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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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폐기물 처리 현장, 외국인 노동자의 저임금에 버티는 구조 [제로 웨이스트]

재활용 품질과 수익 떨어진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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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0-11-15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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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은 편합니다. 어쩌다 한 번 기계가 고장 나는데 그때 손봐주기만 하면 됩니다.” 

    A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에서 일하는 이모 작업부장이 가압식 여과기인 필터 프레스(Filter Press)를 가리키며 말했다. 필터 프레스는 수처리 수조를 통과한 잔토사를 분리하는 기계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의 최종 단계를 담당한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이곳에는 오전 7시부터 철거 폐기물을 가득 담은 25t 덤프트럭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어쩌다 한 번’ 기계가 고장 난다는 이 반장의 말은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무색해졌다. 곧바로 금속 결합 장치의 문제로 기계가 멈췄다. 이후에도 이틀간 40분에 한 번꼴로 알 수 없는 이유로 기계가 돌아가지 않았다. 애당초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작업자가 일일이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상황이었다. 영세 건설폐기물 처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설 노후화 문제였다.

    장비 노후화 심각한 작업장

    10월 30일 서울 강서구 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작업장을 둘러보고 있다. [최진렬 기자]

    10월 30일 서울 강서구 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작업장을 둘러보고 있다. [최진렬 기자]

    건설폐기물은 전체 폐기물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크다. 환경부가 지난해 발표한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2018년 발생한 건설폐기물은 20만6951t으로 전체 폐기물의 48.1%에 달한다. 폐콘트리트나 폐아스팔트콘크리트가 대다수인 건설폐기물은 건설·도로포장용 자재 등으로 재활용된다. 

    2018년 기준 건설폐기물 재활용률은 98.3%이다. 높은 재활용률을 보이는 ‘모범 폐기물’로 보이지만 실상은 복잡하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재활용업체에 접수된 후 실제로 재활용되는 비율인 실질 재활용률은 60% 정도로 추산된다. 이 역시 중소업체가 난립해 설비투자 대신 단가 인하 경쟁만 벌이는 상황이다. 자연히 재활용 골재의 질이 떨어져 건설업계로부터 외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건설자원협회에 따르면 2015년 534곳이던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는 매년 증가해 2018년 581곳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건설폐기물은 8700여t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간처리업체는 이후로도 꾸준히 늘어 올해 4월 594곳이 됐다. 



    기자가 10월 30일부터 이틀간 일한 A사 역시 장비 노후화가 심각했다. 작업장은 적갈색으로 녹슨 컨베이어벨트 위로 흙먼지와 굳은 진흙이 켜켜이 쌓인 상태였다. 슬러지(수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침전물) 관리가 담당 업무였지만 실상은 수리보조공에 가까웠다. 각종 재활용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수시로 대응해야 했다. 이 역시 미봉책이 대부분이다. 필터 프레스가 작동 때마다 멈췄지만 빨간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이틀간 교체된 것은 여과 과정 중 찢어진 필터 1매뿐이었다. 

    다음 날 역시 먼지투성이 현장에서 낡은 기계를 고치며 일과를 시작했다. 이날 주요 작업은 돌멩이가 전달되는 컨베이어벨트를 수리하는 것이었다. 1cm 정도 두께의 두꺼운 고무였지만 온종일 돌 파편을 옮기다 보니 쉽게 해졌다. “이거는 이제 못 쓸 거 같은데.” “안 돼, 안 돼.” 예상보다 컨베이어벨트의 해진 부분이 넓어 교체를 요구하는 작업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해진 부분을 깁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직은 어떻게든 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관리자의 결정에 현장 노동자들은 허탈하게 웃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컨베이어벨트 교체는 1년에 한 번만 이뤄졌다.

    10월 31일 현장 노동자들이 안전장비 없이 고층에 위치한 컨베이어벨트로 올라가 해진 부분을 깁고 있다. [최진렬 기자]

    10월 31일 현장 노동자들이 안전장비 없이 고층에 위치한 컨베이어벨트로 올라가 해진 부분을 깁고 있다. [최진렬 기자]

    무리하게 기계를 수리하다 보니 아찔한 상황도 펼쳐졌다. 고무조각과 쇠못으로 컨베이어벨트의 해진 부분을 깁는 간단해 보이는 작업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컨베이어벨트가 놓인 작업 현장이 4, 5층 높이에 달해 추락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모제와 전동드릴, 쇠못 등을 든 작업자들은 아슬아슬하게 철제 골조를 타고 다녔다. 기자처럼 작업 공간이 컨베이어벨트가 아닌 근로자들도 차출됐지만 안전장비를 한 사람은 1명뿐이었다. 이마저도 헬멧을 쓰는 게 전부였다. 발을 디디고 있던 고무벨트에서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도 발생했다. 해진 부분이 너무 많아 이날 작업을 마치지 못한 탓에 작업자들은 다음 날도 위험을 무릅쓰고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라야 했다. 

    분쇄기로 돌덩이를 잘게 부수는 것이 핵심 작업이라 환경도 열악했다. 돌덩이를 분쇄할 때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 먼지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현장에서 먹고 자는 개는 이미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먼지를 가라앉히려 바닥에 물을 뿌리자 도리어 진흙에 발이 푹푹 빠졌다. 환경이 열악한 데다 업체 난입으로 수익성까지 떨어지면서 임금도 낮아졌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모 차장은 임금 체계에 대해 “석 달 동안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당직으로 일한 후 현장에서의 기여 정도를 판단해 연봉을 정한다”고 설명했다. 물류창고 등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대다수 일당직 일자리와는 대조적이다.

    한국인은 소수의 관리자뿐

    저임금과 수시로 멈추는 기계, 열악한 작업환경이 맞물린 탓에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소수의 관리자뿐이고, 대다수 작업자는 외국인 노동자로 지탱되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 자리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와 임시보관장은 21곳. 이 중 절반이 넘는 12곳이 들어선 강서구 일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폐기물을 정리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본국과 비교하면 임금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에서 받는 임금은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A사에는 미얀마와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 10명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월 기본 급여 210만 원이 지급된다. 여기에 시간 외 잔업 수당 1만3000원과 야근 수당 2만5000원이 추가된다. 2주에 하루씩 쉬고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에 미달한다. 미얀마 출신인 느상(40·가명) 씨 역시 지난달 이틀만 쉬고 248만6000원을 받았다. 이마저도 작업을 마치고 플라스틱과 나무, 고철 등을 분류하는 잔업을 22시간해야 해야 받을 수 있다. 느상 씨는 “지난 4년간 임금이 인상된 적이 없다. 그래도 이만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계속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피시설이라 도심과 떨어져 있는 탓에 퇴근 후에도 마땅히 놀거리가 없다. 2층 침대가 각각 2개씩 들어간 컨테이너하우스 3동에서 외국인 노동자 10명이 각자 휴대전화로 통화하며 저녁을 보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놀거리가 마땅치 않다 보니 술만 늘었다. 이들 10명은 퇴근 후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주일에 소주 2~3박스를 마신다. 한 달 중 다음 날 출근하지 않는 날이 이틀밖에 되지 않아 맘 편히 놀지도 못한다. 

    “내일(일요일) 출근하나.” 

    “아니요.” 

    “부럽다. 나는 지난주에 쉬어서 내일 일해야 한다.” 

    탈의실에서 무잉(28·가명) 씨의 부러움을 받으며 퇴근했다. 현장에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대자본 유치로 재활용업계 악순환 고리 끊어야”

    10월 26일 서울 강서구의 한 영세 건설폐기물 집하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폐기물을 분류하고 있다. [최진렬 기자]

    10월 26일 서울 강서구의 한 영세 건설폐기물 집하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폐기물을 분류하고 있다. [최진렬 기자]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영세 사업장에서 건설폐기물을 땜질식으로 처리하는 현행 방식은 지속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 이에 대형업체가 중심이 돼 영세 건축폐기물 중간처리업체를 인수합병함으로써 건설폐기물 재활용 기술 및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가 있다. 건설·건자재 기업 아이에스동서(IS동서)는 지난해 6월 건설폐기물 처리업체 1위인 인선이엔티를 인수했다.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관련 산업의 성장 가능성과 건설사업의 연계 가능성이 주요 인수 배경으로 꼽힌다. 

    SK건설 역시 9월 1일 이사회에서 환경 폐기물 처리업체 EMC홀딩스 인수를 위한 주식 매매 계약 체결안을 결의했다. 한국환경공단 자회사로 사업을 시작한 EMC홀딩스는 국내 최대 환경 플랫폼 기업으로 꼽힌다. 전국 950여 개의 하·폐수처리시설, 4개의 소각장, 1개의 매립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산 가치도 1조 원을 웃돈다. 수처리 부문에서는 국내시장 점유율 1위이며, 폐기물 소각·매립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SK그룹 차원에서 환경 사업 확대 기조를 보이는 만큼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폐기물 처리 사업을 확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건설사들의 폐기물업체 인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홍수열 소장은 “지금까지 재활용 부문은 중소기업 영역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설비투자가 부족해 고품질의 순환 골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건설업체는 품질 문제로 건설폐기물 재활용품 사용을 꺼리고, 재활용업체는 건설업체에서 사용을 꺼리는 탓에 투자를 받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대자본이 투자해 설비투자를 제대로 갖춰 경영을 투명하게 한다면 건설폐기물 영역이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자리 잡아 열악한 재활용업계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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