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의 세상관심법 | 심신미약과 정신질환

제대로 치료받는 정신질환자는 심신미약 안 나타나

강서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우울증 전력만으로 심신미약 인정 어려울 듯

  •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18-11-05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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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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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 PC방 살인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성수(29) 씨가 10월 22일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공주 치료감호소로 이송됐다. 김씨는 그곳에서 1개월 동안 정신감정을 받는다고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김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청원 글이 올라왔고, 100만 명 이상이 이에 동의했다. 이 청원은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한 이래 가장 많은 동의를 기록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방송에서 눈물의 인터뷰를 했고, 응급실에서 피해자를 만난 의사도 상처의 잔혹성을 묘사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또 김씨의 가족이 그가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내용의 진단서를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감형을 받기 위한 시도가 아니냐는 비난의 댓글도 이어졌다.
     
    그의 정신감정 결과가 나오고 더 많은 정보가 있어야 재판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지겠지만, 많은 전문가는 심신미약이 인정돼 김씨가 감형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 피해자와 다툰 직후 그가 집으로 돌아가 칼을 가져왔기에 피해자를 해치려는 범행 의도가 분명하고, 정신질환으로 정상 생활이 어려운 수준도 아니었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정신질환자와 강력범죄, 그리고 국민 인식 등에 대해 몇 가지 느낀 점을 써보고자 한다. 

    첫째, 안타깝게도 대다수 국민이 정신질환자를 위험하게 바라보고 있다. 가끔씩 강력범죄, 특히 살인이나 폭행의 동기가 딱히 없는 이른바 ‘묻지 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다. 이때 피의자는 많은 경우 ‘조현병’을 앓는 환자로 망상이나 환각 등에 사로잡혀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치정, 복수, 원한, 금전 등의 문제가 아닌 매우 사소한 일로 분노를 폭발해 범행을 저질렀을 때도 ‘분노조절장애’라는 병명이 등장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국민은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폭력자로 바라보게 됐다.

    정신질환 ≠ 심신미약

    하지만 임상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환자는 별로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길을 가거나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 마주치는 이들 가운데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이 더 많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과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낮다는 보고도 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늘 주눅이 들어 있고, 마음이 매우 여리며,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탓한다. 자신감 상실과 자기 비하 같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인지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만큼 온순하고, 덜 이기적이며, 자기주장 능력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1년에 한두 번씩 터지는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라 국민의 뇌리에 편견이 각인된 것 같다. 실제로 환자의 보호자조차 필자에게 “우리 아이(혹은 배우자 등)는 무섭게 돌변하지 않겠죠”라는 문의를 자주 한다. 



    일부 중증의 정신질환자 혹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자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정신과 환자를 위험하게 바라보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다. 열심히 치료받는 환자들을 색안경 끼고 봐서는 안 된다. 

    둘째, 많은 국민은 정신질환과 심신미약을 동일한 개념으로 바라본다. 이 또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다. 정신질환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그렇기에 정신질환자가 모두 심신미약 상태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비약적인 생각이자, 확대 해석이다. 심신미약은 말 그대로 마음과 몸이 미약하기에 현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변별해 그것에 맞게 행동하는 능력이 상당히 감퇴된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일부 질환에 의해 상태가 심각해진 소수만 여기에 해당할 뿐 정실질환자는 대부분 일상생활을 비교적 잘 영위한다. 

    정신질환은 크게 정신병(Psychosis), 신경증(Neurosis),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 · 또는 인격장애) 등 세 분야로 나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치료받는 집단은 정신병과 신경증 두 부류라 할 수 있다. 정신병은 현실 검증 능력에 일시적 장애가 있는 상태로 조현병, 망상장애(의부증 또는 의처증 포함), 심한 조울증 등을 의미한다. 이들 질병을 앓는 환자도 치료를 잘 받으면 현실 검증 능력이 곧바로 회복될뿐더러, 얼마든지 일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언론에 보도되는 끔찍한 사건의 피의자는 대부분 조현병이나 망상장애를 앓고 있으나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경우다. 신경증은 과거 ‘노이로제’로 많이 불렸는데, 현실 검증 능력에 장애는 없지만 주관적인 고통이 따르는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증, 공황장애, 수면장애, 신체형 장애(신경성 통증 또는 감각이상 포함), 적응장애, 스트레스 반응 등이 해당한다. 

    김씨의 경우 우울증 치료 병력이 과연 심신미약으로 인정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울증은 경도, 중등도, 중증 등으로 단계가 나뉘며 중증 우울증 환자의 경우 증상이 매우 심해 사회에서 일상생활이 매우 곤란하거나 심신미약일 개연성이 높다.

    사소한 일로 화낸다면 ‘잠재적 범죄자’ 후보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씨가 공주 치료감호소로 이동하기 위해 10월 22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씨가 공주 치료감호소로 이동하기 위해 10월 22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성격장애는 성격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결핍을 보이는 질환이다. 이 경우 사회생활 또는 대인관계에서 갈등과 문제가 지속되는데, 본인은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이 인식하는 때가 많아 실제로 치료받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성격장애 가운데 ‘반사회적(Antisocial)’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고, 지속적인으로 반사회적 행동을 한다. 그렇다고 범죄자와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언론에 간혹 등장하는 ‘사이코패스(Psychopath)’나 ‘소시오패스(Sociopath)’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둔감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결핍돼 있으며, 양심도 결여된 상태다.
     
    요약하자면 조현병이나 우울증 환자 가운데 상태가 심각한 사람만 심신미약으로 인정될 수 있으며,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비록 정신질환 범주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판단 능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인격적인 결함일 뿐이므로 심신미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심신미약은 법률 용어일 뿐 정신질환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셋째, 분노의 감정과 실제 행동을 구별해야 한다. 분노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다. 타인이 내 권리를 침해했을 때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무례한 대우를 받거나 무시당했을 때 분노의 감정이 치솟는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때리거나 해치지는 않는다. 대다수 사람은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정색하거나 화난 표정으로 항의하고 거친 말투와 큰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할 뿐, 기물을 파손하거나 사람을 때리지는 않는다. 그 순간 불법이 된다. 즉 분노의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성적 판단과 행동의 수위 조절은 필수적이다. 

    혹시 주변에 사소한 일로 크게 화를 내면서 폭력적인 언행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잠재적 범죄자 후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친구나 가족의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가 무척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넷째, 정신질환자를 잘 치료해야 한다. 제대로 치료받으면 증상의 호전은 물론, 사회생활 및 대인관계에 큰 어려움이 없다. 실제로 필자로부터 성실하고 꾸준하게 치료받은 환자 상당수는 사회 곳곳에서 제구실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치료 도중 증상이 악화되면 약물로 조절하거나 심한 경우 입원치료를 거쳐 다시 안정화시킬 수도 있다. 정신과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 때문에 병·의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는 각종 증상으로 주관적 고통을 겪을뿐더러, 증상이 심해지면 이상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열심히 치료받게끔 하자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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