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연장으로 결혼식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GETTYIMAGES]
20대 직장인 이모 씨가 8월 18일 오후 회사 동료로부터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다. 이씨는 3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올해 초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식을 가을로 미뤘다. 그런데 식을 앞두고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급속도로 늘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자 고민에 빠졌다. 이씨는 “식을 또 미룰 자신은 없다. 하객을 50명 미만으로 줄이라는데, 청첩장을 다 돌린 상태라 고민이다. 식장은 식장대로 하객이 오지 않아도 식대는 200명분을 다 내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8월 18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을 발표한 후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결혼식’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따르면 8월 17일부터 23일까지 민원분석시스템에 수집된 코로나19 관련 민원은 9476건으로 다른 때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결혼식과 수험생 관련 민원이 많았다는 게 권익위 측 설명이다. 올 초 코로나19 사태로 연기한 결혼식이 가을과 겨울 대거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예비부부들에게 웃지 못할 상황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이번에 미루면 두 번째인데…
30대 예비신부 전모 씨는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격상 뉴스를 보고 온종일 엉엉 울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남들처럼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도 다녀올 수 있을 줄 알았다”며 “해외로 가는 신혼여행은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런데 이제는 식 자체를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답답해했다.“신혼집도 정부 정책 때문에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결혼식도 하기 어렵네요. 지금은 그저 평범하게 결혼한 사람이 무척 부러워요. 식은 이미 한 번 미룬 터라 또 미루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도 모르고요. 처음에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설레고 기뻤는데, 지금은 매일 확진자 수가 발표될 때마다 너무 힘들고 얼른 끝내고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인 8월 19일부터 30일까지 수도권에서는 하객이 실내 50인 이상, 실외 100인 이상 모이는 결혼식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정부의 이런 방역지침 때문에 예비부부들은 어디에 하소연도 못 한 채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20대 직장인 정모 씨는 “위로한다고 한 얘기겠지만, 상사가 ‘이참에 스몰웨딩을 하면 되겠네’라고 해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정부 발표 후 회사 동료들이 ‘나는 (하객) 50명 안에 들어가?’라고 자꾸 물어봐 너무 스트레스예요. 관련 기사를 전부 찾아봤는데, ‘그러게 누가 이 시국에 결혼식 하래’ ‘청첩장 돌리는 것도 민폐’라는 댓글만 달렸더라고요. 스몰웨딩이 저렴하지도 않고, 결혼식 준비를 부부가 하나요? 대부분 양가 부모님 손님인데…. 예식장보다 종교시설이나 술집, 클럽에서 나온 확진자가 훨씬 많은데도 왜 다들 예비부부만 민폐 취급하는지 모르겠어요.”
웨딩사진 다 찍고 파혼하는 사례까지
결혼을 앞둔 이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예식업중앙회와 협의해 결혼식 변경·취소에 따른 분쟁 해결 권고안을 내놨으나, 한국예식업중앙회 회원사가 전체 예식업체의 30%에 불과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극단적으로는 코로나19 사태로 파혼한 사례까지 나왔다. 한 결혼 정보 커뮤니티에는 스튜디오 사진까지 다 찍었는데 계속해서 식을 미루다 파혼했다는 커플의 이야기가 올라왔다. 커플 사이에 문제가 없어도 양가에서 날짜를 조절하거나 식사를 답례품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비용 문제로 마음이 상해 결혼을 없던 일로 한 사례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웨딩드레스숍 관계자는 “드레스 가봉까지 끝냈지만 날짜가 바뀌어 다시 찾아오는 예비신부가 많다. 며칠 전 온 신부는 드레스를 입으면서 계속 울었다”며 안타까워했다.
8월 18일 오후 만들어진 예비부부들의 오픈채팅방에는 300여 명이 모여 8월 27일 오후까지도 청와대, 한국소비자원, 국민신문고, 각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등에 문의를 넣고 있다. 각자 호텔과 예식장에 코로나19 관련 대책을 문의하고 내용을 공유하는 한편, 같은 호텔에서 결혼하는 부부끼리 모여 별도로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결혼식장에서도 마스크는 이제 필수품이 됐다. [GETTYIMAGES]
예식장을 상대로 식대를 50인 이하로 줄이는 ‘협상’에 성공한 커플에게는 이제 결혼식에 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소식을 알릴지가 과제다. 이 때문에 결혼식 온라인 생중계 서비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주로 카메라 여러 대를 활용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밴드, 트위치 라이브에서 생중계하거나,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현장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형태다.
취재 결과 서울 한 5성급 호텔의 경우 내부 중계팀을 써야 하며 중계 비용은 100만 원이었다. 여러 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 경력을 포트폴리오로 내세운 한 영상업체의 가장 저렴한 중계 서비스는 55만 원이었다. 업체 관계자는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식장에서 단체사진을 찍지 못하는 예비신랑신부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는 방송국 PD 출신 촬영자가 현장에 나간다. 촬영 후 DVD를 만드는 비용까지 포함한 가격으로, 촬영 카메라 대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고 답했다.
축의금 간편 송금 증가
결혼식장에 직접 가 축의금을 전하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송금하는 경우도 늘었다. [GETTYIMAGES]
이 같은 사례를 취재하는 동안에도 코로나19 확진자는 계속 늘었다. 한 예비 신부는 “터질지 안 터질지 모르는 3단계 폭탄을 들고 하루하루 지옥 길을 걷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되면 10인 이상이 모이는 모든 모임이나 행사가 금지된다. 종전 같은 결혼식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3단계가 되기 전 ‘큰일’을 얼른 ‘해치우려는’ 이들과 차라리 3단계가 돼 위약금이라도 물지 않고 식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싶은 이들 사이에서 예비신랑과 신부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