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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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인생의 ‘청춘 열병’ 극복기

  • 입력2005-07-12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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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년에 온갖 연극상을 휩쓸었던 박근형 작-연출의 ‘청춘예찬’(7월30일까지 강강술래극장)이 재공연되고 있다.

    화려한 수상 경력과 달리 이 작품의 무대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컴컴하게 텅빈 무대 안에 객석과 마주하고 있는 작은 객석이 유일한 세트다. 관객들이 또하나의 객석에 앉아 있는 주인공을 응시하게 함으로써 그를 자신들의 거울처럼 느끼도록 의도했는지도 모른다.

    제목은 ‘청춘예찬’이지만 연극 속의 청춘은 남루하고 참혹하다. 4년 동안이나 고등학교 2학년에 머물고 있는 청년(박해일 역)은 불량 친구들과 거리를 배회하며 시간을 ‘죽인다’. 백수인 아버지는 늘 김치 쪼가리나 참치 캔을 안주삼아 소주병을 달고 산다. 어머니는 부부싸움 끝에 아버지가 뿌린 염산에 눈이 멀어 집을 나갔으며 안마사로 일하고 있다.

    해일에게 가족은 있지만 가정은 없다. 가정은 테두리만 남은 채 해체되었고 가족간의 위계질서는 붕괴되었으며 심지어 서로의 역할이 전도되어 있다. 해일은 아버지에게 반말을 일삼고 때로 그들 사이엔 욕설과 폭력이 오간다. 그들 관계의 표면은 불만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진한 연민과 애정이 숨어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위로하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지쳐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해일을 선도하려다 끝내 이 땅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이민을 떠나는 교사의 뒷모습도 처절하다. 등장인물 모두는 행복의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을 것 같다.

    해일이 우연히 만나 살을 섞게 되는 연상의 다방 레지(고수희 역)는 엄청난 뚱보에 간질환자다. 그녀는 첫 남자인 해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의 누추한 처소에 기어든다. 아버지는 셋이 누우면 방이 꽉 차서 따뜻하다고 위안한다. 그들은 장차 태어날 아기를 위해 벽과 천장에 별을 매달아 놓고 새로운 가정을 꿈꾼다. 그런 점에서 박근형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지리 궁상맞고 추한 현실이지만 거기에는 뜻밖에도 잔잔한 서정성과 페이소스가 스며 있다. 이는 박근형 특유의 절제된 대사와 간결한 행동 양식에 힘입은 바 크다. 과장 없이 툭툭 내뱉어지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사들은 때때로 소름 끼치는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다방 레지의 비대한 몸과 추악한 간질 발작의 와중에서 순수한 사랑과 인간미를 발산시키는 연출자와 배우의 능력이 경이롭다. 섹시한 몸만이 각광받는 이 시대에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든다는 진리가 새삼스럽다.

    청춘의 열병은 죽을 만큼 지독하지만 이 난폭하고 험난한 세상 가운데 살아남기 위한 통과의례일 것이다. 해일의 방황과 고통은 극도로 열악하고 비천한 현실 속에서도 청춘은 예찬할 만하며 모든 인간의 삶은 존엄성을 가지고 있음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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