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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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 ‘남한 옷 갈아입기’ 비지땀

3개월간 영어, 컴퓨터 등 ‘남한 적응교육’…미지의 세계 불안한 첫 출발

  • 입력2005-07-06 12: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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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들 ‘남한 옷 갈아입기’ 비지땀
    ‘하나원’.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에 온 탈북자들은 이곳에서 의무적으로 ‘사회적응교육’을 받는다.

    올 들어 이 기관은 두 달에 20여 명 꼴로 적지 않은 수의 원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원생들은 하나원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과연 이들은 남한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해 가고 있을까. 이들도 ‘인터넷’을 할까. 이들은 자신보다 10년은 앞서 나간 디지털, 정보화 속도를 ‘추격’할 수 있을까. 7월8일로 개설 1주년을 맞는 하나원의 풍속도에서 ‘남-북한 주민들이 공존해 살 수 있느냐’는 어려운 숙제를 미리 접하게 된다.

    남북정상회담 다음날인 6월16일 북한인 22명이 하나원을 퇴소했다. 새로 받은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와 본적은 모두 하나원이 위치한 ‘경기 안성시 삼죽면…’으로 돼있다. 하나원은 이들에게 새로운 ‘고향’인 셈이다.

    원생들 중 정모씨(30)로부터 3개월간의 하나원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하나원 교육과정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 “오전 6시30분 기상, 아침 운동, 7시30분부터 아침식사,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는 교육, 저녁은 자유시간이다. 방은 2인1실이며 식사도 먹을 만하게 나온다.” 주요 교육과목은 영어, 컴퓨터, 예절, 법, 경제, 정치, 적성교육, 직업상담 등이며 외부 연사의 강연도 많다. 시험은 없지만 모든 교육생들이 ‘운전면허증’을 필수적으로 취득해야 하는 것이 특색이다. 정씨는 “법, 경제, 정치는 중학교 수준이었다. 자본주의 이론은 북한에서도 충분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그러나 ‘영어’에 매우 취약했다. 북한에서 러시아어만 배운 사람이 많기 때문. 기사에 영어식 표현이 워낙 많이 사용되고 있어 한국 신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탈북자도 많다고 한다. 하나원측은 ‘한국신문 보는 법’을 매일 강의한다.



    정씨는 자신을 포함해 많은 탈북자들이 컴퓨터 교육에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하나원이 갖고 있는 ‘팬티엄Ⅲ’ 컴퓨터 자체가 286급에 영어자판만 보아온 탈북자들에겐 경이로운 것이었다. 정씨는 저녁 자유시간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다. 그는 워드프로세서, 윈도체계 운영,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됐다.

    “북한 사람들도 도스체계는 익혀와서 기본적인 컴퓨터 기능은 안다. 남한의 컴퓨터를 북한사람들이 금방 따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정씨는 인터넷 검색은 물론, ‘라이코스’ 사이트로 남한에서 사귄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는 하나원에서 ‘인터넷 채팅’까지 했다고 한다. “부산의 27세 직장인과 ‘야후’사이트에서 한 시간 동안 채팅했습니다.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아마 크게 놀랄 겁니다. 미국과 중국 교포 여성과도 채팅했죠. 용기있게 도전해 봤는데 채팅이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하나원에서 탈북자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었던 TV프로그램은 SBS(서울방송)의 드라마 ‘불꽃’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 드라마를 보며 자신들이 앞으로 살게 될 자본주의체제가 어떤 건지 접할 수 있었다고…. 정씨는 “여성방송작가와 재벌이 결혼하는 과정을 보며 ‘여기도 계급이 있는 사회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결혼 이후에도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고 그것 때문에 끝내 이혼하는 모습은 북한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주말과 휴일엔 시민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하나원에 들러 탈북자들을 돕고 있다. 이들도 주로 컴퓨터와 영어를 강의한다.

    이렇게 3개월을 보낸 22명의 북한인들은 퇴소와 동시에 전국으로 흩어졌다. 정부는 최근 북한인들이 비수도권 지방에 정착해 살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향후 북한인의 남한 이주가 더 늘 것에 대비해 미리 ‘원칙’을 정해놓은 셈이다. 이에 따라 22명은 광주-전남(6명), 충남(4), 충북(3), 경기(3), 서울(3), 영남(3)으로 각각 흩어졌다.

    기자는 하나원에서 나온 정씨를 계속 추적했다. 정씨는 정부에서 받은 정착금 2000만원을 들고 6월16일 곧장 광주로 내려갔다. 그에겐 12평 임대아파트가 주어졌다. 그는 집안 청소를 끝내고 남한에서 첫 ‘쇼핑’을 했다. 그는 ‘중고냉장고’를 샀다. 두번째로 구입한 것이 바로 ‘펜티엄Ⅲ 컴퓨터’였다. 전 재산의 10%를 선뜻 컴퓨터에 투자한 것이다. 그는 대신 TV 등 다른 용품은 사지 않았다. 그러나 아파트에 인터넷전용선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고 나서 정씨는 요즘 동네 PC방에 자주 들른다. 정씨는 거기서 ‘취업정보’를 얻고 있다.

    정씨는 북한의 공과대학에서 열역학을 전공하고 발전소에서 ‘간부 엔지니어’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남한에선 먹힐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는 불안감을 내비쳤다. “남한에서 ‘북한은 낙후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남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인터넷을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구체적인 생활계획을 세우지는 못하겠다.”

    정씨의 ‘동기생’ 이모씨(41)는 천안시에 정착했다. 그는 북한 공군 선전대에서 공연작품의 대본을 써주는 일을 해온 작가 출신이다. 그가 하나원을 나온 뒤 가장 먼저 한 일도 노트북PC를 구입한 것이었다. 그는 인터넷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학원에 등록할 계획이다. 그러나 그 역시 전혀 새로운 세계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북한에서 식료품제조 공기업의 ‘이사급’으로 일했던 최모씨(56). 알고 보니, 북한에서 약혼한 남자와 서울에서 극적으로 만나 결혼함으로써 화제를 모았던 최은실씨(27)가 그의 딸이었다. 아내와 함께 탈북에 성공,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딸과 사위를 만나게 돼 그는 요즘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가 체험하게 될 서울생활은 그리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북한에서 그는 ‘텃밭까지 있는 단독주택’을 소유했던 ‘상류층’이었지만, 7월1일부터 한 교회에서 ‘경비’로 일하게 된다. 최씨는 “나는 현실을 직시했다”고 말한다.

    22명 하나원 동기생들이 북한에서 갖고 있었던 직업은 무직(7명), 단순 노동자(6), 사무직(6), 기술자(1), 예술인(1), 노동당원(1) 순. 정씨 이씨 최씨와 같은 북한의 ‘인텔리계층’보다 무직-단순노동자의 비율이 훨씬 컸다.

    전문가들은 이들 탈북정착민에게 세 가지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침체로 북한에서 실업자-단순노동자의 수가 늘면서 북한 이주민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는다, 이들은 대부분 남한사회의 빈곤계층으로 편입된다, 남-북한간 생산력과 기술력의 격차가 더욱 벌어져 북한의 인텔리도 남한의 하류층으로 편입된다는 예상이다. 이와 관련, 하나원은 연수생들에게 한국 노숙자의 생활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등 ‘남한 환상 깨기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3년간 남한생활을 해온 탈북자 방영철씨는 북한 경제관료 경력을 살려 6월13일 대북사업 기업에 자문해 주는 ‘평양컨설팅’을 설립했다. 방씨는 탈북자들에게 “특화된 능력을 기르라”고 권한다. 북한인권시민연합 김경은간사는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자칫하면 방향감각을 잃고 만다. 더구나 이들의 수는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22명이 나간 하나원은 여전히 바쁘다. 지금 이곳에선 27명의 또다른 탈북자들이 ‘남한교육’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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