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군 Su-57 전투기. [위키피디아]
북·러 군사협력 노골화
최근 북·러 군사협력은 단순한 군사 지원이 아닌, 비교우위를 따져 각자에 이익이 되는 무역 형태로 확대됐다. 향후 양측 ‘군사 무역’은 더 노골화될 것이다. 우선 북한은 값싸고 대량 조달이 쉬운 총기나 탄약, 야포 같은 무기를 대량생산해 러시아에 공급한다. 반대로 기술력이 우수한 러시아는 북한에 첨단 장비와 관련 기술을 넘겨주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이미 전략무기나 관련 핵심 기술, 재래식 군사력 현대화에 필요한 장비를 러시아에 요구했을 개연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핵무기나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전략 잠수함이 북한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넘기고 있는 무기와 장비, 병력 규모를 감안하면 반대급부로 받아낼 첨단무기도 다종다양할 것이다. 특히 한국은 북한의 첨단무기 리스트 상단에 첨단 전투기가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8월 러시아 국영항공기업 UAC는 극동 지역에 있는 전투기 생산 시설 콤소몰스크나아무레 항공제작소를 대폭 확장한다고 밝혔다. 현재 이 공장에선 4.5세대 전투기 Su-35S와 5세대 스텔스 전투기 Su-57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문해 여러 종류의 전투기를 둘러보기도 했다. “공장 확장 공사의 목표는 Su-57 증산이며, 전투기용 연료 시스템 실험동과 무선전자장비 실험 격납고는 이미 완공됐다”는 게 UAC 측 입장이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Su-57의 경우 이미 확정된 발주 물량의 3분의 1이 생산됐고 추가 수주 일감도 없다는 것이다. Su-57은 2021년 5대, 2022년 7대, 2023년 11대가 러시아 항공우주군에 인도됐다. 올해는 11월 중순 기준 4대가 출고됐다. 이런 속도라면 늦어도 2028년까지 러시아군이 발주한 76대가 전량 납품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해당 기종 생산 라인을 2배로 확장한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러시아가 추가 발주를 고려하고 있거나 대규모 해외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 F-22 대항마 Su-57
그런 가운데 러시아는 11월 14일(현지 시간) Su-57의 첫 해외 수출 계약 체결을 공식 발표했다. 러시아의 무기 수출을 총괄하는 국영기업 로소보로넥스포르트 관계자의 언론 인터뷰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이 회사의 알렉산드르 미헤예프 총괄이사는 자국 국영통신사들과 인터뷰에서 “외국 고객을 상대로 Su-57 전투기의 첫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구매 계약을 체결한 나라가 어딘지 밝히지는 않았다. 해당 발언이 나오기 이틀 전 러시아 국방부 산하 군사기술협력국이 현지 언론에 “익명을 요구한 국가가 요청해온 첨단 전투기 판매를 승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 측이 함구하고 있어 해당 계약의 주인공은 실제 전투기가 인도되기 전까지는 공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Su-57은 얼마나 강력한 전투기이고 이를 구매한 나라는 어디일까.
Su-57은 러시아가 미국 F-22에 대항하고자 개발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다. 현재 생산되는 모델은 개량 버전인 Su-57M이다. Su-57M 엔진은 기존 AL-41F1에서 이즈델리예 30으로 교체한 ‘파워업’으로 마하(음속) 1.6의 속도를 낸다고 한다. 기동성만 놓고 보면 세계 최정상급 성능이다. 최신 N036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탑재해 400㎞ 거리에서 적 전투기를 탐지할 수 있다. 62개 목표물을 동시 추적하고 그중 위험도가 높은 16개를 자동 분류해 한꺼번에 공격할 수도 있다. Su-57M은 동급 첨단 스텔스 전투기에 대한 탐지 및 공격 능력도 우수하다. 여러 대역 주파수를 사용하는 레이더가 기체에 골고루 배치된 덕에 스텔스기 탐지 능력이 뛰어나다. 우수한 전자전 시스템으로 미국, 유럽제 최신 전투기 전자장비를 단숨에 먹통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넓은 내부 무장창에 400㎞급 사거리의 Kh-69 스텔스 순항미사일 4발, ‘러시아판 암람(AMRAAM)’이라는 R-77 공대공미사일 6발을 실을 수 있다. 물론 러시아 측 발표는 과장이 많아 카탈로그 제원을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항공우주기술 강국 러시아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전투기인 만큼 일반 4.5세대 전투기보다는 우수한 성능을 가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래서인지 그간 Su-57 구매에 관심을 가진 나라는 제법 많았다. 우선 인도가 공동개발 형태로 개발비를 분담하며 사업에 참여한 바 있다. 미국 측 제재로 F-35 전투기 도입이 좌절된 튀르키예도 도입을 검토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자흐스탄, 인도, 이집트, 베트남, 미얀마, 알제리, 이란, 북한도 Su-57 도입설이 나왔다. 이 중 북한을 제외한 대다수 나라는 이미 다른 모델 구매로 돌아섰거나 전투기 도입 계획 자체를 접었다. 사우디는 영국·일본이 주도하는 6세대 전투기 프로그램 GCAP에 참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UAE는 프랑스와 차세대 라팔 스탠더드 F5 도입 협상을 진행 중이다. 카자흐스탄은 Su-30SM 도입 계약으로 선회했고, 인도는 AMCA라는 5세대 전투기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 지원을 받는 이집트는 미국 F-15EX와 유럽제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두고 구매를 저울질하고 있다. 베트남은 Su-57 대신 Su-30MK2를 택해 전력화를 막 완료한 참이다. 미얀마도 Su-57이 아닌, 중국제 JF-17과 FTG-2000을 구매했다.
북한의 신형 전투기 도입 징후 3가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해 9월 15일(현지 시간) 러시아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의 전투기 공장을 방문해 기체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신형 전투기를 구매할 징후는 지난해부터 계속 나왔다. 우선 북한은 최근 평양 외곽에 있는 공군기지 두 곳의 확장 및 현대화 공사를 마쳤다. 각각 순천비행장과 북창비행장으로, 모두 활주로가 300m 연장돼 30t 이상 대형 전투기의 이착륙이 가능해졌다. 북한 공군기지 중에선 이례적으로 유개화(有蓋化) 격납고도 설치됐다. 이들 비행장은 북한 공군의 최정예 전력인 MIG-29와 MIG-23이 배치된 곳으로, 평양방공작전의 핵심 거점이다. 현재 북한 공군이 운용하는 전투기의 경우 최대이륙중량 20t 미만이기에 기존 활주로에서도 충분히 이착륙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갑자기 평양 인근의 공군기지 활주로를 연장했다는 것은 이착륙 활주 거리가 훨씬 긴 30~40t급 항공기를 도입하려는 목적 외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참고로 최대이륙중량 37t에 육박하는 한국 공군 F-15K 전투기는 2755m 활주로를 가진 대구기지에서 운용된다.
북한이 단 3대 보유한 IL-76 수송기에 대형 레이더를 달아 조기경보기로 개조하는 것도 신형 전투기 도입을 위한 밑 작업으로 풀이된다. 현재 북한이 가진 모든 전투기는 지상관제에 의존하는 구형 모델이다. 전자·통신장비가 낙후된 탓에 조기경보기와의 데이터 송수신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북한이 조기경보기를 확보하려고 나선 것은 러시아로부터 4.5세대 이상 첨단 전투기를 도입할 것이라는 강력한 징후다.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국회 정보위원회에 “북한이 신형 항공기 도입을 위해 조종사와 정비사를 러시아로 파견했다”고 보고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지난해 여름 파견된 것으로 알려진 이들 인력의 행방은 현재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현재 북한에는 신형 항공기 조종·정비 교육을 위한 인프라가 전무하다. 따라서 이들은 최소 2년간 기본비행부터 전술입문까지 모든 교육 훈련을 받고 전투기와 함께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 빠르면 2025년 하반기에는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어떤 전투기를 받았고 어디에 배치할지 드러날 공산이 크다.
북한이 5세대 스텔스기를 도입한다면 대한민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현재 한국군에는 스텔스 전투기 대응 능력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실제로 5세대 스텔스기를 보유하게 될 경우 유사시 한국 공군 전투기가 평양을 공습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서북도서, 수도권 일대를 초계 비행하는 아군 전투기가 북한 스텔스 전투기의 기습 공격을 받는 전례 없는 위협이 닥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