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에 소속돼 직업자활을 하는 사람들이 경기 부천의 한 세차장에서 세차 일을 하고 있다. [윤채원 기자]
정신과 약은 더 무기력하게 만들 뿐
S 씨는 19세 때 대마초와 러미라를 처음 접했다. 내성적이고 음주·가무에 서툴렀던 S 씨가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택한 수단이었다. 결국 그는 28세에 2년간 첫 번째 징역살이를 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은 마약을 하지 않았기에 출소 후엔 끊을 듯했다. 그러나 이내 또 약에 손을 대 다시 징역을 살았다. S 씨도 끊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정신과 병동에 입원도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정신과 약은 먹을수록 무기력해졌다. “(정신병원에서) 한 달 참았으니까 됐다, 가족한테 이만큼 견디는 걸 보여줬으니까 됐다는 보상 심리로 마약을 더 찾았다”고 지난 세월을 곱씹었다.
S 씨가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아내 한 씨는 남편이 약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했다. 그러다 신 목사가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접했다. 신 목사도 17세 때부터 마약을 시작해 34세에 끊은 과거가 있었다. 자살까지 시도했지만 지금은 목회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한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신 목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후 신 목사와 함께 교도소에 있는 남편을 찾아갔다. 출소 후 S 씨는 종교적 체험을 하고 직업자활을 하면서 마약을 끊었고, 지금의 소망사를 이어갔다.
S 씨는 마약을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을 끊어야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약에 쏠려 있는 관심을 돌리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활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교도소 안에서 정신과 약을 많이 먹어 이미 무기력해진 상태”라며 “아무런 신체활동도 하지 않으면 ‘약을 끊어야지’와 ‘끊기 힘들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비슷한 과정을 지나온 그는 약 후유증으로 늘어져 있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다. “야, 세차장 나올래?”
마약했다고 내쫓기기도
세차장에 나와 한 번이라도 육체노동을 해본 이는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밤에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며칠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신과 약을 멀리하게 됐다. 한때 세차장에서 같이 일했던 한 동료가 그랬다. 처음엔 정신과 약 때문에 행동이 느렸고 자주 밤을 새웠다. 몇 달이 지나자 변화된 모습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손님이 오면 직접 안내했고, 세차 실력도 늘었다. 1년이 지난 후엔 생활체육지도사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시작했다.
세차장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2년 ‘소망을 나누는 떡집’이라는 떡 가게로 시작해 순대 공장, 다시 떡 공장을 거쳐 지금의 세차장으로 바뀌었다. S 씨는 “잘된 곳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마약중독자였다는 이유로 차별도 받았다. 떡 공장을 운영하던 2010년대 중반 건물주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매일 112에 신고 전화도 걸었다. 전(前) 마약중독자들이 일하는 ‘혐오시설’이라는 게 이유였다. 결국 건물주가 이사비용을 지원한다는 조건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판사는 “그곳 사람 대부분이 벌을 다 받고 새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분들인데 참 힘들겠다”고 위로했다. 법정에서 소망사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쏟았다.
신 목사는 1997년부터 전국 교도소를 돌아다니며 출소한 마약중독자를 모아 20년 넘게 소망사를 이어가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이 자활사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하나다. 마약중독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데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작은 성취라고 믿기 때문이다. 신 목사는 마약중독은 병원만 다니거나 약만 먹는다고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마약으로 잃어버린 존엄성을 찾으려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면서 “단순히 돈을 벌어 생계를 잇는 일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노동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20년 전 신 목사는 마약 투약자와 그 가족 100명을 모아 강화도나 영종도에 단약 의지를 다지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 꿈에 어느 정도 다가섰는지를 묻자 “한참 멀었다”며 웃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소망사는 분식집을 열려고 준비 중이다. S 씨는 “지금 셰프 친구가 하나 들어왔다”며 “카레와 돈가스를 할 줄 안다기에 공유 주방을 이용해 배달을 해보려 한다”고 의지를 다졌다. 자활 공동체 구성원의 가족들도 일하고 싶은 사업장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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