만명 시대에 부모의 가출과 그로 인한 가정해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상록보육원 부청하 원장은 “빚이 늘어나고, 누군가 가출했다면 이미 일은 벌어진 것이다. 부끄럽다고 아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보다 솔직한 모습 그대로 아이 옆에 있어주는 것이 남은 부모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충고하며 “부모에게 이 같은 책임감을 교육하고, 버림받은 어린이들은 책임지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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