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축 키보드 방수 기능을 설명하는 오광근 앱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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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이밍 기어(PC게임용 주변기기) 시장점유율 1위 기업 앱코가 보여준 실적은 놀랍다. 2016년 297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843억 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지난해 전체에 근접한 740억 원을 기록했다.
창업주인 오광근 대표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앱코의 비약적 성장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오 대표는 용산전자상가의 신화로 불린다. PC(개인용 컴퓨터) 조립 사업을 하며 소비자 니즈를 최전방에서 읽었다. 이는 앱코 경영에 녹아들었다. 앱코는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품을 가장 빨리 알고, 그만큼 발 빠르게 내놓았다. 이른바 ‘기동성’이 앱코의 최대 무기이자 경쟁력이다. 대기업보다 먼저 시장을 발굴해 장악해나갔다. 게이밍 기어는 시작이었다. 최근 진출한 신사업에서도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오 대표는 내년에는 실적 면에서 ‘퀀텀’ 점프를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진출 2년 만에 PC방 석권
최근 서울 강서구 마곡생산단지 앱코 본사에서 만난 오 대표는 게이밍 기어 실적에 대한 비결을 묻자 PC방을 장악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게이밍 기어는 게임에 특화된 키보드와 헤드셋, PC 케이스, 의자 등을 일컫는다. 모니터와 PC 본체를 제외한 모든 주변기기다.시기는 2014년이다. 전국 PC방을 돌아다니며 사장님들에게 어떤 제품이 필요한지 물었다. 답은 키보드 방수 기능이었다. 손님들이 커피나 음료수를 흘리기 일쑤라 기계식 키보드가 금세 먹통이 돼버리는 게 문제였다. 게임 헤비유저들을 위해 비싼 장비를 들였는데 손해가 컸다.
여기서 오 대표는 ‘광축’ 키보드를 구상하게 된다. 기계식이 터치 압력을 전기적으로 인식했다면, 광축은 센서로 인식하는 방식이다. 10m 깊이 물속에서도 타이핑이 가능하다. 헤드셋의 경우 게임업계 최초로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넣었다. 배틀그라운드 같은 FPS(1인칭 슈팅 게임)는 상대 플레이어가 내는 소리를 얼마나 잘 캐치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덕분에 앱코는 2년 만에 외국산이 대다수이던 PC방 제품을 90%가량 점유했다. 전체 시장에서도 1위로 부상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앱코의 국내 게이밍 키보드 점유율은 49%(소비형태통계 시스템 ‘다나와 리서치’ 기준)에 이른다. 시장에서 절반가량이 앱코 제품이다. 헤드셋은 51%, PC 케이스는 65% 점유율로 모두 1위다. 게이밍 마우스는 32%로 2위다.
후발 주자라도 시장을 제대로 분석하고 이에 걸맞은 아이디어를 내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차별화된 아이디어는 당연히 특허를 취득해 경쟁사의 모방을 막는다. 오 대표가 밑바닥에서부터 체득한 성공방정식이다. 그는 용산전자상가에서 조립PC 판매직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창업가다.
오 대표는 “용산에서는 소비자 니즈와 트렌드 변화를 가장 빨리 알고 앞서 대처하는 것이 핵심인데, 수많은 업체가 성공도 하고 소멸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그들의 약점은 버리고 강점만 습득한 것이 지금의 앱코”라고 말했다.
굵직한 신사업 ‘뉴라이프·스마트스쿨’
PC방 시장에서 일군 성과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비약적인 실적으로 이어졌다. PC방 주요 고객은 10대부터 30대까지다. 2월부터 비대면 생활이 강요되자 이들은 각자 집에 앱코 장비들을 갖추기 시작했다. PC방에 다니면서 가장 익숙한 장비였기 때문이다.PC방에서 돌려가며 쓰던 장비들을 개인이 각각 구비하기 시작하니 앱코 매출이 폭증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연간치에 근접한 배경이다.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10, 20대도 예외가 아니다. 원격수업용 장비를 구매하는 김에 게임 병행이 가능한 앱코를 택했다.
해외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게이밍 기어 매출도 고무적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아마존을 통해 미국시장에 진출했는데 반응이 ‘연쇄 폭발형’이다. 올해 2분기에만 해외 매출 42억 원을 기록했으며, 이는 손익분기점을 넘는 수준이다. 해외 소비자 니즈에 맞춘 현지화 제품으로 승부를 건 결과다.
오 대표는 “아마존에서 6개 품목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는 수준의 매출을 단기에 달성했다”며 “내년까지 품목을 150개로 늘리고 진출 국가도 영국, 인도로 넓힐 예정이라 해외 매출 확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앱코 특유의 기동성은 신사업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성장성 면에서 본사업 못지않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엘라는 지난해 판매량이 4393대였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22만403대로 5000% 가까이 늘었다. 비토닉 역시 같은 기간 2만9534대에서 21만4972대로 628% 증가했다.
오 대표는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뉴라이프 가전시장은 앱코의 강점(기동력)과 잘 어울린다”며 “진출 1년 만에 가파르게 매출이 늘고 있어 2021년에는 상당한 볼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앱코의 스마트스쿨 신사업은 또 다른 성장판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전체 38만 개 교실에 와이파이(Wi-Fi)를 100% 구축하는 ‘그린 스마트 스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앱코는 2017년부터 시범사업에 참여해 단독으로 스마트단말충전함을 공급해왔다. 내년 초 본사업을 진행하는데, 경쟁자가 마땅히 없어 주력 공급사 지위가 유력하다. 스마트단말충전함 시장 규모는 5000억 원에 이른다.
이 같은 사업 다각화에 따라 오 대표는 ‘실적 퀀텀 점프’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 대표는 “게이밍 기어의 성장세에 신사업도 본궤도에 올라 내년부터 매출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며 “샤오미나 로지텍 같은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이 목표다. 창업 당시부터 꿈꿔온 일로,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