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성 공무원 성추행 사실을 시인하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동아DB]
이 중 경찰은 4월 초 부산시청 여직원과 5분간 면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강제추행에 대해서만 기소 의견을 냈다. 야권과 시민단체 등은 “4개월이나 수사해놓고 이런 결과를 내놓는다는 건 결국 오 전 시장에게 면죄부만 주는 꼴”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당초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의혹은 오 전 시장의 ‘사퇴 시기 조율’ 여부였다. 오 전 시장이 성추행을 시인하고 시장 직에서 물러난 건 4월 23일로 총선 직후. 이 때문에 4·15 총선 당시 이 사건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선거 후까지 은폐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는 대목이다. 또한 당시 청와대가 해당 내용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다.
청와대 사전 인지설 못 밝혀
오 전 시장은 강제추행 사건이 터지자마자 피해자의 동의를 얻어 사퇴 시기를 총선 이후로 미룬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법무법인 부산을 통해 작성해 공증을 받았다. 법무법인 부산은 1995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운영한 합동법률사무소의 전신으로, 현재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 모 변호사가 대표직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야권 등 일각에서는 “법무법인 부산이 오 전 시장의 공증을 맡은 것을 두고, 청와대나 더불어민주당에서 오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사전에 몰랐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또한 오 전 시장은 지난해 제기된 또 다른 강제추행 의혹과 관련해 해당 사건을 덮기 위해 다른 지방자치단체(지자체) 채용에 관여했다는 채용 비리 혐의, 지방공무원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오 전 시장의 사건을 수사한 부산경찰청은 공직선거법 무혐의와 관련해 “오 전 시장 보좌관과 정무라인 등 21명의 통화기록 8000건을 포렌식한 결과 피의자나 피의자 측에서 사퇴 시기를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며 “피의자 측이 청와대나 여당과도 통화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직권남용 무혐의에 대해서도 “보좌관 1명이 사건 당일 피해자를 상담하면서 내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게 됐고, 중간에서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며 “상호 전달 과정에서 일(공증)이 있었으나 직권남용이 인정될 지시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사퇴 시기 공증을 한 법무법인 부산도 보좌관 측에서 소개했다는 게 경찰 측 의견이다.
지난해 불거진 또 다른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경찰이 관련자를 모두 수사했지만,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혐의를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용 비리도 해당 지자체 관련 서류를 압수하고 인사담당자, 심사위원 등을 대상으로 조사했으나 문제가 없었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또 피해자의 명예훼손, 모욕 등 2차 피해와 관련된 혐의에 대해서는 22명을 입건해 일부는 송치하는 등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권남용 혐의, 검찰에서 다시 따져봐야”
법조계에서도 이번 경찰 수사를 두고 “신뢰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부 인권정책과장을 거쳐 순천지청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오 시장 측근 인사들이 공증 과정에서 모종의 압력을 가하지 않았는지 객관적 검증이 필요한데도 경찰이 당사자들 말만 믿고 무혐의 처분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이 부분을 경찰 수사력 한계로 검증하지 못했다면 검찰 재수사를 통해 반드시 그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 A씨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부실수사라고 단정 짓긴 힘들지만, 사퇴 시기를 두고 피해자와 합의한 것 자체가 여전히 법률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 전 시장 본인 외에도 강제추행 사실을 인지한 부산시 정무직 공무원들 역시 직권남용 공범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공무원은 직무상 범죄 행위를 발견하면 그 즉시 고발 조치를 하게 돼 있다. 하지만 부산시 공무원은 피해자와 합의 공증을 위해 적극적으로 법무법인을 소개하는 등의 행위를 저질렀고, 이는 국가공무원법, 형사소송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변호사는 “검찰 수사에서 직권남용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법조인 B씨는 경찰의 수사 의지 부족과 함께 최근 논란이 된 검경수사권 조정의 허점을 꼬집었다. 이 법조인은 “이번 수사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경찰이 검찰로부터 넘겨받은 권한을 이용해 지자체장과 어떻게 유착할지 모를 일”이라며 “자치경찰제까지 도입되면 지자체장은 ‘병력’을 장악해 마치 지방 성주 같은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오 전 시장 사건의 경우 검찰 수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단행된 법무부 인사에서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 간부를 비롯해 차장·부장 검사 등 중간 간부 대부분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라인으로 물갈이됐다는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 법조인은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지 두고 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큰 기대가 없다”며 “여권 입맛에 맞게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